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RAI, Vertigo Films

140년 간 전세계 사람들을 꿈꾸게 만들었던 명작 동화 [피노키오]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1883년 발표한 동화이다. 멋진 꼭두각시를 만들어 돈을 벌 계획을 세우는 가난한 목공 제페토 할아버지와 심장이 뛰는 나무인형 피노키오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제페토는 나무인형에게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로 여기지만, 호기심 많은 천방지축 피노키오는 말썽만 부리며 집을 나가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교묘한 거짓말들을 하는데, 그럴수록 피노키오의 코는 길어진다.

모두가 아는 이 이야기의 원제는 [피노키오의 모험, 한 인형의 이야기]로, 로마 지역 어린이 신문에서 최초로 연재되었다. 연재 당시 인기가 좋아서 동화책으로까지 출간되었고, 이후 전세계적으로도 번역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베스트셀러인만큼 꾸준히 영상화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1940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총 6편의 애니메이션과 4편의 실사 영화로 재탄생하였다.

그중에서도 [피노키오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실사 영화 [피노키오]는 매우 독특하다. 영화 [고모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던 이탈리아 유명 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연출하고 로베르토 베니니가 제페토를 연기했다. 또 재미있는 점이라면, 극중 제페토이자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역인 로베르토 베니니와 피노키오의 인연이 각별하다는 것이다. 콜로디를 좋아한다는 로베르토 베니니는 2003년 영화 [피노키오]의 각본에 참여하며 직접 피노키오 역할까지 맡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였다. ‘행복한 광대’로 불리는 로베르토 베니니다운 자유분방하고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리고 2021년, 또 한 번의 피노키오 실사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번에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제페토로 등장한다. 피노키오와 제페토를 동시에 연기한 배우는 잎으로도 로베르토 베니니가 유일할 것이다.

암울하고 기괴한 잔혹동화

이미지: RAI, Vertigo Films

2019년 공개된 [피노키오]는 원작에 충실하다는 반응과 함께 비평적으로는 호평을 얻었고 아카데미 의상상과 분장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화려하고 동화다운 분장과 의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마테오 가로네의 피노키오는 시종일관 암울하고 기괴하다. 창백한 얼굴의 귀여움을 잃은 피노키오부터 키 작은 귀뚜라미 요정, 눈이 먼 고양이와 외발의 여우, 달팽이 부인과 까마귀 의사, 재판관 원숭이와 서커스장의 당나귀, 커다란 입을 가진 참치까지 신비한 동물사전을 방불케 하는 캐릭터들 모두 기괴하다. 이들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은 ‘이질적인 불쾌함’을 의미하는 불쾌한 골짜기를 만들어낸다. 이 암울함과 기괴함의 이유를 묻는다면 원작인 동화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1880년대에 쓰여진 [피노키오]는 과거 대부분의 동화가 그러했듯 기묘하고 잔혹하고 지저분하며 수위 또한 높았다. 대표적으로 걸리버의 판타지 모험기를 그린 [걸리버 여행기]는 사실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 인간 혐오가 가득한 풍자소설이었으며 당시 금서로 지정됐었다. 달콤한 과자집으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헨젤과 그레텔]은 사실 잔인한 시대를 고발한 이야기였으며, 착하고 예쁜 [신데렐레] 이야기 속에는 잔혹한 복수 서사가 담겨 있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 [피노키오]는 이러한 동화의 잔혹성을 애써 포장하지 않기 때문에 기묘하다. 오히려 더욱 암울하고 기괴하게 묘사하며, 이 이야기는 아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못을 박는 듯하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어른을 위한 비주얼에 걸맞는 현대적이고 과감한 재해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원작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 덕분에 원작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호평을 얻었겠지만.

피노키오의 세상

이미지: RAI, Vertigo Films

원작에서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속을 썩이는 말썽꾸러기로 묘사된다. 외로운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요정의 수레에서 떨어진 소나무로 만든 피노키오는 주변의 꾐에 빠져 돈이 열리는 나무를 찾으러 가고, 밤낮으로 놀기만 하는 천국을 찾아 가출을 하기도 한다. 피노키오가 귀뚜라미라고 부르는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경고를 한다. 너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람들은 믿지 말라고. 그들은 미쳤거나 사기꾼이라서 결국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피노키오는 가난한 아빠에게 금화를 가져다주고 싶었기에 요정의 말을 무시한 채 동굴로 향한다. 정말로 금화가 열리는 나무가 있었고 많은 금화까지 얻었지만, 여우와 고양이는 피노키오의 목을 나무에 매달아 버린다.

사실 콜로디는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맺으려 했었다. 동화를 연재하던 신문사로부터 원고료를 받지 못해서 홧김에 피노키오를 죽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 납득할 수 없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콜로디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부활의 방식은 간단하다. 죽은 자들의 성에 사는 파란 머리 소녀가 피노키오를 구해서 간호하고, 책도 읽어주고, 학교에도 보내주니 피노키오는 회복한다. 아이들의 순진함은 이얼렁뚱땅한 전개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로도 피노키오의 말썽은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이 원래 그렇듯이 말이다. 금화가 열리는 나무에 이어 밤낮으로 놀기만 할 수 있다는 천국을 찾아나서고, 서커스장의 당나귀로 변하기도 하다가 결국 거대한 상어에게 잡아먹혀 버린다. 그때, 상어의 뱃속에서 뜻하지 않게 제페토와 재회하게 된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제페토와 용기가 없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는 참치 아저씨까지 구출하고, 노쇠한 제페토를 위해 돈까지 벌기 시작하며 조금씩 철이 들어간다.

피노키오의 세상에서 피노키오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럴 때마다 세상은 어린 피노키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극의 마지막에서 파란 머리를 한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푼다. 사실 피노키오는 요정으로부터 벌써 몇 번의 용서를 받았었는데, 이제야 그 용서와 너그러움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다. ‘항상 신중해야 한다. 그럼 행복할 수 있다.’ 피노키오는 이렇게 말하는 요정의 품에 안겨 그대로 잠이 들고, 눈을 떴을 때는 진짜 소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어른은 아이에게 몇 번이고 기회를 주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언제까지 아이일 수만은 없다는 잔혹한 진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