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희도

예술은 종종 완벽을 위해 집착에 가까운 광기 더 나아가 죽음까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위 요소들은 영화 [블랙스완], [위플래쉬], [버드맨] 같은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뚜렷하게 보여준다. 예술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지, 예술가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 힘에 빠져들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예술과 광기, 죽음의 관계를 탐구하고, 이러한 주제들이 우리의 일상 생활과 예술의 세계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깊게 들여다보려 한다. 예술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과 고난이 따르는 지도 생각한다. 동시에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본문에는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랙스완](2010)

이미지: ㈜영화사 그램

영화는 니나(나탈리 포트만)가 ‘백조의 호수’라는 클래식 발레 작품의 주연인 백조 여왕 역할에 선발되면서 시작된다. 니나는 순수하고 가녀린 백조의 역할은 완벽하게 소화하지만 자신과 정반대였던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의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는데, 이는 삶을 괴롭히고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이어진다. 니나는 완벽과 광기의 경계에서 거울 속 분열된 자아를 마주한다. 내면에 있던 어둠은 점점 커져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 부친다. 이 과정에서 단장과 라이벌로 인식하는 릴리가 트리거 역할을 하며 불안 속 마지막 거울을 깨 버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찌른다. 비로소 죽음에 가까워지고, 니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며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선보인다. 죽음과 함께 말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블랙스완]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였다. 처음은 순수하고 백조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말에 다가갈수록 완전한 흑조를 표현하며 신들린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그 결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다수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영화 또한 소름 끼치는 연출들과 소용돌이 같이 휘몰아 치는 전개로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니나는 마지막 죽기 전 완벽을 느꼈다고 말한다. 예술이 도달할 최후의 경지를 느꼈던 니나한테는 해피엔딩일까? 영화가 끝나고 다양한 질문들이 우리의 머리를 맴돌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위플래쉬](2014)

이미지: 소니 픽쳐스 코리아

앤드류 네이먼(마일즈텔러)은 드러머로서 음악계에서 이름을 날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청년이다. 그는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학학교에서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되며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최고의 지휘자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레쳐교수(JK시몬스)를 만난다. 상냥한 첫 만남과 달리 교수는 앤드류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그 과정 속 앤드류는 드럼 연습을 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와 결별하고 가족과의 갈등도 겪는다. 시간이 갈수로 앤드류는 연습에 몰두하고 이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많은 경쟁을 통해 가져온 메인 드러머의 자리를 예상치 못한 사고를 통해 빼앗기게 되고 교수의 가학적인 교육을 고발함으로써 앤드류는 드러머의 꿈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재즈바에서의 교수를 만난 뒤, 앤드류는 또 다른 기회를 잡는다. 플래쳐 교수가 마련한 연주회에서 메인 드러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교수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공연에 오르지만 교수는 복수를 위해 다른 음악을 연주하며 앤드류를 곤란에 빠뜨린다. 앤드류는 좌절한 채 자리에서 나와 아버지와 포옹을 하지만, 이내 눈빛이 바뀌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간다. 드럼 스틱을 손에 움켜쥔 앤드류는 자신을 증명하듯 미친 연주를 보여주며 큰 박수를 받는다. 플래처 교수의 묘한 미소와 함께.

이 영화는 음악적 열정과 완벽주의, 예술가로서의 희생과 고통을 다루며, 앤드류와 플레쳐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인간의 집착과 광기를 보여준다.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감독은 그 후 인터뷰를 통해 앤드류는 원하던 링컨센터에 들어가지만 슬프고 공허한 빈 껍데기가 되어 30의 나이에 약물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며 어두운 관점으로 말한다. 영화가 끝난 후 크게 두가지의 입장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앤드류의 아버지와 플레쳐교수의 관점에서 말이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마지막 아들이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펼칠 때 괴물이 되어버린 자녀를 걱정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그러나 자신을 고발한 앤드류를 복수하고 싶던 플레쳐교수는 마지막 뭔가 모를 미소를 짓는다. 강압적인 교육관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제2의 찰리파커의 탄생을 축하하는 미소인지는 관객에게 맡긴다.  

그래서일까? 앤드류가 완벽한 경지에 가까워지면서 박수보다는 걱정이 더 많이 든다. 그가 걸어온 길들에 희생했던 것들을 위로해야 할지, 경이로운 그의 연주를 축하해야 할지 머뭇거리면서 말이다. 자신이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원하는 정점에 도달한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위플래쉬]의 멋진 공연을 본 뒤 씁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버드맨](2014)

이미지: 20세기 폭스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과거에 ‘버드맨’이라는 슈퍼히어로 영화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그 역할로 인해 죽어버린 듯한 자신을 혼란의 상태로 느끼고 있다.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준비하며 다시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재기하고자 한다. 리건은 대중에게 잊힌 지 오래이고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현실은 그의 이상과 거리가 멀다. 재기에 대한 강박과 심각한 자금 압박 속, 평단이 사랑하는 주연배우의 통제불가 행동, 무명배우의 불안감, 아빠의 도전에 냉소적인 매니저 딸, 연극계를 좌지우지하는 비평가의 악평예고 등 주변에는 극심한 스트레스거리 밖에 없다. 결국 과거 자기자신의 존재감이었던 [버드맨]의 환영에 빠지며, 마지막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치고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한발의 총성과 피와 함께 쓰러져 다시 못 일어나는 리건을 보며 관객들은 일어나 기립박수를 친다. 악평을 쓸 거라 말했던 비평가는 최고의 찬사를 썼고 언론은 리건의 연기를 대서특필하며 그의 존재를 증명했다. 머리를 향해 쐈던 총알은 그의 코 만을 가져간 채 그는 병실에서 눈을 떴고, 칭칭 감은 붕대는 예전 자신이었던 [버드맨]과 닮았다. 그는 대중들로부터 잊혀짐의 공포에서 자유로워지자 살아난 자신의 몸을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창문 아래를 쳐다보지 않고 점점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롱테이크로 진행되며 마치 리건 톰슨의 인생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과 공상 속 혼란스러운 CG와 끊임없는 드럼소리로 관객들에게 시선을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에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을 하듯, 리건의 인생도 그러하며, 씁쓸한 블랙코미디로 만들어 낸다. 극중 ‘버드맨’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리건 톰슨과 [배트맨]으로 인기와 명성을 얻었던 마이클 키튼은 여러모로 닮았다. 그래서 작품의 공감대가 깊다. 다행히 마이클 키튼은 이 작품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말이다. 극중 리건은 여전히 거짓된 것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총성만이 진짜였다는 사실과 함께. 리건은 신들린 듯한 자신의 마지막 연기도 어차피 잊힐 것이라 알았던 것일까? 어떤 깨달음을 얻은 리건의 발검음은 가벼워졌고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렇게 돈, 명성, 인기 등 많은 것이 떨어질까 봐 두려웠던 리건은 비로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유롭게 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