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제임스 그레이 감독

1990년대에 데뷔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작 [리틀 오데사]부터 [더 야드], [위 오운 더 나잇]은 유대인을 주인공의 주요 설정으로 내세웠고, [이민자]는 자신의 가족이 이민 가족이라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외에 [투 러브스]를 통해 자신의 연애사를 영화에 녹여내기도 했다.

이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수놓을 줄 아는 감독이 이번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말하려 찾아왔다. 앤 해서웨이, 제레미 스트롱,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아마겟돈 타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 감독에 대한 꿈을 가족이 반대했다고도 알려진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오늘은 데뷔작부터 남달랐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여온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리틀 오데사(1994)

이미지: 뉴 라인 시네마

영화 [리틀 오데사][주: 국내 수입명은 한때 [비열한 거리]로 불렸다]는 마피아 조직의 행동 대원으로 활동하는 ‘조슈아’가 브루클린의 리틀 오데사라 불리는, 러시아인들이 사는 지역의 한 아랍계 보석상을 없애야 하는 일에 얽히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임스 그레이의 첫 장편 데뷔작이자, 첫 범죄 영화인 [리틀 오데사]는 이후 영화들의 설정에도 꽤나 중요한 이정표로 다가온다.

이후 작품인 [더 야드]와 [위 오운 더 나잇]에서도 다뤄진 것처럼 마피아라는 설정과 유대인인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틀 오데사]는 과장되지 않는 주인공의 과감한 살인 행위가 담긴 작품으로,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그만의 담백한 연출 덕분에 작품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 경쟁부문 진출, 곧바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제임스 그레이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투 러버스(2008)

이미지: (주)수키픽쳐스

데뷔작 [리틀 오데사]을 비롯하여 촬영 3년 만에 공개한 [더 야드], 7년 만에 연출한 [위 오운 더 나잇]까지 계속하여 범죄 영화를 연출해오던 제임스 그레이의 필모그래피가 변화점이 생겼다. 차기작을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제작사의 제안 덕분에 만들어낸 [투 러버스]가 그 주인공이다. [투 러버스]는 사랑하던 약혼녀와 이별한 ‘레너드’의 곁에 다정한 성격의 ‘산드라’와 치명적인 미모를 소유한 ‘미쉘’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작품이다. 정확히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산드라의 존재에도 애인이 있는 미쉘에게 이끌리게 되는 레너드의 이야기다.

범죄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제임스 그레이는 [투 러버스]를 기점으로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해당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상 유의미한 전환점이라는 반응을 얻었을 정도다. 제임스 그레이의 연출 능력과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력이 어우러져 웰메이드 로맨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 1,630만 불의 수익을 기록하여 큰 흥행을 거두진 못했지만, 현실적인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민자(2013)

이미지: 주식회사 씨네룩스

제임스 그레이는 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각색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1920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이민자] 또한, 실제로 이민을 선택했던 자신의 증조부모의 경험담을 일부 풀어냈다. [이민자]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 엘리스 섬에 도팍한 ‘에바’가 댄스홀 호스트 ‘브루노’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고, 운명처럼 마주친 ‘올란도’를 만나면서 희망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데뷔작부터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 정확히는 외부인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본격적으로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실제로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러시아계 유대인인 그가 1920년대, 이민을 택했던 인물이 뉴욕의 밑바닥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뤄낸 것이다. [이민자]는 칸 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마리옹 꼬띠아르의 놀라운 열연과 함께 섬세한 연출에 대한 호평을 받았다. 제임스 그레이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한 결정적인 작품이다. 덧붙여 영원한 단짝인 제임스 그레이와 호아킨 피닉스가 함께 작업한 네 번째 작품이자, 현재로선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잃어버린 도시 Z(2016)

이미지: (주)영화사 빅

[잃어버린 도시 Z]는 탐험가 퍼시 포셋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정확히는 그의 삶을 기반으로 둔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제임스 그레이의 전작과 달리 타인의 삶을 주로 다뤄 흥미를 끌었다. 영화는 아마존 탐사 중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문명의 증거를 발견한 ‘퍼시 포셋’이 번번이 탐사에 실패하자, 마지막 탐사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아들 ‘잭’과 함께 아마존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을 치열하게 그린다.

작품은 어드벤처 무비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같은 연출이 아닌, 문명을 탐사하기 위해 탐험을 이행했던 인물의 삶에 집중했다. 퍼시 포셋이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어떠한 마음이었는지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인물의 탐험에 대한 의지와 진심을 담아냈다. 무엇보다 퍼시 포셋 역을 맡은 찰리 허냄을 비롯한 시에나 밀러와 톰 홀랜드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잔잔한 연출과 밀도 있는 연기의 조합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험 영화의 매력을 자아냈다.

애드 아스트라(2019)

이미지: 20세기 폭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 함은, 다소 스펙타클한 설정의 모험 서사나 아찔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예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제임스 그레이의 우주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우주보다 인간에 더 카메라를 밀착했기 때문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 안테나에서 지구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 ‘로이’가 이러한 이상현상의 원인이 우주에서 실종된 아버지와 관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은 SF 영화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슈퍼 스타가 출연한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애드 아스트라] 역시 제임스 그레이가 이전에 보여준 잔잔하고 묵직한 스토리텔링과 과장되지 않은 연출이 주를 이룬 작품으로, 관객들의 호불호가 꽤 많이 나눠졌다. 그럼에도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포함해 다양한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전세계적으로 1억 3천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5천 5백만 달러의 [위 오운 더 나잇](2007) 을 넘어선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