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이미지: 마블 코믹스

마블이나 DC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세계관의 스토리는 때때로 이전에 선보였던 내용을 각색하여 반복하곤 한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출간되었던 <다크 웹> 시리즈 역시 아이디어 재활용의 사례이다. 이 경우는 1988년에 뉴욕을 침공한 악마들에 맞선 엑스맨과 어벤저스를 비롯한 여러 히어로들의 모험인 <인페르노> 이벤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는 엑스맨 멤버인 마블걸의 클론과 스파이더맨의 클론이 손을 잡고 뉴욕에 악마들을 풀어놓는 바람에,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이 함께 뉴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이들 외에도 베놈이나 미즈 마블 등의 캐릭터들이 싸움에 휘말리면서 이야기는 더욱 확장한다.

스파이더맨의 클론, 캐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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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자이자 피터 파커의 교수님이었던 마일스 워렌이 피터의 DNA를 이용해 만든 클론이다. ‘벤 라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스파이더맨과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 한동안 피터를 대신해서 스파이더맨 활동을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린 고블린에게 희생되었다. 그러나 워렌 교수는 벤을 또 다시 복제해냈으며, 클론의 생리학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였다 살리기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정신에 다소 손상을 입은 벤은 선과 악을 넘나들기 시작하고, 피터와 싸우다가 양자 변환 화합물에 빠진 뒤에 돌연변이로 각성한다. 이에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캐즘”이 되었다. 벤 라일리는 한마디로 “큰 힘에 큰 책임이 없는” 피터 파커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스파이더맨이 왜 위대한 히어로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마블걸의 클론, 고블린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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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악한 유전학자인 미스터 시니스터는 마블걸(진 그레이)의 DNA를 복제해 매들린 프라이어라는 클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마블걸이 죽자, 일부러 꼭 닮은 외모의 매들린을 사이클롭스에게 접근시켜 결혼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그 둘 사이에서 낳은 아기가 바로 케이블이다. 그러나 마블걸이 부활하여 돌아오자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이때 충격을 받은 매들린은 흑화하여 고블린 퀸이라는 마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블걸처럼 아주 강력한 정신능력으로 <인페르노> 사건을 일으키는 등 엑스맨을 괴롭히기도 했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가, 최근 엑스맨에 의해 부활했다. 악마의 차원인 림보를 지배하던 엑스맨의 매직은 부활한 매들린에게 림보의 지배를 맡겼다.

클론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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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뉴욕에 고블린 퀸의 명령을 받은 림보의 악마들이 침입하여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뉴욕에 본부를 둔 엑스맨과 홀로 순찰 중이던 스파이더맨이 사람들을 구하러 움직이고, 언론은 과거 일어났던 악마의 침공을 떠올린다. 

이 악당들이 손을 잡고 일을 벌이게 된 이유는 자신들의 기억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갓난아기일 때 잠깐 동안만 함께 했던 아들 케이블에 대한 기억을 갖고 싶었던 고블린 퀸은 마블걸과 사이클롭스, 하복, 매직을 림보로 끌고 가서 가두었다. 캐즘은 여러 차례의 복제와 전이, 최근의 세뇌 과정을 통해 왜곡되어 불완전해진 자신의 기억을 온전히 되찾고 싶어 한다. 심지어 자신의 불행함을 피터의 탓으로 여기고 있다. 피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가까운 사람들을 공격하며 림보로 보내버리고, 피터마저 그곳에 빠뜨리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 싸움의 무대는 뉴욕과 림보로 나뉘게 된다.

림보에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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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엑스맨들과 뉴욕의 히어로들이 악마와 싸우고 있는 동안, 림보로 끌려간 엑스맨들 중 매들린과 연인사이였던 사이클롭스와 하복 형제는 감금되고, 마블걸과 매직은 매들린이 만든 환상 속에 갇혀버렸다. 피터와 데일리 뷰글의 J. 조나 제임슨, 로비 로버트슨은 림보 악마 버전의 데일리 뷰글에 다니며 억지로 악마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림보의 악마들은 흉악하고 끔찍하기보다, 어딘가 다소 모자라고 우스꽝스러운 면이 많았다. 이 때문에 오히려 인간들에게 휘둘리기까지 한다. 캐즘은 피터의 기억을 빼앗기 위해 시니스터 식스의 악마 버전을 구성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팬인 악마 하나가 히어로가 되겠다며, 결국 악마 버전의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피터를 돕는다. 이 덕분에 피터와 동료들은 무사히 뉴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다른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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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가 아무래도 번화하고 인구밀집 지역이다 보니 여러 인물들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벤 라일리의 여자친구인 재닌은 고블린 퀸으로부터 악마의 손가락을 받아 삼키면서, 가면을 바꿔 쓰면 능력도 바뀌는 할로우스 이브라는 존재가 되었다. (어떤 주술사가 나오는 애니와 비슷한 설정이다). 히어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베놈(에디 브록)은 사라진 아들 딜런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는 약속을 받고 고블린 퀸과 캐즘의 편에 붙었다. 그러나 고블린 퀸은 에디의 기억을 지워 베놈 심비오트가 지배하는 예의 흉포한 괴물로 바꿔버렸다. 아버지 앞에 모습을 드러낸 딜런은 또한 베놈으로서 정의의 편에 서고, 노먼 오스본의 손자 노미 역시 심비오트와 결합해 레드 고블린이 되어 이들과 함께 한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된 노먼 오스본은 피터를 돕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영웅적인 고블린인 골드 고블린으로서 참전한다. 오스본의 회사에 취업한 미즈 마블 역시 활약에 나선다. 이 밖에도 메리 제인 왓슨과 블랙캣, 마일스 모랄레스 등이 뛰어들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바뀌는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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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이해한 마블걸이 아기 케이블을 키우며 돌보았던 기억을 공유해주자, 이에 감동한 고블린 퀸은 침공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캐즘과 할로우스 이브는 이를 반대하며 림보의 지배권을 빼앗아 악마 군대를 직접 거느리고 공격을 이어갔다. 림보의 지배권을 강제로 빼앗은 캐즘은 킹 캐즘이 되고, 스파이더맨, 엑스맨, 고블린 퀸은 협동하여 그에게 대항하는 형태로 전쟁의 구도가 바뀌게 된다.

<다크 웹>은 캐릭터의 감정이 그렇게 깊이 묘사되었다고 보긴 힘들지만 ‘클론’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험한 일을 당한 캐릭터들의 한이 서려 있는 스토리이다. 특히, 나름의 구원을 찾은 고블린 퀸과 달리 기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벤 라일리의 운명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물론 이런 갈등이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