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언론시사회 후 기자회견에서 윤제균 감독은 이 작품을 ‘절반의 익숙함과 절반의 새로움’이라고 밝혔다. 뮤지컬 장르 자체가 드문 한국영화에서 유명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도전은 과연 어땠을까? 3년 가까이 개봉일이 연기된 끝에 2022년 겨울에 뜨거운 마음으로 다가온 [영웅]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훌륭했다.

[영웅]은 도마 안중근의 독립운동 일대기를 담았다. 그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어떤 일을 겪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고뇌와 의지를 장대하게 담았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픽션의 드라마틱한 구성을 더해 탄탄한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눈과 귀를 울리는 뮤지컬이 등장, 안중근 의사의 결단을 숨죽이며 바라보게 한다.

이미지: CJ ENM

뮤지컬에서 영화로 옮긴 만큼 많은 점이 달라졌다. 원작에서 아쉬웠던 설희 캐릭터에 좀 더 이야기를 할애해 설득력을 부여했고, 뮤지컬에는 없던 노래도 추가했다. 안중근 역시 청년 시절 이야기를 첨가해 캐릭터 묘사에 더욱 공을 들인다. 이런 눈에 띄는 추가적인 요소뿐 아니라, 영화이기에 가능한 극적 장치도 많다. 전쟁씬, 대규모 군중씬 등 무대의 한계로 표현하기 힘든 구성을 큰 스케일로 재현해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매 대목마다 재치 있는 디졸브와 다이나믹한 카메라 앵글 등으로 영화만의 표현장치를 전체적인 이야기에 잘 집어넣는다.

뮤지컬에서 안중근 역할을 맡은 정성화가 영화에도 출연한다. 다른 출연진과 차원이 다른 노래 소화력과 발성을 선보이며, 이야기를 힘있게 이끌어간다. “뮤지컬과 영화의 연기의 차이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정성화는 뮤지컬은 전체 객석에게 자신의 노래와 연기를 전달하기 위해 큰 동작과 목소리가 필요하지만, 영화는 그런 점을 의식하지 않고 보다 더 섬세한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열연 덕분에 어느 순간 배우와 실존 인물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경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미지: CJ ENM

[영웅]의 제작 이유나 마찬가지인 뮤지컬 노래 역시 원작만큼 훌륭한 공연을 보여준다. 메인 테마나 다름없는 ‘단지동맹’과 ‘장부가’는 극의 오프닝과 엔딩을 담당하며 뜨거운 감정을 선사한다. 원작 뮤지컬을 모르는 분도 아는 ‘누가 죄인인가’는 대규모 군중의 합창과 역동적인 카메라 앵글로 몰입감을 더한다. 설희 역을 맡은 김고은은 솔로곡이 대부분인데, 기대 이상의 가창력을 선보이며 캐릭터의 감정을 더욱 구슬프게 한다.  안중근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역을 맡은 나문희는 뮤지컬 장르에서 노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임을 일깨운다. 그는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야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불렀는데, 가창력으로만 따질 수 없는 배우의 진심 어린 연기에 눈물이 자연스럽게 쏟아진다.

이 같은 장점에도 아쉬운 모습도 더러 있다. 스토리 자체가 느슨하게 이어지는 부분은 해당 장르의 특성상 이해한다 치더라도, 몇몇 부분은 집중에 방해한다. 특히 하얼빈 거사 직전에 너무 많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사연을 노래로 풀어내는데, 극 전체가 늘어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분명 원작의 노래를 다 살려야 하는 제작진의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민을 오히려 영화적인 연출로 적절하게 선택했다면 더 자연스럽게 서사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작품의 전체적인 톤과 맞지 않고, 항마력이 필요한 노래 역시 과감하게 삭제했다면, 구성의 흐름이 더욱 탄탄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다행히 이런 아쉬움이 크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영웅]은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한 위인 안중근을 더욱 가까이서 인간적으로 바라보게 한 시간이었다. 대의를 위해 희생되는 소, 가령 친구, 동료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야 할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영화는 이 감정을 구슬픈 노래로 흡입력 있게 전달해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그의 결심은 슬픈 감정 그 이상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데운다. 이처럼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훌륭한 재현은 물론, 어떤 플랫폼이든 흔들리지 않아야 할 주제의식을 꿋꿋하게 지키며 재미와 눈물을 동시에 전한다. 덧붙여 한국영화계에서 생소한 뮤지컬 장르가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