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트랜스젠더는 스스로 정체화하고 표현하는 성 정체성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포괄적 용어다. 고대에는 남성들도 립스틱을 발랐다고 전해지며, 사랑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플라톤의 [향연]에서조차 동성애는 자연스러웠다. 성 정체성의 혼란은 예민하게 그것을 응시해야만 경험할 수 있기에,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누구보다 섬세하다는 의미이다. 그 섬세함으로 성별의 경계를 허문 배우들을 만나보자.

패왕별희(1993) / 장국영 (청데이 역)

이미지: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경극을 하는 두 남자의 사랑과 이별, 질투와 방황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패왕별희]. 중국의 전통적인 경극을 중심적인 소재로 가져오며, 파란만장한 나라의 역사를 한 소년의 짧은 생 안에 녹여낸 작품이다.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는 사내로 태어났지만, 경극 속에서 패왕의 여인 우희를 연기해야 하는 인물이다. 패왕 향우를 연기하는 둘도 없는 친구 시투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성 정체성뿐 아니라 극과 현실 사이에서도 혼란을 겪는다. 격동의 시대에 자아를 찾는 일은 사치였고, 그도 결국 시대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웠지만 서글프게 기억되는 배우 장국영이기에 그가 연기한 데이라는 인물의 혼란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영원히 기억될 장국영이 남기고 간 명작을 꼭 만나 보자.

헤드윅(2001) / 존 카메론 미첼 (헤드윅 역)

이미지: 킬러 필름즈

완벽한 성전환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로커 헤드윅의 기구한 삶을 그린 뮤지컬 영화 [헤드윅].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직접 연출하고 주인공을 연기했다. 헤드윅은 과거 수많은 남자들에게 성적 모욕을 당했고, 불법 수술로 성전환에 실패하고, 사랑했던 남자에게는 배신을 당한다. 그것이 그의 열정을 이기지 못했는지 혹은 더 뜨거운 화를 불태우게 했는지, 그는 여전히 진실한 사랑과 잃어버린 반쪽의 삶을 위해 노래를 이어간다. 짙은 화장과 빛나는 금발 가발, 아찔한 미니스커트를 고집하는 것은 치장을 넘어 자신을 해방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그 후 그가 부르는 노래가 플라톤의 향연이다. 여장을 한 후 드랙퀸들이 모인 클럽에 앉아 대본을 썼다는 존 카메론 미첼은 헤드윅을 연기하며 자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모든 편견에 대담하고 발칙하게 맞서는 [헤드윅]을 통해 통쾌함을 만끽해 보자.

톰보이(2011) / 조에 에랑 (로레 / 미카엘 역)

이미지: (주)영화특별시SMC

신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하며 남자아이 행세를 하는 10살 톰보이의 비밀스러운 여름 이야기를 그린 [톰보이]. 활달하고 남성스러운 10대 여자아이를 뜻하는 단어 ‘톰보이’는 우리말로 ‘선머슴’ 정도로 해석된다. 파란색을 좋아하고, 끝내주는 축구 실력을 가졌고, 짧은 머리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미카엘은 그저 조금 쿨하고 장난스러운 또래아이로 보인다. 하지만 엄마는 억지로 여자아이 옷을 입히고, 친구는 바지를 벗겨 그의 성별을 확인한다.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톰보이의 눈부시고 눈물겨운 성장기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프랑스 배우 조에 에랑은 현재 23살로, 자유분방하고 중성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배우로 성장했다. 감독이 첫눈에 반했던 12살 조에 에랑의 풋풋한 모습을 만나 보자.

로렌스 애니웨이(2012) / 멜빌 푸포 (로렌스 아리아 역)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감각적인 비주얼을 선사하는 감독 자비에 돌란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로렌스 애니웨이]. 소설을 쓰는 청년 로렌스의 서른 번째 생일,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남은 일생을 여자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아마 더 많은 관객은 커밍아웃을 한 로렌스보다 이 사랑을 놓지 못하는 연인 프레드의 시점을 따라갔을 것이다. 프레드는 여장을 하는 로렌스 옆에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험난한 이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쓴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을 소란스럽지 않게 들어주고, 긍정해주고, 곁을 지켜주는 이상적이고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로렌스를 연기한 프랑스 배우 멜빌 푸포는 배우는 물론 영화 연출가, 록밴드 멤버이기도 한 엔터테이너이다. 패기 넘치는 자비에 돌란의 뮤즈 멜빌 푸포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대니쉬 걸(2015) / 에디 레드메인 (에이나르 베게너 / 릴리 엘베 역)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한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의 실화를 그린 [대니쉬 걸]. 아내 게르다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린 에이나르 베게너는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은 날,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릴리 엘베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것뿐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 릴리와 남편이 여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르다의 아프지만 애틋한 관계가 그려진다. 릴리 역할을 맡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은 평소 LGBT 관련 사회 운동에 많은 지원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너드미’를 발산하며 보호 본능을 일으키던 그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꿈의 제인(2017) / 구교환 (제인 역)

이미지: 넷플릭스/(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소녀 소현과 꿈결처럼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의 시시한 행복 소생기를 그린 [꿈의 제인]. 제인은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보살핀다. 제인의 세계는 가출 청소년과 트랜스젠더가 공존하는 유토피아이며, 그렇기에 제인과의 시간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알 수 없다. 꿈과 현실, 제인과 경환, 삶과 죽음이 혼란스럽게 얽히며, 너무도 많은 가능성을 관객에게 남긴다. 무엇을 현실로 믿어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일까를 생각할 때, 제인은 어차피 인생은 불행의 편이라고 말한다.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위로,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다시 꿈결처럼 사라져 버린다. 섭식 장애를 앓은 트랜스젠더 제인 역할을 맡은 배우 구교환은 이 작품으로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예민하고 자유분방하며 따뜻하고 연민이 가는 제인의 모습에 배우 구교환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다면 동의할 수밖에 없어진다. 단지 여성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서 날카롭고 섬세한 심리 묘사를 보여준다. 대체할 수 없는 배우와 캐릭터는 가장 무섭다. 구교환은 그 무서운 행보를 걸어가고 있고, 제인을 대체할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소수자를 다루는 좋은 연출과 진심을 다한 연기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