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 이후로 다시 드라마에 돌아온 김정현과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선보인 임수향이 한 작품에서 만났다. [꼭두의 계절]은 죽음의 신 꼭두와 의사 한계절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환생, 재회, 신과 인간의 만남 등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소재가 눈에 띄는데, 과연 드라마는 이 요소들을 잘 담아냈을까.

한계절(임수향)은 소녀가장으로 기댈 곳 하나 없이 자란 응급의학과 의사다. 맑은 하늘에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한계절은 일하던 병원에서 해고당하고 나오는 길에 계단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칠 뻔하는데, 어디선가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사라진다. 이후 한계절은 면접을 보러 간 필성병원에서 그 의문의 남자인 도진우(김정현)와 재회하고, 그는 자신의 재량으로 한계절을 낙하산으로 채용한다. 재회의 기쁨과 든든함도 잠시, 도진우가 한계절을 채용한 이유가 음모로 인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였음이 드러나고,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계절은 그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범인 병원 이사장 김필수(최광일)를 고발하기로 한 날에 도진우가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한다. 그리고 죽은 도진우의 몸에 죽음의 신 꼭두가 빙의하고, 한계절과 마주한다.

이미지: MBC

드라마는 한계절과 꼭두의 전생의 인연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전생의 두 사람은 가문을 위해 팔려 가듯 혼례를 올려야 했던 공녀 설희와 그를 지키는 호위무사 오현이었다.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은 함께 도망치려 하지만, 오현은 붙잡혀 설희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이후 설희는 오현을 죽이고 자신을 데려온 혼례 상대를 죽인 뒤 자결한다. 설희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오현은 얼굴도, 이름도, 만나길 기다리는 이유조차도 잊어버릴 정도로 오랫동안 저승에서 설희를 기다린다. 그는 결국 신이 정한 운명을 거스른 죄로 저승에서는 한 맺힌 망자를 이끌고, 이승에서는 살인을 되풀이하는 저주에 걸린 꼭두가 된다. 이 저주를 풀려면 99년마다 99일간 이승에 가서 환생한 설희를 찾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만 한다.

전생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두 인물의 관계는 매력적인 로맨스를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소재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는 전생과 현재의 이야기를 늘어질 새 없이 빠르게 진행한다. 전생 시점에서 공녀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무사에게 무술을 배우고, 무사는 “널 지켜준다”는 말과 함께 공녀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등 짤막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두 사람 사이의 로맨틱한 관계를 잘 설명한다. 그에 비해 현재 시점에서는 한계절이 꼭두에 의해 이리저리 치이고, 꼭두는 그저 저주를 풀고 평온을 얻기 위해 한계절과 부딪치면서 빠르게 흘러간다. 그렇다 보니 전생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로맨스로 변모하게 될 감정선의 변화가 잘 와닿지 않고 두 인물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밋밋하다. 특히, 꼭두의 성격이 변화의 폭이 큰 게 문제다. 무사 시절의 묵직한 분위기부터 현재의 발랄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한 번에 그려내 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붕 뜨는 느낌을 준다.

이미지: MBC

그 외에도 풀어야 할 이야기가 꽤 많아 걱정스럽다. 먼저, 한계절과 도진우가 재회한 계기가 되었던 의료사고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사고의 진범인 김필수가 어떤 이유로 환자를 죽인 것인지, 또 한계절과 꼭두가 전생부터 이어진 악연을 어떻게 풀어낼지도 관건이다. 여기에 더해 꼭두가 성범죄자와 아동학대범을 얼려 죽인 살인사건들도 점차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한계절과 꼭두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둘 사이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느라 사건들을 겉핥기식으로 보여주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번에 쏟아지니, 전개는 빠르지만 이야기의 깊이가 얕은 점이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제 겨우 극의 4분의 1을 지나왔다는 것이다. 얼기설기 뒤엉킨 이야기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면서 설득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남은 회차를 통해 매력적인 환생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