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에 목매는 사람이 많다. 그로 인해 명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계속해서 치솟고 있어, ‘이거 나만 살기 힘든 거야?’하는 생각에 한숨을 쉰다. 물론 한정판을 만날 기회나, VIP 자격을 주겠다고 하면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메뉴]의 초반 풍경 역시 그렇다. 영화는 일류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한정된 사람만 초대된 섬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에 관한 여타 배경 설명 없이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는 미식가인 타일러(니콜라스 홀트)를 따라왔다는 것뿐. 섬으로 향하는 배에서 연예인을 만나는 등 이런 셀러브리티 사이에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흥분된 타일러와 달리 마고는 시종일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주인공인 마고마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며, 극중 등장인물 모두에게 의심의 시선을 놓지 않게 만든다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요리사들의 등장은 작품의 묘한 공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그때마다 셰프인 슬로윅(랄프 파인즈)의 요란한 박수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의 박수소리가 커질수록 새로운 요리가 나오고, 그때마다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가 펼쳐져 목숨을 건 식사시간은 계속된다. 

이미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더 메뉴]는 스릴러이자 블랙 코미디다. 물론 제목에 걸맞게 예술적인 코스요리를 눈으로 맛보는 재미까지 있다. 한 끼에 180만 원이나 한다는 음식의 비주얼은 상상 그 이상이다. 대체 어디까지 먹는 것이고 어느 게 먹지 말아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화려하다. 심지어 접시를 넘어 바닥까지 장식된 코스에 행위 예술이 곁들여질 정도이니, 음식으로만 한정한다면 웬만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맛의 스케일이 펼쳐진다. 다만 이 음식에 쉽게 현혹되지 말자. 맛있는 음식의 등장 전후로 식욕을 달아나게 할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만, 진짜 속뜻은 따로 있다. 셰프가 왜 경제사범, 음식 평론가, 한 물 간 연예인 등 자신의 음식을 수단으로 일삼는 이들을 초대했는지 그 비밀이 코스 요리가 바뀔 때마다 나온다. 이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블랙 코미디가 일품인데, 현 상황이 폭소를 자아내면서도, 셰프의 진짜 의도가 밝혀질 때는 꽤 섬뜩하다. 코미디와 스릴러라는 두 장르의 콜라보레이션을 작품은 셰프의 섬세한 손길로 넘나든다. 특히 영화가 가리키는 방향이 비단 음식에만 한정되지 않기에 싸늘함은 배가된다. 2021년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에서 느껴진 현시대에 대한 풍자가, 이번에는 기품 있는 식사 시간에 펼쳐진다. 은은한 미소 속에 관절을 부러뜨릴 정도로 뼈를 때린다고 할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마고 역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의 큰 눈망울은 관객들이 점점 더 그에게 동화되게 한다. [퀸스 갬빗]으로 스타덤에 오른 안야 테일러 조이의 필모를 살펴보면 은근 공포영화의 출연이 많다. 호러퀸으로 단련된 그의 연기는 이야기 후반으로 갈수록 무르익는다. 배우들의 연기 모두 음식만큼 괜찮은 앙상블을 보여줘, 위화감 가득한 분위기에도 관객들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해준다. 테일러 역을 맡은 니콜라스 헌트 특유의 순수하고 무해한 역할은 때때로 웃음을 건네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속셈에 꽤 뒤통수가 얼얼할 것이다. 

이미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더 메뉴]는 원래 엠마 스톤이 주연을 맡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추구하는 여주인공의 이미지가 뚜렷했던 것이 흥미롭다. 만약 둘의 콜라보레이션이 계속됐다면 지금의 [더 메뉴]와는 어떻게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결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영화는 작품 속 음식처럼 정말 신선하다는 것이다. 그 신선함이 독특한 재미와 강력한 풍자로 다가올지, 생뚱맞고 이질적인 시도로 느껴질지는 취향에 따라 많이 갈릴 것 같다. 아무쪼록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는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