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서리 거인족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아스가르드 왕가에 입양되어 아스가르드의 왕자로서 키워진 로키는 그 태생만큼이나 복잡한 내면을 가진 존재이다. 종족과 성별을 뛰어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마블 코믹스의 긴 역사 속에서도 그가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로키가 누군가에게 연애감정을 품는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곧 시작할 [로키] 드라마의 시즌 2를 기다리며, 그동안 로키와 연애를 했던 그 희귀한 상대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실비

이미지: 디즈니+

MCU에서 그동안 로키에 대한 서사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인해 자신을 입양해준 가족과의 갈등을 드러내며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춰왔었다. 디즈니 플러스의 [로키] 시리즈는 특별한 상황 속에 로키를 던져 놓고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하고 있는데, 그중 주목할만한 점은 이성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감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다른 현실의 자신이다. 여자아이로 태어난 로키 공주였지만 분기점을 일으켜 새로운 타임라인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시간변동관리국에 의해 세상이 소멸되고 본인은 체포되는 비극을 겪은 인물이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아이이든 간에 로키는 로키였으므로, 교묘한 술수를 통해 탈출하여 이름을 “실비”로 바꾸고 숨어 지낸다. 종말 직전의 세계에선 자신처럼 타임라인을 벗어난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맹점을 이용하며 시간변동관리국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비는 로키가 보기에도 독특하고 색다른 존재였는데, “로키”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타임라인을 벗어난 “변종”이라고 규정지어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며, 로키만큼의 장난기도 없었다. 그래서 별로 “로키” 같지 않아 보인다. 아무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대인관계도 매우 공격적이다. 자신의 세상을 없애버린 시간변동관리국에 대한 복수 행각을 벌이는 실비는 우리의 로키에 비해 두뇌와 무력 모두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시간변동관리국의 앞잡이가 된 로키를 무척이나 한심하게 여기며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로키와 함께 다니며 위태로운 동맹 관계로 발전해간다.

실비의 사연과 시간변동관리국의 거짓말을 알게 된 로키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역시 같은 감정을 갖게 된 실비와 키스를 하게 된다. 코믹스 쪽 이야기이긴 하지만, 데드풀은 다른 차원의 자신의 여성형 버전인 레이디 데드풀과 키스를 나눈 뒤에 꼭 자매와 키스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는데, 로키와 실비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하지만 실비는 로키가 아닌 복수를 선택하고 둘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헤어지게 된다. 새로운 시즌에서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이 될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레아

이미지: 마블 코믹스

코믹스에서 로키와 가장 연인다운 모습을 보였던 캐릭터는 헬라의 시녀인 레아였다. 공포의 신 서펜트에 맞서기 위해 로키를 돕는 임무를 맡았고, 승리한 뒤엔 지구에 남겨졌다. 당시 어린 아이로 환생한 로키가 마법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레아는 로키를 도와 마법을 부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로키를 믿지 못하고 싫어하는 레아는 항상 차갑게 대했고, 로키는 그런 레아에게 지구에서 즐길 수 있는 인터넷이나 밀크셰이크 같은 문화를 소개해가며 차츰 신뢰를 얻었다. 레아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로키를 좋아하게 된 것은 틀림없다.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레아는 밤새 로키의 방을 지켜보기도 하고, 로키를 위협하는 이들과 싸우기도 했다. 직접적인 묘사는 나오지 않았지만 둘이 키스했다는 암시도 있었다. 그러나 헬라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희생하게 된 레아는 마지막 순간에 로키와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레아의 죽음으로 로키는 큰 상처를 받았고 많이 울었다. 레아(Leah)는 헬라(Hela)의 이름 철자를 바꾼 것이다.

아모라

이미지: 마블 코믹스

아스가르드의 아모라는 성격과 능력 면에서 로키와 상당히 유사하다. 아름다운 금발의 여신인 아모라는 의도적으로 남자들을 유혹해서 이용하지만 진심으로 원하는 남자는 토르다.  아모라와 로키는 때때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기는 한다. 로키는 아모라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아모라의 특성을 빼닮은 인간을 만들었다. 실비 러쉬턴이라는 이 소녀는 아모라의 십대 버전이며, MCU의 실비의 원형이 된 캐릭터다. 마법의 주문으로 인해 히어로와 빌런들의 도덕적인 축이 서로 바뀌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선해진 로키와 아모라는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로키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동안 아모라는 그렇지 못했기에 이 연애는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었다. 

로렐라이

이미지: 마블 코믹스

아모라의 동생인 로렐라이는 굉장한 미모와 최면을 거는 능력으로 인간이나 신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남자들을 넘어오게 만들 수 있다. 언니처럼 마법 쪽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토르에게 집착한다는 점은 같다. 아모라는 동생을 토르에 대한 사랑의 라이벌로 여기고, 주문을 걸어 로키와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둘은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진심이 아니었던 이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시긴

이미지: 마블 코믹스

로키는 테오릭이라는 아스가르드인과 약혼한 시긴에게 반해, 테오릭을 죽이고 그로 변신해 시긴과 결혼했다. 이것이 밝혀진 후 법에 따라 혼인은 무효가 되었지만, 고지식한 시긴은 결혼서약을 지키기 위해 로키의 곁에 머물렀다. 로키가 내내 학대하며 속였음에도 시긴은 떠나지 않았고, 로키가 잘못을 저질러 처벌받을 때마다 그를 변호하며 곁을 지켰다.

시긴은 로키의 사악한 성격을 알면서도 남편인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동시에 이런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기도 했다. 결국, 로키는 서약의 맹세에서 시긴을 해방시켜줬지만 시긴은 로키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앙게르보다

이미지: 마블 코믹스

고대 악마의 자손이자 서리 거인의 마녀인 앙게르보다는 로키와의 사이에서 미드가르드 서펜트와 펜리스 늑대를 낳았다. 앙게르보다가 등장하는 분량은 매우 짧으므로, 로키와의 관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죽어서 헬라가 지배하는 헬에 머물고 있었으나, 로키가 장난의 신이 아닌 이야기의 신이 되겠다고 선언한 후에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