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2011년 개봉한 영화 [디태치먼트]는 ‘가장 현실적인 학교’를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미드나잇 인 파리], [피아니스트] 등으로 알려진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을 맡아, 특유의 쓸쓸하고 처연한 분위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연출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인종 차별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을 진지하게 탐구했던 토니 케이 감독이 맡았다. 뮤직비디오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을 만큼 탁월한 영상미를 구성하는 토니 케이 감독은 시선을 사로잡는 애니메이션 기법과 영리한 편집을 선보이며, 인물의 시선을 관객들이 다각도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위기의 교사와 위험한 아이들의 만남’이다. 얼핏 만나서는 안 될 관계이지만 오히려 그런 결핍 속에 서로가 상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하나둘씩 지워간다. 위기의 교사 ‘헨리’(애드리언 브로디)는 학생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과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부임한 학교는 유난히 문제아들이 모여 있어, 이곳의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를 포기한 채 암담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헨리가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학생들을 대하면서, 위험한 아이들은 서서히 헨리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더 이상 학생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으려 했던 헨리 역시 왕따 메레디스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로 인해 점차 변화하게 된다.

다소 낯선 제목 ‘디태치먼트(Detachment)’의 사전적 의미는 분리, 초연, 무관심 등 세상과 거리를 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니 감독의 ‘가장 현실적인 학교’란 서로에게 ‘무관심한 교실’로도 해석된다. 그리고 [디태치먼트]는 이 무관심(Detachment)으로 메말라버린 관계들이 어떻게 애정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관계(Attachment)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떠돌이 임시 교사 헨리를 비롯해 거리에서 방황하는 소녀 에리카,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 메레디스 등 불안하고 위태로운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제목의 의미가 더욱 와닿는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

이미지: 프레인글로벌

“지금까지 어느 것에서도 이러한 깊이를 느껴보지 못했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으로부터도 격리돼 존재하는 느낌이다.” 영화는 알베르 카뮈의 이 말을 인용했다. 스스로 임시 교사를 자처하며 수많은 교실을 떠도는 헨리의 상황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었고, 그 트라우마로 불완전한 굴레에 갇혀 버린 인물이다. 이로써 관객은 헨리가 소설 《이방인》속 주인공을 닮았으며, 그의 마음 안에도 강렬한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헨리가 겪는 부조리는 무엇일까? 전부 엉망인 교육시스템일까, 매주 금요일마다 찾아오는 고독일까? 그 모든 것 중 가장 숨막히는 부조리는 아마 자신 안의 나약함일 것이다. 제 몸 하나도 지켜내기 버거운데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자신의 직업과 가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할수록 더욱 짙어지는 외로움 같은 것들 말이다.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 배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지만, 그것은 어른이 된 자신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따돌림을 겪는 학생을 보듬을 만큼 헌신적인 교사도 아니고, 한 달 후 헤어질 동료 교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지도 않는다. 거리를 떠도는 소녀에게 집을 내어줄 만큼의 친절은 베풀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매춘을 말리는 어른은 아니다. 치매 걸린 자신의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에는, 할아버지가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만큼 괴로워하기를 바라는 복수심이 섞여 있다. 이 정도 교사라면 차갑고 냉정하다고 느껴지기 마련인데, 헨리가 거리를 두면 둘수록 어쩐지 더 안쓰러워질 뿐이다. 서툰 방식으로 애착을 형성하려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헨리를 포함한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삶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의 생기로 가득해야 할 교실은 삭막한 폐허가 되고, 책임질 수 없었던 에리카는 보호소로 보내지고, 헨리가 지켜내지 못한 메레디스는 끝내 죽음을 선택한다. 어떤 교육도, 교훈도, 영웅도 없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과 교사가 필요한 교사들의 방황과 고뇌만이 가득할 뿐이다. 냉혹한 교육시스템과 삭막한 사회 속에서 잊고 있었지만, 스승에게도 스승이 필요하다.

‘나도 정답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다’

이미지: 프레인글로벌

좋은 교육영화는 스승과 아이들이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디태치먼트]는 과연 좋은 교육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교육영화를 표방하는 [디태치먼트]는 어떤 교훈을 전달할 생각도, 무엇을 가르쳐 개도할 의도도 없어 보인다. 그저 흔들리는 교권과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방황하는 인물들 사이의 벽, 소통의 부재, 마음의 거리를 과장하지도 미화시키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또한 교육시스템에 대한 괴로운 묘사보다 인간의 나약함과 고독에 대한, 잔인할 정도로 깊숙한 접근이 더욱 인상적이다.

[디태치먼트]는 학교 내 폭력, 사제 간의 갈등, 탈선, 자살 등 현실의 학교들이 지닌 문제들을 날카롭게 보여주며, 우리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았다. 또한 무관심으로 분리되어 있는 관계가 점차 치유되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극중 인물들의 위태로움과 결말이 주는 씁쓸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디태치먼트]가 훌륭한 이유는, 불완전한 어른이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나도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세상 모든 정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스승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 아이들 마음에는 작은 실망감과 함께 거대한 안도감이 차오를 것이다. 당신이 사는 세상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안도감 말이다. 좋은 스승은 이렇게 함께 방황하고, 함께 넘어져 울어도 보는,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