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다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

‘가늘고 푸른 선’ ‘서칭 포 슈가맨’

다큐멘터리 영화와 관련해 글을 쓰다 보면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스스로 할 때가 있다. 관객 층이 두터워 담론이 풍성하게 형성되는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매주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비교적 편리하게 아이템을 정할 수 있는 개봉 신작 영화도 아니고, 왜 하필 보는 사람도 적고 개봉 편수도 적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다른 영화 양식과 다큐멘터리 영화 양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다큐멘터리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말이다. 고민 끝에서 항상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 중 한 가지는, 제작 주체가 현실 세계와 긴밀히 조응하고 소통한다는(물론 모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점일 것이다. 정말이다. 어떤 다큐멘터리 영화는 자신이 세상을 바꿨다며 스스로 그 증거가 되기도 한다.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에롤 모리스의 [가늘고 푸른 선 The Thin Blue Line](1988)은 어느 살인사건 가해자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의 무고함을 밝혀내기 위해 감독이 현실 세계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취재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그리고 10년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랜달 애덤스는 이 영화 덕분에 누명을 벗고 석방됐다.

이미지: 미라맥스

그런 점에서 ‘다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은 이미 증명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 적어도 참여적 양식에 해당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서라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는 애초부터 세상을 바꾸면서 탄생한다. 현실 세계에 손도 대지 않고 ‘벽에 붙은 파리(fly on the wall)’처럼 현실 세계를 기록하려는 정신을 보여주는 다이렉트 시네마도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요한 양식이지만, 기본적으로 일상을 영위하던 이들의 삶은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한다 한들 옆에 따라붙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 어색해진다. 카메라로 인해 현실 세계가 변하는 것이다. 하물며 다이렉트 시네마와는 다르게 촬영 대상과의 긴밀한 소통을 전제로 하는 시네마 베리테적 전통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현실 세계를 크게 뒤흔들며 영화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다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를 묻는 질문이라면 [가늘고 푸른 선] 말고도 그 질문 앞에 내놓을 아주 매력적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서칭 포 슈가맨]이다.

‘서칭 포 슈가맨’ 끝내 통하고야 마는 진심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이미지: 판씨네마(주)

2집 가수 시스토 로드리게스는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노래를 ‘떼창’하고 있는 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1집 앨범을 단 6장 판매하는 데 그친 무명 가수였다. 1집의 6장보다도 적게 팔린 2집을 끝으로 로드리게스는 더 이상 앨범을 내지 않았고, 그는 종적을 감춘 채 사라지며 사람들로부터 신속하게 잊혀졌다. 그를 기억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무대에서 사고를 당해 그만 죽었다고도 했다. 갖은 소문과 달리 사실은 건설 노동자로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로드리게스는 그의 음악을 사랑한 열혈 팬 두 명과 말릭 벤젤룰 감독의 호기심으로부터 발견된다. 감독은 그의 노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5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혁명가로 불려 금지곡으로 지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떻게? 오로지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2011) 덕분이다. 기자 출신인 말릭 벤젤룰 감독은 [서칭 포 슈가맨] 다큐멘터리에서 로드리게스를 찾아가는 여정을 온전히 기록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 기록은 영화가 스스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보여주었고, [서칭 포 슈가맨]은 개봉 당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다. 국내에서도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큰 사랑을 받았다. 관객수는 2만 명(1만 명을 넘기지 못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부지기수이다)을 넘어섰고, OTT 플랫폼에도 공개됐다. 또 지금은 종영한 음악 예능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의 모티브가 바로 이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이다.

이미지: 판씨네마(주)

그러나 [서칭 포 슈가맨]은 단지 한 사람의 일대기를 조명하며 일생을 추적한 참여적 양식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만 소비하기 아까운 작품이다. 우선 이 영화는 무수한 세월이 무심히 흐르더라도 끝내 통하고야 마는 ‘진심’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로드리게스를 통해 [서칭 포 슈가맨]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진력을 다할 때 그 결과는 오랜 세월을 넘어 반드시 돌아온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래서 [서칭 포 슈가맨]은 모든 것을 걸고 걸어가는 길 끝에 희망이 보이지 않거나 좋은 결과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작품 제작 환경의 측면에서 보아도 그렇다. 제작 노트에 따르면 말릭 벤젠룰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 예산이 충분하지 않자 [서칭 포 슈가맨] 일부 장면을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작품 완성을 위한 높은 집념과 순발력 있게 내려진 판단의 결과다. 로드리게스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감독은 뚝심 있는 연출력과 기획력을 보여주었고, 다큐멘터리 제작 주체에 요구되는 덕목과 정신을 로드리게스 감독이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거의 모든 촬영 조건을 다 맞춘 상태에서 제작하는 극영화와 달리, 촬영 과정에서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감독은 환경에 맞게 매 순간마다 순발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각각의 결정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이미지: 판씨네마(주)

결과적으로 말릭 벤젠룰 감독의 결정은 [서칭 포 슈가맨]의 엔딩이 보여주듯 거의 모든 순간 옳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와 달리, 만약 감독이 로드리게스를 만나지 못했을 때 [서칭 포 슈가맨]은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서칭 포 슈가맨]을 좀 더 재미있고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에 크게 기여하는 로드리게스의 음악 역시, 최소 약 한 달 동안은 독자들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