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 성향을 가진 주인공들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의 익숙한 레퍼토리다. 지난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연애대전]은 “치명적 상극 로맨스”를 콘셉트로 극과 극의 가치관을 가진 두 주인공을 내세운다. 드라마는 남자에게 병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여자와 여자를 병적으로 의심하는 남자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자 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연예인 송사를 전담하는 로펌 길무의 첫 여자 변호사로 입사한 여미란. 그의 눈에 출중한 외모와 연기, 각종 선행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배우로 군림하는 남강호가 수상하다. 우연히 들은 대화에서 그가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임을 알게 된 것도 모자라, 미성년자와 친밀하게 있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남다른 정의감을 가진 미란은 로펌의 VIP 고객인 남강호의 뒤를 캐기로 한다. 

남강호는 로펌의 새 변호사 여미란이 거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만남부터 일부러 강호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가 하면, 담당 변호사도 아니면서 과하게 접근하며 그의 눈에 띄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강호의 눈에 미란은 팬을 핑계로 그의 환심을 사려는 뻔한 여자 같다. 

미란과 강호는 소위 말하는 ‘혐관’에서 시작한다. 각자의 이유로 이성을 불신하는 두 사람은 여느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처럼 서로를 오해하고 의심하며 삐그덕거리는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예상 가능한 수순으로 상대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끌린다.

이 익숙하고 전형적인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는 것은 캐릭터다. 특히 여미란의 시원시원한 존재감이 반갑다. 지난 몇 년 사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데, 여미란은 한 발짝 더 나간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여미란은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당차다. 그는 가부장적인 아빠와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들에게 실망하고, 여자를 약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싫어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시켜온 인물이다. 미란의 매력은 불신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성과는 가볍고 자유로운 만남을 추구하고, 다방면으로 익힌 호신술로는 나쁜 남자들을 응징한다. 그뿐인가, 성격은 어찌나 소탈한지 생일인 줄 모르고 액션 코치를 부탁한 강호가 미안해하자 “공휴일도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미지: 넷플릭스

데뷔 후 처음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했다는 김옥빈은 인물의 개성을 살린 일등공신이다. 그간의 어둡고 무거운 캐릭터에서 벗어나 적당히 능청스럽고 쾌활한 미란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극을 종횡무진한다. 왜 이제야 이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을 정도로 밝고 건강한 매력이 캐릭터에 잘 묻어난다. 또한 [악녀]로 대표되는 액션 연기는 드라마의 성격에 맞게 코믹하게 변주해 캐릭터의 독특한 면을 공고히 한다.

마찬가지로 진지한 이미지가 강했던 유태오 역시 이전보다 가벼워진 모습을 보여주니 새롭다. 그가 맡은 강호는 남자의 재력만 좇던 엄마와 첫사랑에게 받은 상처로 여성을 멀리하는 인물이나, 유태오는 차가운 면모가 있는 캐릭터를 마냥 싫지 않게 그려내 미란이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설득력을 부여한다. 몸을 아끼지 않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웃음을, 부드럽고 스윗한 로맨스로 설렘을 자아내며 김옥빈과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그중 김옥빈과 액션 합을 맞출 때의 연기가 재밌다.

다만 [연애대전]은 개성 있는 캐릭터와 신선한 캐스팅은 인상적이나 그 이상의 매력은 크게 느끼지 않는다. 먼저 도원준(김지훈)과 신나은(고원희) 서브 커플 스토리를 도식적으로 그려내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그보다 미란과 나은, 미란과 최수진(김성령)의 워맨스나 강호와 원준의 브로맨스가 더 흥미롭다. 

여미란 같은 도전적인 캐릭터에 비해 연출이 밋밋하고 올드한 것도 아쉽다.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지만, 세련되게 조율이 안된 느낌이다. 면접이나 회식 등의 일부 장면은 유치하게 오글거리기도 한다. 더 뻔뻔하게 밀고 나가거나 수위를 높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몇몇 아쉬움은 있지만 김옥빈과 유태오의 색다른 모습과 캐릭터들의 티키타카로도 무난하게 즐길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