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길복순]부터 [퀸메이커], [닥터 차정숙], [종이달]까지, TV와 드라마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가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의 전쟁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치열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인간적이었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겠다. 세상이 ‘여왕’(혹은 그만한 위치의 수장 혹은 리더)이라고 부른 여인들은 누구보다 화려하고 고독한 삶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래 5편의 전기 영화를 통해 치열하고 외로운 퀸들의 세계를 엿본다.
엘리자베스(1998)
영화 [엘리자베스]는 3살엔 사생아였고 21살엔 사형수였지만, 25살엔 세계를 지배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이다. 그는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마련한 군주였으며, 평생 미혼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랑과 정치, 음모 등 여러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점차 진정한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신인이었던 케이트 블란쳇이 엘리자베스 1세 역할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후 영화 [골든 에이지]를 통해 10년 만에 다시 한번 엘리자베스 1세 역을 맡기도 했다.
철의 여인(2011)
[철의 여인]은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 ‘마가렛 대처’의 정치 인생과 노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역대 보수당 최장수 내각, 전후 최장수 내각이며 현대 영국 보수당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남성들의 세계라 여겼던 정치계에 뛰어들어,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카리스마를 통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주연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마가렛의 싸우고자 하는 열정, 싸움에 대한 욕구가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생전이나 사후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지만,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늘 그랬듯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철의 여인’ 그 자체가 되었고,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재키(2016)
[재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전후를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이다. 모두가 사랑한 퍼스트 레이디 재키는 미적 감각 또한 높았으며, 영화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재키룩’을 구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케네디 암살 당시 입었던, 비극과 상반되는 분홍색 수트는 재키의 상징이 되었다. 영화 전체가 당시를 그대로 재현했다 말해도 좋을 정도로 당시 재클린 케네디와 인물들의 패션,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고스란히 반영됐다.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을 맡아 다양한 ‘재키룩’ 스타일을 완벽히 소화했고, 연기 또한 호평을 받았다.
더 퀸(2006)
[더 퀸]은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내놓을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인간 엘리자베스 2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여왕이기에, 전통과 명예를 지켜야 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혀야 했으며, 늘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교육받았다. 여왕의 화려한 왕관 뒤에 가려진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가장 화려한 동시에 가장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영국 왕실과 다이애나 비의 죽음이라는 다소 민감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를 과감히 보여줬고,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헬렌 미렌이 주연을 맡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아래 소개할 마지막 영화, [스펜서]와 연이어 보면 더욱 다채로운 관람을 할 수 있다.
스펜서(2021)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는 따뜻한 카리스마와 선한 영향력으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영화 [스펜서]는 세기의 아이콘으로 불린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주연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의 억양과 제스처, 헤어스타일까지 완벽히 소화했고, 탁월한 캐릭터 해석으로 전 세계의 극찬을 이끌어 냈다.
이 영화를 보면 왕위에 오른 찰스 3세(당시 찰스 왕세자)가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왜 이렇게 여론이 안 좋았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읽을 수 있다. 반대로 ([더 퀸]에서 묘사한 것처럼) 왜 영국 왕실이 유독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에 미적지근하게 대처했는지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