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한국 영화의 격을 높이는 아티스트,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

영화진흥위원회가 배우 문소리를 소개하는 문장이다. [박하사탕]으로 데뷔해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가족의 탄생], [아가씨] 등 수많은 대표작을 가진 문소리는 현재 감독, 작가, 프로듀서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훌륭한 연기력 위에서 뿜어지는 카리스마가 문소리의 강점일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 속에서도 그 모습이 드러난다. 두려움 없는 퀸 오브 퀸, 문소리의 다양한 얼굴들을 그의 대표작들을 통해 만나보자.

오아시스(2002)

한공주 역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영화 [오아시스]. 데뷔작 [박하사탕] 이후 이창동 감독, 설경구와 다시 만나게 된 작품이다. 우선 [박하사탕]에서 그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영호(설경구)의 첫사랑이자 세상에 때묻지 않은 그의 가장 순수한 시절을 풀어내는 인물 순임 역을 맡았다. 신인 배우답지 않은 섬세한 감정 연기로 나중 다가올 영호의 비극을 더욱 부각시키며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 명연기를 펼쳤다.

이후 [오아시스] 속에서 문소리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한공주’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문소리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6개월 이상 턱관절을 한쪽으로 쓰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한 신경외과 의사는 [오아시스] 속 문소리의 연기가 워낙 출중하여 진짜로 뇌성마비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줄 알았다고 말했고, 이것은 관객과 평단도 마찬가지였다. 문소리는 [오아시스]를 통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았고, 여러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바람난 가족(2003)

은호정 역
이미지: 영화사청어람

2003년 개봉작 [바람난 가족]은 말 그대로 온 가족이 바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변호사 남편 영작(황정민)은 한참 나이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나고, 평범한 삶에 질린 주부 호정(문소리)은 옆집 고등학생 지운(봉태규)의 노골적인 대시를 받고, 환갑이 지난 호정의 엄마 병한(윤여정)은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난다. 문소리는 전직 무용수이자 남편에게 싫증이 난 후 옆집 고등학생과 관계를 이어가는 호정 역할을 맡아 과감한 연기를 선보였다. 솔직하다 못해 뻔뻔한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며, 파격적이고 관능적인 이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그 존재감을 인정받아 대종상 영화제, 춘사영화제 등 다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게 된다.

가족의 탄생(2006)

미라 역
이미지:롯데엔터테인먼트

‘가족’이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그린 [가족의 탄생].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남매 미라(문소리)와 형철(엄태웅)에 20살 연상녀 무신(고두심)부터 현실주의자 선경(공효진)과 남자친구 준호(류승범)에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김혜옥), 그놈의 ‘사랑’ 때문에 인생이 편할 날 없는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까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 가족은 피곤하게 엮이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찬란한 행복을 만들기 위해 나아간다.

세 가지 사랑과 여덟 가지 스캔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가족의 탄생]은 김태용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눈동자의 흔들림, 주름의 변화, 손끝의 떨림 등 배우들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감정을 포착해 전달한다. 문소리는 똑 부러지는 인생을 꿈꾸던 미라 역할을 맡았고, 동생이 사랑하는 여자와의 아슬아슬하고 숨 막히는 케미를 선보인다. 고두심과 문소리를 비롯해 엄태웅, 공효진, 봉태규, 김혜옥, 정유미, 그리고 우정출연한 류승범까지, 막강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한미숙 역
이미지: 싸이더스 FNH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친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며 투혼을 발휘했던 노장 선수들이 올림픽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코트로 귀환하는 이야기다.

문소리는 대한민국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이자 최고의 핸드볼 선수였지만, 팀 해체 후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미숙 역할을 맡았다. 나이가 많아서, 여자라서 안 된다고 말하는 세상에 맞서 근성과 투지를 보여준다. 문소리를 비롯한 배우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펼치는 국가대표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드리블, 패스, 슈팅 및 고난도의 세트 플레이, 페인팅 모션 등 3개월 이상 강도 높은 훈련을 병행하여 진행했다고 한다. 그 땀과 투혼이 녹아 있는 경기 장면은 단연 관전 포인트이다.

여배우는 오늘도(2017)

문소리 역
이미지: (주)메타플레이

문소리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데뷔 18년 차였던 문소리는 직접 감독, 각본, 주연까지 맡은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뜻밖의 데뷔작을 선보인다. 영화는 어제는 날았고 오늘은 달리는 배우 문소리의 자력갱생을 담아낸다. 트로피 개수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지만 며느리, 딸, 엄마 역할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진짜 문소리의 이야기다.

영화는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는 여배우의 고단한 날갯짓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준다. 마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날것의 외모, 대사,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도, 남자 배우 중심으로 편재돼 있던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여배우 원톱 주연 영화를 내놓았다는 것도, 모두 문소리답다.

세자매(2020)

전미연 역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문소리가 주연과 프로듀서를 맡은 [세자매]는 가족으로서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문제적 세 자매가 내 부모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괜찮은 척하는 소심 덩어리, 안 취한 척하는 골칫덩어리 세 자매는 가부장제 속에서 자란 평범한 자녀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세자매]의 소재는 가정폭력과 트라우마로,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상처 입은 자녀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단단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문소리가 연기한 미연은 티끌 하나 없는 인생을 그리며 살아가지만,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둘째 역할이다. 영화는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세 배우의 앙상블이 특히 호평을 받았고, 문소리는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