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히어로 영화의 대세는 멀티버스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후 해당 소재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고, DC 역시 [플래시]를 통해 멀티버스의 밑밥을 깔며 리부트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호기 넘치는 시작과 다르게 완성도는 삐걱 거리는 느낌이다. MCU는 멀티버스 도입 이후, 예전만큼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며, DC는 끝없는 부진에 빠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멀티버스의 올바른 활용의 예를 보여준 작품이 있었으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다.

이 작품은 마치 고민에 빠진 MCU와 DC에게 “멀티버스는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그 만큼 좋은 완성도와 재미로 올 여름 전 세계 극장가를 강타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로 공개되어 극장에서 이 작품을 놓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건네는 중이다. 멀티버스의 훌륭한 활용을 넘어, 그야말로 폼 미친 스파이더맨의 힘을 보여준 이 영화, 리뷰를 통해 다시 살펴본다.

1편 복습하기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이미지: 소니 픽처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1편 복습을 먼저 해보자.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2018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후속편이다. 다른 세계에 온 슈퍼 거미에게 물린 마일스가 스파이더맨으로 태어나고, 이에 평행우주 속 또 다른 동료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멀티버스의 개념을 확립하고, 흥미롭게 서사를 이어가면서 그야말로 스파이더맨 팬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처럼 다가왔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3억 8천 4백만 달러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 등 소위 극장판 애니메이션 명가들이 독식했던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까지 수상하며 완성도 역시 극찬을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은 카툰랜더링(CG 그래픽을 이용해 2D 만화와 같은 효과를 주는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실사에 근접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극장판 CG 애니에 신선한 충격을 건넸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픽사와 드림웍스에서도 해당 기법을 적극 도입하며 관련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만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존재감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후속편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많은 기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파이더맨 VS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미지: 소니 픽처스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5년만에 돌아온 속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번 편에서는 그웬의 소개로 스파이더맨의 다중우주를 관리하는 아지트에 들어간 마일스의 이야기를 그린다. 멀티버스 속 스파이더맨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데, 그 순간이 마일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비극이 된다. 그는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세계관에 큰 변화를 시도하고, 이 때문에 멀티버스의 모든 스파이더맨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야말로 스파이더맨 VS 스파이더맨의 전쟁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화려하고 빠르다! 세계관의 특징과 캐릭터의 개성을 다 잡은 영상미

이미지: 소니 픽처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역시 영상미다. 전편보다 더욱 화려하고 스피디한 스타일과 그래픽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특히 각 세계관마다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진 부분도 돋보인다. 가령 그웬이 존재하는 세계관과 마일스가 살아가는 세계관의 작화 방식이 다르다. 그렇기에 복잡한 설명 없이도 여기가 다른 우주인 것을 관객들은 자각하고, 작품이 건네는 황홀한 비주얼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워낙 많은 스파이더맨들이 나오기에 정신없지만, 그들의 개성을 완벽하게 구성하며 시각적인 쾌감도 확실하게 전한다. 만화책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한 스파이더맨 인디아와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스파이더 펑크의 모습 등, 각 캐릭터의 배경과 특징을 캐치한 영상미가 현란하고 환상적이다. 15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근사한 비디오 아트를 보는 기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해낸다.

원작의 재해석이 돋보인 빌런 스팟

이미지: 소니 픽처스

이번 편의 메인 빌런은 스팟이다. 몸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한 모습으로, 악당일이 서투른 인물이다. 실제 원작에서도 그린 고블린, 벌처, 닥터 옥토퍼스 등 네임드 빌런과 다르게 인지도가 매우 낮다고 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이 캐릭터를 재해석하며 멀티버스에 가장 어울리는 거대한 악당으로 거듭난다. 자기 몸에 난 구멍(혹은 포털)을 이용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마일스와 완벽히 대치되면서도 운명적으로 엮이는 부분이 흥미롭다. 스팟은 마일스가 전편에서 벌였던 일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악당이 된다. 이 같은 관계성이 작품의 흥미를 배가하며, 인과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리즈에 상징적인 의미를 자아낸다.

이런 사연뿐 아니라 포털을 이용해 벌이는 액션과 연출도 독특하다. 좋은 의미로 정신없는 이 작품의 스타일에 더 큰 난장판을 제공하며, 흥미로운 볼거리를 계속해서 빚어낸다. 여러모로 원작의 재해석이 빛나는 인물이며,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설정과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도 놓치지 않는 가치 – 성장과 의지

이미지: 소니 픽처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복잡다잡한 멀티버스를 매끄럽고 훌륭하게 활용한 영화다. 자유 분방한 스타일로 해당 개념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으며, 운명론과 나비효과라는 멀티버스 세계관의 매력도 설득력 있게 구성한다. 특히 이 부분은 엔딩에 이를수록 더욱 커지는데,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기에 영화를 직접 보고 느껴 보시길 바란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영화는 성장과 의지라는 키워드도 놓치지 않는다. 마일스는 전편보다 늠름 해졌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비밀 때문에 부모와 거리감을 느낀다. 히어로의 책임감도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런 고민들이 그의 성장 테마의 근간이 되어 서사의 동력이 되고 작품의 주제의식을 확고하게 만든다. 이때 그웬 스테이시에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부분은 10대들의 고충과 썸의 감정도 섬세하게 담아내어 드라마를 더욱 탄탄하게 다진다.

무엇보다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며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의지의 가치도 인상깊다. 후반부 마일스가 스파이더맨 세계관을 지키려는 불문율을 깨며 “내 이야기는 내가 쓸거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같은 테마를 완성시킨다. 통쾌함과 울컥한 감정은 덤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며 히어로의 운명론을 강조하는 실사판 [스파이더맨]과 또 다른 지향점을 드러내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시리즈의 가치를 더욱 빛낸다.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의젓하게 커가는 마일스를 보면서 드는 훈훈함과 함께 말이다.

이처럼 시리즈의 매력을 완벽하게 보여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다가올 3편에서 대격변을 예고한다. 하지만 당초 내년 개봉이었던 3편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스파이더 버스]는 미국 배우 파업과 스튜디오 내부 문제로 공개일정이 무기한 미뤄졌다. 2편 엔딩이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이걸 후속편에서 어떻게 풀어낼 지 궁금했는데, 이 같은 소식은 아쉽다. 그럼에도 1-2편 못지 않은 재미와 완성도를 가지고 돌아온다면 지금의 기다림은 충분히 참아낼 수 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작품이자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다룬 슈퍼히어로물, 성장 영화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닌 이 시리즈의 내공이 여전할 것이라고 믿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