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사랑’, ‘우정’, 그리고 ‘성장 서사’하면 머리를 스치는 작품들이 있다. [섹스 앤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대표적인 예다. [더 패뷸러스]는 여기에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더해 오늘날 2-30대들의 공감과 이목을 이끌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볼거리만 기억에 남을 뿐,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이미지: 넷플릭스

명품 브랜드 홍보대행사 ‘오드리’의 과장 표지은(채수빈)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소위 말하는 ‘갑’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트렌드와 경쟁사에 뒤쳐지지 않으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그래도 괜찮다.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패션 업계에 몸담고 있고 함께 꿈을 좇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지은에게 큰 힘이자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리어와 함께 순항 중이던 지은의 연애전선에 강렬한 파장이 일어난다. 감정에 휩쓸려 친구로 지내는 전 남자친구 지우민(최민호)과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설상가상 현 남자친구 이남진(최원명)은 ‘서로 잘 안 맞는 것 같다’라며 이별을 통보하고, 갑자기 나타난 연하남 심도영(김민규)이 거침없이 다가오며 지은의 마음을 뒤흔든다. 과연 지은은 일과 사랑, 모두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패션계를 배경으로 한 청춘 로맨스라 부르기엔 [더 패뷸러스]의 캐릭터 성장 서사는 다소 빈약한 편이다. ‘청춘’과 ‘로맨스’ 중 보는 이가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성장 서사의 유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풋풋하고 미숙한 청춘들이 사랑을 비롯한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청춘 로맨스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극중에서 이러한 서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선호(박희정)와 조세프(이상운)가 각각 시니어 모델, 신예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미래를 고민하고 변화하는 모습은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더 패뷸러스]라는 작품을 이끄는 건 표지은과 지우민이고, 선호와 조세프는 사실상 ‘두 사람의 베프’ 포지션이라 전체적인 이야기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지은과 우민의 서사는 철저히 로맨스 위주라 선호와 조세프의 현실적인 고민과 성장으로 완성된 서사에 비해 가볍게 느껴진다. 특히 지은의 서사는 ‘인맥’으로 시작해 ‘인맥’으로 끝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마다 백마 탄 누군가가 나타나 문제를 뚝딱 해결해주니 보는 입장에서는 맥이 탁 풀린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인맥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이 추구한 ‘하이퍼리얼리즘’인 걸까.

일부 캐릭터 설정도 눈에 거슬린다. 우선 조세프는 한국 드라마에서 흔치 않게 작품 전면에 내세운 퀴어 캐릭터였기에 내심 새로움을 기대했다. 하지만 조세프에 대한 묘사는 오래전부터 대중매체에서 동성애자를 다루던 일차원적이고 편견 어린 시선으로 가득해 그에게 주어진 좋은 성장 서사가 빛을 잃는다. 한없이 예민하고 가볍기만 한 퀴어 캐릭터가 아닌, 다채로운 설정을 더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또 심도영은 현실이었다면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의 전화번호와 직장을 멋대로 알아내서 연락하고 쫓아다니다니. 엄연한 범죄를 극중에서 ‘직진 연하남’이라 포장하는 건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미지: 넷플릭스

그럼에도 [더 패뷸러스]를 끝까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배우들 덕이다. 아쉬운 건 캐릭터지,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채수빈과 최민호, 박희정, 이상운을 비롯한 젊은 배우들의 활력과 예수정, 이미도, 임기홍, 신동미 등의 무게감 있는 퍼포먼스가 드라마를 지탱한다. 그중에서도 채수빈의 활약이 특히 돋보인다. 통통 튀고 사랑스러움 가득한 배우의 매력이 깊이가 얕은 스토리와 캐릭터, ‘항마력’을 요구하는 대사의 향연을 견딜 수 있게 한다.

[더 패뷸러스]는 잠재력만 보여준 작품으로만 남았다. 치열한 패션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매력 넘치는 청춘 스타들의 조합은 잘만 풀어냈다면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게 몇 번의 화려한 런웨이쇼와 채수빈의 존재감 뿐이라니, 전혀 패뷸러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