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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개봉한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맥스] 시리즈를 연출한 조지 밀러 감독이 선보이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이다. 영국 소설가 A.S. 바이엇의 단편소설 「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나이팅게일 눈 속의 정령)를 바탕으로 하며, ‘인생의 신비와 모순을 잘 함축해서 담은 작품’에 매력을 느껴 영화화하였다.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달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가 우연히 소원을 이뤄주는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를 깨워내고, 3천 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지니가 들려주는 매혹적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부터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이르는 광활한 이야기와 낯설지만 압도적인 비주얼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인 배우 틸다 스윈튼과 묵직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 이드리스 엘바의 특별한 러브스토리 또한 관전 포인트이다.

지니와 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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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학자 알리테아는 인류의 모든 이야기에서 공통된 진실을 찾고자 한다. 런던에 살던 알리테아는 출장을 위해 낯선 땅 튀르키예에 도착했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집필했던 방에 묵게 된다. 공항에서 불법 택시기사인지 정령인지 모를 존재가 말을 걸어온 것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소란스러웠던 강연이 끝나고, 알리테아는 골동품 가게에서 모조품으로 보이는 호리병을 구매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호리병 안에서 거대한 불의 정령 지니가 깨어난다. 지니는 알리테아에게 당신이 날 풀어준 은인이라며, 감사의 표시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수많은 설화들에서처럼). 하지만 서사학자인 알리테아는 소원으로 시작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거부한다. 또한, 빌고 싶은 소원 세 가지는커녕 하나도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알리테아는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성이 혼자인 걸 좋아하던 어린 알리테아에게는 유일한 친구 ‘엔조’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어린 알리테아가 만들어낸 상상 속 존재였다. 실체 없는 엔조에게 사실성을 부여할수록 점차 의심은 커져갔고, 알리테아는 자신이 만든 친구를 난로에 태워 소멸시켰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니가 “그래서 제가 나타났군요”라고 말한 것은 흥미롭다. 우연히 나타난 것 같은 지니는 엔조의 또 다른 형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알리테아에게 엔조는 결핍의 산물이었므로, 지니의 등장은 곧 현재의 결핍을 의미한다.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읽고, 듣는 알리테아는 이렇게 가장 외롭고 공허할 때에만 자기 이야기의 저자가 된다.

신화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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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하필 지니가 소환된 걸까? 우선 지니가 불의 정령이라는 점과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건넬 것 같던 [3000년의 기다림] 속에서 과학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짚어본다. 막 깨어난 지니가 알리테아 다음으로 만난 인물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지니는 빛과 소리의 파형, 즉 텔레비전 속에 갇힌 아인슈타인을 꺼냈고, 알리테아는 그를 인간 세상의 마법사라고 소개한다. 이후 지니는 빠르게 변한 세상을 둘러본다. 인간이 인간을 살리고, 기계가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며, 커다란 접시가 죽은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이토록 문명이 발달한 세상을 보며, 지니는 인류가 놀랍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공학과 기술의 발전이 정령의 힘과 목적을 무색하게 한다는 진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렇게 자신이 존재의 이유를 다했다고 느낄 즈음, 지니는 천천히 소멸한다. 신화가 과학적 서술로 교체되고, 신화는 은유로 전락할 것이라는 알리테아의 예측은 어느 정도 정답이었다.

영화는 ‘과학이 신화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듯하다. 과학이 신화가 된다면, 신과 인간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소망도 느껴진다. 불이 다듬어져 빛과 전파가 되었듯 신화는 과학이 되었지만, 아직도 과학이 신화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청자는 음악을 들으며, 관객은 영화를 보며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품는다. 이야기가 촘촘하지 않을수록 각자의 개성이 부여되고, 그 세계는 특별하고 다채로워진다. 이런 생각으로, 신비와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과학은 신화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서사학자라는 낯선 직업과 신화를 연구하는 일은, 비이성적이고 무용한 것들을 품겠다는 의미이다. 아마 실용주의자들은 이를 어리석다고 여기겠지만, 함정이 있기 때문에 신화가 더욱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알까?

결핍과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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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영화는 당신 안의 결핍과 갈망을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이는 지니와 엔조라는 신비한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신화과 과학이라는 인류의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보다 더욱 중요한 메시지이다. 극의 초반, 알리테아는 지니에게 3000년 동안이나 병에 갇힌 이유를 물었다. 정령이지만 어리석고, 여인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던 지니는 “갈망 때문이지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짧게 답한다. 그러나 남편으로부터 ‘당신은 감정을 읽는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알리테아는 그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평생 한 가지의 소원조차 품기 어려운 그는 욕심 없는 경건한 사람 같기도,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겁쟁이 같기도 하다. 지니는 그를 위해, 자신의 3000년의 갈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싶다는 아주 사소한 갈망부터 시작되는, 오직 사랑이 만든 전설 같은 러브스토리였다.

지니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알리테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온다. 당신을 사랑하게 됐고, 당신도 나를 사랑해 줬으면 한다고. 지니의 진심 어린 이야기에 알리테아의 마음이 움직여졌고, “우리의 고독이 하나가 됐으면 해요”라는 소원 같은 고백을 건넸다. 더 정확히는 당신이 시바 여왕과 제피르에게 주었던 사랑을 나에게도 달라는 고백이었고, 텅 비어 있던 알리테아가 여자로서 가득 채워지기를 갈망하게 된 순간이었다. 알리테아의 이 고백은 신비하고 화려한 장면들이 휘몰아치는 [3000년의 기다림] 속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다.

자기 이야기의 저자가 되어본 적 없는 알리테아는 자신을 달아오르게 만들 만한 강렬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그의 무의식이 소환해낸 지니의 진짜 임무는, 공허한 삶에 갈망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불의 정령 지니라면 가능할 테니까. 알리테아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이 경험은 세상에게 들려주기 위한, 세상을 설득하기 위한, 신화로 남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정령과 사랑에 빠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고민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