재벌 2세로 살아갈 기회를 3만원으로 얻을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또 자기 대신 친구를 가난으로 밀어넣어야 한다면 선뜻 나설 수 있을까? MBC [금수저]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은 한 소년의 이야기다.

이미지: MBC

이승천(육성재)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흙수저’ 타이틀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예상 기출문제 정리, 그리고 동급생의 폭력까지 견디며 번 돈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해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승천은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이자, 비슷한 처지인 박진석(신주협)이 빚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님과 함께 세상을 떠난 것.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돈과 성공을 향한 승천의 열망은 그 어느때보다 커져만 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승천은 길에서 만난 할머니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듣는다.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금수저로 동갑내기 집에서 밥을 세 번만 먹으면 서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나 뭐라나. 반신반의하던 승천은 국내 최고의 재벌기업 중 하나인 도신그룹의 후계자, 황태용(이종원)과 인생을 바꿔보기로 한다. 세 번의 식사를 끝냈음에도 변화가 없어 실망하려던 찰나, 사람들이 자신을 “태용”이라 부르는 걸 듣던 순간 승천은 깨닫는다. 자신의 운명이 바뀌어서 이른바 ‘금수저’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연 승천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수저계급론’. 부모의 재력이나 학벌,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이 이론(?)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른바 부모의 ‘능력’을 세분화시키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등급에 따른 차별이 벌어진다는 씁쓸한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는 시대다. 드라마 [금수저]는 ‘수저계급론’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돈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이 아닌, 희망과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데, 아직 극 초반부인지라 재벌의 삶에 적응하는 승천에게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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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웹툰 원작 드라마가 마주했던 큰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스토리를 압축하는 작업이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편의 에피소드에 걸쳐 완성된 웹툰의 서사를 16부작 드라마에 녹여내는 일이란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설정에 변화를 주거나 스토리를 가지치기하는 과정에서 원작 팬과 드라마 시청자 모두에게 원성을 듣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에, 원작이 100회가 넘는 [금수저]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이 작품의 스토리는 지금까지 매끄럽게 흘러가고 있다. 핵심적인 설정은 유지하면서도, 전개에 속도감과 몰입감을 더하기 위해 주인공들의 나이나 집안 배경 등에 변화를 준 선택이 제대로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빠른 전개를 위해 놓친 부분도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이승천의 믿을 수 없는 적응력(?)이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재벌 2세가 되었는데, 뭐랄까 마치 이전부터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것처럼 행동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또 이승천과 황태용, 나주희(정채연)와 달리, 조연급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부분도 아쉬운 지점이다. 가난이 싫어서 가족을 포기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승천,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지만 실은 아버지의 억압이 너무나도 두려운 태용, 그리고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주희까지. 극을 이끄는 셋은 육성재와 이종원, 정채연에 연기력에 힘입어 상당히 다채롭게 묘사된 데 반해, 나머지는 ‘가난하지만 선한 캐릭터’, 혹은 ‘부자 악역’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캐릭터성에 머물러있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추후 얼마든지 성장할 여지가 있기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지난 4회에서 승천 외에 또 한 명의 ‘금수저 사용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흥미로운 전개를 예고했다. 태용의 옛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도 드러나면서 그의 인생을 빼앗아간 승천이 어떻게 대처할지에도 눈길이 간다. 이 작품이 원작과 달리 ‘연대’와 ‘희망’을 이야기할 것으로 예고한 가운데, 지금까지 잘 쌓아놓은 서사를 앞으로 어떻게 펼쳐나갈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