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희도

“어렸을 적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가 했던 말입니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후 수상소감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현대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모든 감독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는 감독들의 감독이다. 20세기 영화 [비열한거리]에서 부터 21세기 [아이리시맨]에 달하기까지 숱한 걸작들을 뽑아내며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널리 인정을 받으며 사회적 문제와 도덕적 고뇌를 사실주의 시선으로 영화에 담아낸다.

올해 여든인 나이임에도 그의 창작열은 마르지 않았다. 다가오는 10월 [플라워 킬링 문]이라는 영화로 극장을 찾아온다. 이번 영화는 데이비드 그랜의 책 ‘플라워 문’을 바탕으로 1920년대 초 오클라호마 주에서 일어난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다. 그의 페르소나인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로오의 합류로 한층 더 기대를 받고 있다. 그의 새로운 마스터피스를 기대하며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들을 만나본다.

1.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이미지: 컬럼비아 픽처스

베트남전 참전 후 돌아온 트래비스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심야 택시 운전을 시작한다. 그는 퇴폐적인 뉴욕 밤거리를 보며 추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쓰레기를 씻어낼 비가 쏟아질 거라 말하며 폐쇄된 택시안에서 운전을 한다. 전쟁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문제와 사회적 고립으로 죽음과 폭력에 대한 강한 고민을 겪으며, 도시의 범죄와 부패에 맞서 싸운다.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트래비스의 내면 변화와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펼친다.

마틴 스콜세지의 최고작으로 거론되는 걸작이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스콜세지 특유의 고독하고 흡입력 있는 연출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조커가 만들어지는데 큰 방향성을 줬다고 한다. 트래비스를 통해 1970년대 베트남전 패배와 정치적 사건 등으로 인한 혼란스러웠던 미국 사회의 후유증을 그려낸다. 쓰레기를 쓸어버리고 싶어하였지만 자신도 별다르지 않았던 모순된 트래비스. 총구가 다른 곳을 겨눴다면 영웅이 아닌 조커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2.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주인공인 헨리 힐이 어린 시절부터 범죄 세계에 빠져들며 범죄 동료인 지미와 토미 데비토와 함께 성공과 부의 궤도에 오르는 이야기를 다룬다. 헨리와 그의 친구들은 카지노, 도박, 강도, 살인 등 다양한 범죄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영광을 누리지만 범죄의 세계에서 서로의 배신과 불신, 경쟁으로 인해 친분과 신뢰가 흔들리며, 그들의 운명은 점점 어두워지고 복잡해 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영화는 [비열한 거리] 이후 또 다시 걸작 갱스터 영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마틴 스콜세지와 갱스터 영화를 떼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낭만과 의리가 넘치는 일반적인 갱스터 영화와는 다르게 치사하고 배신이 넘치는 현실적인 갱스터 세계를 담아낸다. 감독의 사실주의 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좋은 친구들]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배신과 복수가 난무하는 범죄 세계를 보면서 우리 삶에서도 미소 지으며 다가오는 적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3. 디파티드 (The Departed, 2006)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경찰과 마피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두 스파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경찰과 마피아 양측에서 스파이가 침투하고, 서로를 찾아내려는 과정을 보여주며 두 스파이는 위험한 상황 속 자신의 정체성을 감춘다. 이러한 과정에서 배신, 의심, 복수, 그리고 인간 감정과 윤리적 딜레마가 뒤섞여 가며 스릴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멀었던 마틴 스콜세지에게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이다. [무간도]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지만, [무간도]와는 다르게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인물과 벼랑 끝까지 내몰리는 캐릭터의 심리가 더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중 첩보를 다루며 정의와 배신, 갈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범죄와 정의에 대한 흐릿한 경계를 도덕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무간도]와 이 작품을 같이 비교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듯하다.

4.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이미지: 우리네트웍스

조던 벨포트는 어린 나이에 월 스트리트에서 주식 브로커로 일을 시작하며 빠르게 성공을 거두고, 자신만의 회사를 창업한다. 수려한 말솜씨로 그는 주식 사기와 금융 사기로 억대의 부를 축적하며 탐욕과 타락에 빠져든다. 벨포트의 회사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주식 사기로 큰 이익을 챙기며 부를 쌓아가고, 그의 화려한 삶은 낭만적이고 위험한 파티와 독특한 행동으로 가득차게 되지만 그의 불법 활동은 FBI의 주목을 받게 되고, 벨포트와 그의 동료들은 금융 범죄로부터 법적으로 쫓기기 시작한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들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다. 감독 특유의 내레이션이 디카프리오를 만나 정점을 찍는다. ‘월가의 늑대’ 원작인 전기 영화이며 빠른 템포와 블랙 코미디를 적절히 섞어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인다. 또한 그의 페르소나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생연기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월 스트리트의 사기극은 돈으로만 움직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민 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인물의 성공과 몰락을 다루며 돈을 쓸어 담고 금융범죄를 저지르며 감옥까지 다녀왔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찬양하고 강연까지 요청하는 아이러니함이 보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다룬 영화라고할까. 마지막 관객을 비추는 장면은 우리의 현실을 돌아봐야 하지 않은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5. 아이리시맨 (The Irishman, 2019)

이미지: 넷플릭스코리아

2000년대 초, 어느 양로원 휴게실에서 홀로 앉아 독백을 하는 80대 노인 프랭크 시런 ‘아이리시맨’이 등장한다. 프랭크는 과거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트럭 운전수를 하다 우연히 페인트공(암살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영화가 시작한다. 과거로 돌아가 프랭크 시런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범죄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 범죄 활동을 하며 가족과의 관계의 대한 충돌을 다룬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등 노장의 반열에 오른 명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들의 얼굴을 디에이징이라는 현대 기술을 사용해 젊은 시절의 배우들을 볼 수 있게 되어 한층 더 볼거리를 제공한다. 실화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드니로와 조페시의 출연으로 마치 영화 [좋은친구들]의 후속편? 스핀-오프 같은 느낌도 들어 있다.

한 시대에 화려하게 날아올랐던 그들도 세월 앞에서는 그저 나약한 노인에 불과했다. 다른 것들을 지키기 위해 충돌한 가족관계는 노년의 쓸쓸한 외로움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가달라던 프랭크의 말은 주위에 좋은 친구들(미소 지으며 다가와 방아쇠를 당길)의 죽음과 나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시 한번 갱스터 무비의 정점을 찍으며 마틴 스콜세지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클라쓰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