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전생을 기억할 수 있다면? 수십 개의 생에서 쌓은 기억과 경험이 내 몸에 쌓여 있는 상태에서 새 삶을 사는 건 이점일 수 있다. 다만 수십 개의 생에서 만나고 이별한 사람들, 슬픔과 아픔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력을 잘 녹여낸 인기 웹툰 [이번 생도 잘 부탁해]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오랜 준비를 거쳐 마침내 공개된 드라마는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퀄리티 높은 연출로 눈길을 끈다.

출처: tvN

주인공 반지음은 이번이 인생 19회 차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전생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다른 생보다 살기 팍팍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음은 수십 번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인생을 개척했다. 그의 목표는 인생 18회 차에 만난 ‘그 아이’, 문서하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지음은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한국으로 돌아온 문서하를 만나고,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서하에게 “좋아한다”, “첫사랑이다”라며 직진한다. 한편 서하는 오랫동안 아팠던 어머니와 사고로 죽은 첫사랑, 주원을 그리워하고 있다. 자신 앞에 나타난 ‘이상한 여자’ 반지음의 모든 행동에 당황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동시에 지음에게서 죽은 주원이 보이면서 혼란을 느낀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를 보기 전엔 독특한 설정을 밝고 통통 튀게, 그렇지만 엉뚱하지 않게 풀어낼까 궁금했다. 작품은 수많은 전생의 삶을 기억처럼 조금씩 풀어내는 배치 방식과 배우의 캐릭터 해석과 연기에서 그 해답을 찾은 듯하다. 19회 차 인생 ‘지음’의 지금을 만들어낸 수많은 경험은 긴 설명 대신 곳곳에 다양한 배우가 연기하는 인생의 스냅숏 같은 짧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그 인생을 살아낸 지음은 ‘애어른’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지음과 그의 전생을 연기했던 배우들, 특히 박소이(어린 지음)와 김시아(주원)는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반지음이 문서하를 저돌적으로 ‘꼬시는(!)’ 부분이 많지만, 대책없이 밝고 가볍지는 않다. 특히 전생의 인연을 찾으면서 지음이 알게 되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이 드라마의 무게 균형을 잡고 있다. 주원을 잃은 서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주원의 가족은 죽은 딸, 언니를 수십 년 넘도록 애도한다. 지음이 함께 사는 애경도 전생에서 삼촌(지음의 다른 전생)을 잃은 후 혼자 아픔을 견디며 성장해야 했다. 자신의 고통에만 머물러 다른 사람들을 살피지 못했다는 지음의 말에서 이 드라마가 그저 독특한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서하와 초원이 주원을 그리워하는 순간마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출처: tvN

배우들은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특히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연, 신혜선과 안보현은 자신들이 이 작품의 주연을 맡아야 하는지 증명한다. 신혜선은 이상한 여자 반지음을 귀엽게 그려낸다. 눈빛에 세월을 품었지만 아직도 성장할 부분이 있는 지음에 마력 같은 러블리함을 부여한다. 3화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상상 속에서 안아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연기에선 감탄만 나왔다. 안보현은 캐스팅 소식에 우려를 표했던 목소리를 일소하듯 그만의 문서하를 잘 그려낸다. 드라마 속 문서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무섭고 두려워서 가시를 세우는데, 지금까지는 서하의 고통을 잘 표현했다. 그래서 앞으로 서하가 겪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어떻게 그릴지 기대된다.

12부작인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지난 일요일까지 1/3을 마쳤는데, 로맨틱 코미디부터 드라마 요소까지 균형감 있게 챙겨가면서 빠르게 달리고 있다. 지음은 서하에게 처음부터 저돌적으로 들이댔고, 서하는 이미 곳곳에서 지음이 보이는 ‘입덕’ 상태다. 앞으로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랄 수 있지만, 드라마라면 주원을 죽인 교통사고의 진실과 지음이 환생을 거듭하는 이유까지 다루지 않을까 예상된다. 남은 회차 동안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겠지만, 지금처럼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어느 하나 빠짐없이 잘 회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