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언니 ‘히로세 아리스’를 따라갔다가 데뷔하게 된 일본 배우 히로세 스즈는 모델 출신의 배우이다. 일본의 유명한 잡지 [세븐틴]의 전속 모델로 활동을 시작, 이후 여러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출연해 배우로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그는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이 신작 영화 [키리에의 노래]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키리에의 노래]는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손꼽혔는데, 국내에서도 곧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부터 이와이 순지까지, 일본의 거장 감독들과 꾸준히 작업하며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배우 히로세 스즈의 영화들을 모아봤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아사노 스즈’ 역

이미지: 티캐스트

히로세 스즈를 전 세계에 알린 첫 번째 작품은 단연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동명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히로세 스즈가 배우로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는 작은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가 15년 전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홀로 남겨진 이복동생 ‘스즈’를 만나면서 시작된 네 자매의 새로운 일상을 담아낸다.

히로세 스즈는 네 자매 중에서 유일하게 어머니가 다른 ‘스즈’ 역을 맡았다. 아버지가 다시 장가를 가면서 새엄마와 살았던 인물이지만, 자신과 자신의 친엄마 때문에 세 자매가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히로세 스즈는 유년 시절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에 빠진 인물이자, 세 언니를 만나 아이다운 에너지를 되찾아 성장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해당 작품으로 호흡을 맞춘 일본의 키키 키린은 “16살의 어린 배우가 굉장히 좋은 연기를 하고 있다”라며 극찬을 했다.

[분노](2017) ‘코미야마 이즈미’ 역

이미지: 미디어캐슬

히로세 스즈는 첫 주연을 맡았던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후, 다양한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유명 감독들과 두 번 이상 작업하는 사례도 생겼는데, 그중에 한 명이 바로 이상일 감독이다. 이상일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분노]에서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짧지만, 굵직한 임팩트를 선보이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년 후, 사랑하는 사람이 범인이 아닐지 의심하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히로세 스즈는 오키나와로 이사 온 고등학생이자, 친구를 찾으러 나섰던 길에서 끔찍한 일을 겪게 되는 ‘코미야마 이즈미’ 역을 맡았다. 청춘 로맨스나 성장 영화가 아닌 작품에서 10대를 연기했기에 전작에서 보여준 느낌과는 상반된 감정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통해 이상일 감독의 연기 지도가 무서웠지만 동시에 느낀 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만큼 해당 영화에서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깊이 있는 감정으로 연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 번째 살인](2017) ‘야마나카 사키에’ 역

이미지: 티캐스트

히로세 스즈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이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을 이어갔다.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작품인 [세 번째 살인]이 그 중심에 있다. 독특한 제목과 법정물이라는 설정이 돋보이는 동시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또한 히로카즈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승리밖에 모르는 변호사 ‘시게모리’가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하여 사형이 확실시되는 ‘미스미’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이야기이다.

히로세 스즈는 살해된 공장 사장의 딸 ‘야마나카 사키에’ 역을 연기했다. 피해자의 딸이라는 포지션과 함께, 범행을 자백한 살인범과의 사연을 통해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인물이다. 그만큼 인물의 감정을 철저하게 감추며 진실을 궁금하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극의 긴장감에 여러모로 큰 영향을 끼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히로세 스즈의 열연을 보며 “안정감이 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라플라스의 마녀](2019) ‘우하라 마도카’ 역

이미지: 영화사 빅

히로세 스즈는 일본에서 100편이 넘는 다작을 한 감독이자, 장르물로 유명한 미이케 다카시와도 작품을 선보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원작인 [라플라스의 마녀]가 바로 그 작품이다. 온천 휴양지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불가사의한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살인 가능성 0.001%인 의문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그린다.

히로세 스즈는 사고가 발생한 현장마다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소녀 ‘우하라 마도카’ 역을 맡았다. 스스로를 ‘라플라스의 마녀’라고 부르는 인물로, 자연 현상을 예측하는 특별한 능력을 통해 바꾸려고 나서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사건을 추적하는 교수와 형사에게는 힌트를 주는 듯, 아닌 듯 알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작품의 호기심을 더했다. 히로세 스즈의 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캐릭터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라스트 레터](2021) ‘토노 마사키’ & ‘토노 아유미’ 역

이미지: 미디어캐슬

히로세 스즈는 [키리에의 노래] 이전 이와이 슌지 감독과도 작업해 특유의 따스한 감성을 선보였다. [라스트 레터]가 그 작품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같은 내용의 중국 영화를 먼저 제작 후, 일본에서 다시 만들면서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닿을 수 없는 편지로 그 시절, 전하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과 마주한 이들의 결코 잊지 못할 한 통의 러브레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편지가 소재인 작품인만큼 [러브레터]의 정신적 후속편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히로세 스즈는 모녀 관계에 놓인 ‘토노 마사키’와 ‘토노 아유미’를 연기했다. 1인 2역을 소화했는데, 과거의 엄마와 현재의 딸 역할을 맡아서 두 사람의 비슷한 감성 속에 미묘한 차이를 잘 연기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에 대해서 “배우가 캐릭터를 연구해 연기했고, 그것이 마음에 들어서 영화에 고스란히 담았다”라며 히로세 스즈의 연기에 신뢰를 보내기도 하였다.

[유랑의 달](2023) ‘카나이 사라사’ 역

이미지: 왓챠

[분노]의 이상일 감독을 자신의 은인이라고 밝혔던 히로세 스즈는 5년 후, [유랑의 달]로 다시 재회했다. 히로세 스즈가 마츠자카 토리, 요코하마 류세이 같이 일본의 유명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화제를 모았다. 유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낙인찍힌 두 사람이 15년 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히로세 스즈는 어린 시절 ‘초등학생 실종 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졌던,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카나이 사라사’ 역을 연기했다. 15년 전, 자신을 유괴한 것으로 낙인찍혔던 남성을 마주하게 된 여성 역을 맡았다. 여러모로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이 관계를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것은 히로세 스즈와 마츠자카 토리의 열연이 큰 몫을 차지한다. 잔잔한 듯 요동치는 표정, 작은 손짓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캐릭터의 심리를 두 배우가 훌륭하게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