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개봉해 극장가를 강타했던 [스즈메의 문단속]이 안방 극장에 상륙했다. 여러 번 볼수록 작품 안에 숨은 메시지와 감동, 재미가 더해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영화답게 안방에서도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부터 시작한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의 마지막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과연 그는 세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스즈메의 문단속] VOD 출시를 기념으로,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을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너의 이름은. –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의 시작

이미지: 미디어캐슬

2016년에 일본에서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소위 그의 재난 3부작 중 하나이자 시작점이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으며 2017년 정식 개봉되어 국내 팬들의 폭발적인 호평을 받았다. 특히 개봉 당시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400만 가까이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비주류였던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티켓 파워를 가진 브랜드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너의 이름은.]은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의 몸이 뒤바뀌면서 발생하는 해프닝으로 시작한다. 여느 판타지 멜로와 같이 영혼이 뒤바뀐 소년, 소녀의 로맨스를 그리며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은 감독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혜성 충돌’이라는 재난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그의 신의 내린 작화의 훌륭함과 함께 말이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혜성이 가져온 대재앙을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일본인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를 위로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작품 안에 담긴 내용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너의 이름은.]안에 담긴 주제 의식은 일본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던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치유의 의미를 건넨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는 이 작품을 만들 때 세월호 참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작품이 주는 유머코드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영화의 진심은 아마 전세계 어디에서도 똑같이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세계가 겪고 있는 재난에 대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너의 이름은.]은  희망의 메시지를 자아내며 폭발적인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이런 관객들의 반응은 사회 전반에 깔린 재난에 대한 불안감과 위로, 상실에 대한 상처와 기억이라는 무의식과 연계된 공감의 표현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재난상황으로 인한 로맨스를 현실과 판타지로 풀어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재난을 겪는 사회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해답을 영화로 표현하고 있는 그는 에필로그에서 “도쿄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타키의 대사를 통해 차기작 [날씨의 아이]의 등장을 예고한다.

날씨의 아이 –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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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난 3부작 중에서도 이질적이다. 궁극적으로 영화의 목소리가 전후 작품과 성격을 달리한다. 일단 [너의 이름은.]과 [스즈메의 문단속]처럼 실제 재난(동일본 대지진)으로 빚어진 상처를 거의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 결론 역시 호불호가 갈린다. 재난 역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로서 활용보다 소재로만 한정해서 인용한 느낌이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처럼 지금의 생활을 바꾸고 싶은 소년, 소녀가 우연히 만나서 어떤 특별한 능력으로 재난 상황에 관여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날씨의 아이] 개봉 전 기대감은 어마어마했다. [너의 이름은.]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만으로도 영화팬들은 두근거렸다. 여기에 전작에서 함께했던 래드윔프스가 다시 음악을 담당했고, 오구리 슌과 혼다 츠바사 등 일본의 정상급 스타들이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너의 이름은.]으로 자신의 예전 작품들과 궤도를 달리했던 신카이 마코토가 다시 한번 이 같은 성공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오히려 신카이 마코토의 초기작품들과 많이 닮았다. 서사적인 흐름은 [너의 이름은.]과 비슷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사랑의 가치를 고집스럽게 강조했던 [초속 5 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이 떠오를 정도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그런 과정에서 펼치는 소위 신이 내린 작화의 섬세함은 더욱 빛난다. 유동적인 날씨 속에 흐트러짐 없는 물방울이나 구름 같은 묘사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날씨가 맑아지면서 명암이 대비되는 영상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보는 내내 개운함과 청량함이 보는 이를 감싼다.

섬세한 스케일 속에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도 눈에 띈다. 특히 자신만이 이 재난을 멈출 수 있음에 고민하는 히나와, 그런 소녀를 보낼 수 없기에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고도 자신의 믿는 바를 향해가는 호다카의 모습은 더욱더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처음에는 가출한 이유조차 불명확했던 호다카가 주변 어른의 만류와 세상의 간섭에서도 오직 히나를 살리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인상깊었다. 신카이 마코토 예전 작품의 그 우직함과 순애보가 느껴져서 반가웠다.

래드윔프스가 부른 메인 테마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가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을 붙잡는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하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 어쩌면 영화는 그에 반하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강행한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그로 인한 고통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 앞에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던졌던 소년, 소녀의 순수함이 더욱 감성을 건드린다.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라는 영화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 보편 타당한 선을 넘더라도, 꿋꿋하게 말하는 캐릭터의 순수함이 좋다. 사실 맞는 말 아닌가? 세상을 구할 수 있지만, 정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우리 모두는 그 결론을 따를 수 있을까? 이런 기준을 뒤집고 [날씨의 아이]를 통해 내놓은 신카이 마코토의 뚝심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그런 점에서 다소 해피엔딩의 전형성을 따른 [너의 이름은.]과 [스즈메의 문단속]의 엔딩보다 이 작품의 파격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메시지가 더 영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이 아닌, 로맨스 시리즈의 또 다른 출발점이 아닐까?

[스즈메의 문단속], 상냥하고 다정한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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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스즈메의 ‘문단속’ 이야기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가장 최근작이며 재난 3부작을 완성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화려하고 화사한 영상미를 선보였고, 전작들보다 한층 경쾌한 전개로 이어진다. 감독 스스로는 이 영화를 ‘히로인의 액션 활극 영화’라고 공언한 바 있다. 덧붙이자면, 신카이 마코토가 빚어낸 히로인은 아주 상냥하고 다정하다.

히로인 ‘스즈메’는 17살 여고생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범한 인물이다. 남들만큼 성실하고 강인하고, 남들만큼 연약하고 고독하다. 이렇게 평범한 히로인이 ‘문단속’이라는 소박한 임무를 수행한다. ‘기억’을 상징하는 문을 닫음으로, 아픈 과거의 상처를 애도하고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버려진 풍경이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스즈메는 그렇게 상처 입은 모든 것들의 회복을 돕기 때문에 상냥하고 다정한 히로인이다.

우리 정서에 ‘한’이 서려 있듯이 일본 정서에는 ‘체념’이라는 무기력함이 서려 있다.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겪으며 ‘결국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라는 거대한 진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재난의 트라우마 속에, 또 언제 무엇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깃든 깊은 체념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무작정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 것 또한 이해된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에서도 그러한 정서를 자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분명히 다르다. 해방과 성장, 희망과 사랑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며 아주 과감한 방식으로 ‘재난’을 다룬다. 동시에 빛과 색은 더욱 풍성하고 화려해졌다. 제목에 인물 이름이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작품 또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처음이다. 별, 구름, 꽃 같은 상징을 빌려 우회적으로만 이야기하던 감독이 이렇게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리고 마침내 신카이 마코토 식의 해피엔딩까지 완성하며 재난 3부작의 문을 닫았다. 이는 오랜 체념 끝에 피어난 희망이기에 더욱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