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분량과 무관하게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캐릭터를 선보여 온 배우가 있다. 그만큼 작품의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거나,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 박서준이 그러한 배우 중 하나이다. [퍼펙트게임]에서는 단역으로 약 1분 남짓의 분량으로도 시선을 끌어냈고,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렸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소지섭과 손예진의 성인 아들로 강렬한 엔딩을 선사했다. [기생충]에서는 사건의 시작이라 말해도 좋을 ‘기우’에게 고액 과외 자리를 제안하는 친구로 등장해 인상을 남겼다. 올해 박서준은 특별출연보다 특별한 연기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올 초 [드림]을 시작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더 마블스] 등 충무로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한다. 2023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어가는 박서준의 대표작들을 정리한다.

[악의 연대기](2015) ‘차동재’ 역

CJENM

영화 팬들에게 박서준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알린 작품은 단연 [악의 연대기]이다.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놓인 인물들의 행동으로 긴장감을 형성하는 스릴러 영화에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열쇠를 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악의 연대기]는 승진을 앞둔 ‘최반장’이 괴한에게 납치당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은폐했으나 의도와 달리 세상에 시체가 공개되자 사건을 조작하고 재구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박서준은 ‘최반장’과 같은 서울강남경찰서 강력1팀의 형사 ‘차동재’로 출연, ‘최반장’ 손현주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인물로 등장한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최반장(손현주)이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 애쓰는 긴장감을 이끌어간다면, 차동재(박서준)는 그런 그를 의심하게 만들 열쇠를 쥐게 되는 인물로 관객들의 긴장감을 자극한다. 당시 20대였던 박서준은 손현주와 마동석이라는 대배우들 사이에서 여린 사연을 지닌 인물의 시선을 표현, 첫 스릴러, 액션 장르의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이 같은 열연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수상,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에 성공했다.

[뷰티 인사이드](2015) ‘우진 60’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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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3명의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했다. 영화 속 분량에 따라 존재감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박서준은 해당 인물을 영화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기하는 배우로 등장했다. 물론, 양만 많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작품의 감성을 더한다. [뷰티 인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남자 ‘우진’이 자신의 비밀을 말하고 싶은 여자 ‘이수’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박서준은 ‘우진’을 연기하는 60번째 배우로 출연한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달라지는 나이대와 인종, 성별의 외모로 고민하던 ‘우진’이 처음으로 ‘이수’에게 처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에서 로맨스의 시작을 알린 첫 인물로서, 잠에 들면 외모가 바뀌는 ‘우진’이라는 인물의 수많은 감정을 온전히 전달했다. 처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할 때의 떨림, 데이트의 행복한 순간, 그리고 외모가 바뀌지 않도록 잠에 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 등은 관객들이 ‘우진’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청년경찰](2017) ‘박기준’ 역

롯데엔터테인먼트

기존 범죄 영화의 틀을 깬 영화 [청년경찰]에서도 박서준의 존재감은 빛났다. 박서준과 강하늘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무거운 요소들을 다뤄내지만, 의외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여름 시장에서 565만 관객을 모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청년경찰]은 경찰대학교의 학생 ‘기준’과 ‘희열’이 외출을 나왔다가 우연히 납치 사건을 목격한 뒤, 수사가 진행되지 않자 자신들이 직접 발로 뛰기로 결심하면서 마주하는 상황들을 그린 영화다.

박서준은 경찰대학교에 재학, 생각은 단순하지만 체력만큼은 뛰어난 ‘기준’으로 출연했다. 경찰대생 친구 희열(강하늘)과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수사를 펼치는 인물들의 케미를 선보여, 전반적으로 경찰대 재학생들의 유쾌한 반란극처럼 펼쳐냈다. 박서준은 당시 인기를 자랑한 FPS 게임의 대사를 인용한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야, 이 짭새야!”등을 비롯해 수많은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청춘의 풋풋한 캐릭터와 경찰대생이라는 패기를 완벽하게 표현한 박서준은 제54회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사자](2019) ‘용후’ 역

롯데엔터테인먼트

[청년경찰]의 성공으로, 박주환 감독과 박서준은 새로운 영화에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오컬트 장르에 액션을 더한 영화 [사자]가 그 주인공이다. [사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손바닥에 생긴 것을 발견한 격투기 챔피언 ‘용후’가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악을 퍼트리는 검은 주교 ‘지신’을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박서준은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신을 믿지 않았으나 새로운 힘을 얻게 된 ‘용후’를 연기했다. 신과 악의 세력의 사이에서 힘을 얻게 된 인물로, 영화는 오컬트 장르에 히어로 요소를 결합하여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아쉽게도 수많은 혹평과 함께 흥행 성적은 좋지 못했으나, 박서준은 화려한 액션, 갑작스럽게 힘을 얻은 뒤 방황하는 인물의 심리 등을 공감가게 표현했다. [사자]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인연도 있다. [기생충]에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박서준처럼, [사자]에는 최우식이 특별출연하며 박서준과의 남다른 인연을 보여줬다.

[드림](2023) ‘윤홍대’ 역

플러스엠

올해 박서준은 여러 작품으로 자신의 연기 영역을 확장시키는 중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더 마블스]가 개봉 대기 중이며, 올 초에는 [드림]으로 관객과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감정적으로 와 닿은 이야기”라서 좋았다고 밝힌 것처럼, 앞선 영화들과 달리 [드림]은 드라마에 집중한 작품이다. 영화는 선수 생활 최악의 위기를 맞은 축구 선수 ‘홍대’가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으로 참여하고, 그 과정을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PD ‘소민’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박서준은 여러 사건으로 무너진 이미지를 복구할 방법을 찾다가 노숙자를 이끄는 국가대표 감독을 제안받은 ‘홍대’를 연기했다.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지만, 안타까운 이유로 자신의 꿈이 좌절되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진한 공감과 여운을 선사했다. 아쉽게도 [드림]은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이병헌 감독의 말 맛을 잘 살리며 타율 좋은 코믹 연기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