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 공포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공포영화는 여름이 제철이지만, 이제는 그런 때도 타지 않는 느낌이다. 오히려 날씨가 선선할수록 해당 장르 특유의 싸늘함과 으스스함이 더 빛을 발하는 듯하다. 냉정하게 말해 공포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장르다. 불호를 표시하는 분들 대부분 말하길, 소재나 내용이 찜찜하거나 기분을 나쁘게 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하긴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장르인데 보고 나서 기분 좋을리가 없다.

그러나 공포영화도 의외로 감동적이거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건넬 때도 있다. 오히려 공포가 클수록 그런 따뜻함이 더 강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무섭기도 하지만 보고 나오면 훈훈하고, 따뜻하며, 뜻밖의 눈물까지 흘리는 공포영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엔딩까지 견디기는 너무 힘들지만 그 끝은 우리 마음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다. 다시 한번 말아지만 오늘 소개할 작품은 휴머니즘 가득한 드라마나 멜로 영화가 아니다. 공포영화다!

*해당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식스센스 – 나는 귀신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보고 싶은 것은 엄마의 마음이에요.

이미지: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식스센스]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실질적인 데뷔작이자 반전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아동 심리학자 말콤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의 잘못된 진단으로 자살한 환자를 눈앞에서 목격한다. 그로부터 1년 후, 그 사건 때문에 사랑하는 부인과 사이는 멀어졌고, 모든 일은 어그러졌다. 그러던 중 새로운 환자인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을 만나게 되고, 그 아이가 1년 전 죽었던 환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심리 치료를 통해 가까이 지내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던 중, 콜은 자신에게 비밀이 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죽은 사람이 보여요”

[식스센스]는 시종일관 으스스한 분위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중간 중간 콜 앞에 등장한 귀신들은 그 자체로 공포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말콤의 조언으로 콜의 증상은 점점 나아진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힌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한다. 이때 영화는 지금까지 와는 다른 훈훈하고도 먹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신의 능력 때문에 멀어진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는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마저 헤아리면서 말이다. 처음 [식스센스]를 볼 땐 반전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여러 번 볼수록 이 대목에서의 감동이 여러 차례 보는 이를 울린다. 사실 극중에 등장한 귀신 대부분은 어떤 원혼과 분노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부분 남아 있는 사람을 걱정하고, 그들 곁에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다. 심지어 마지막의 그 분(?)조차도. 엔딩 크레딧을 보고 나오면 시종일관 우리를 괴롭혔던 귀신보다 내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생각나는 그런 작품이었다.

장화, 홍련 – N차 관람할수록 눈물이 먼저 나는 것 왜 때문인가요?

이미지: 청어람

[장화, 홍련]은 오랜 요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두 자매에게 벌어진 기이한 일을 그린다. 서울에서 요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수미(임수정)과 수연(문근영). 하지만 여기에는 반갑지 않은 계모 은주(염정아)도 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묘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함께 생활하는데, 그때부터 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보여서는 안 될 것들이 점점 수미의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자신 몰래 동생을 학대하는 계모의 음흉한 행동까지, 수미를 힘들게 한다. 도대체 이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를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된다는 것을.  공포로 가득했던 영화는 일순간에 안타깝고 슬픈 동화처럼 다가온다. 이때 흘러나오는 [장화, 홍련]의 메인 테마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작품의 처연한 분위기를 배가하며 오랜 잔상을 남긴다. 그런 다음 영화를 다시 보자. 그때는 몰랐던 코드와 상징들이 해석의 쾌감보다 수미의 가슴 아픈 트라우마로 느껴진다. [장화, 홍련]은 N차 관람할수록 비명보다 눈물이 더 쏟아지는 영화다. 김지운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염정아의 압도적인 연기력, 임수정-문근영 등 지금의 충무로를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발견이라는 작품의 성취와 함께 말이다.

컨저링 – 공포가 클수록 가족애는 커진다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퇴마사 워렌 부부가 실제 겪었던 사건을 영화화 작품이다. 공포영화 박스오피스의 새 역사를 쓴 [컨저링] 유니버스의 시작이기도 하다. [컨저링] 시리즈의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평화롭게 지내던 가족에게 악령이 나타나고 그걸 워렌 부부가 해결한다는 것. 1편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사이 좋은 페론 가족은 새로운 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렇게 행복을 꿈꾸고 있던 중 이상한 이들이 벌어지고, 급기야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렇게 공포에 떨던 이들은 워렌 부부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워렌 부부는 집안에 숨은 악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위험한 계획을 실행한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무섭다’는 문구로 공포영화 팬들에게 장르적 즐거움을 준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공통적으로 가족이 핵심 소재이며 메인 테마다. 화목했던 이들이 알 수 없는 실체의 위협으로 공포에 떨고 서로를 의심하며 공동체가 무너진다. 그럼에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를 지키려는 가족 구성원들의 희생과 용기가 악몽의 위협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으로 남는다. 워렌 부부의 활약상으로 마침내 평화를 찾는 가족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은, 공포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가족애의 뜨거움으로 다가온다. [컨저링] 시리즈는 시작은 무섭지만 그 끝은 대부분 훈훈하다. 물론 다음 공포를 예고하는 엔딩(혹은 쿠키)의 등장으로 이 같은 감정이 오래가지 않지만 말이다. 참고로 같은 감독(제임스 완)의 [인시디어스] 역시 [컨저링] 못지않게 무섭지만, 가족애의 끈끈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것 –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조차도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스티븐 킹 원작하면 [미스트] [캐리] [샤이닝] 등 오싹한 공포영화도 있지만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같은 감동이 넘치는 작품도 많다. [그것]은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잘 결합한 영화다. 살인과 실종 사건이 이상하게 많이 생기는 데리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종이배를 들고 나간 동생이 사라진 형 빌은 친구들과 함께 그를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27년마다 나타나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그것’을 만나고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동생을 찾으려면 ‘그것’이 건네는 공포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야 한다. 과연 빌과 친구들은 이 난관을 극복하고 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광대 공포증을 극도로 유발하는 영화의 오싹함과 다르게 [그것]을 보면 뭔가 옛 추억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소환되며, 유년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철없던 그때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는데, 그 마음이 [그것]의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극중 빌런인 ‘그것’은 상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을 이미지화 시키며 위협한다. 빌과 친구들 역시 처음에 이 공격에 맞서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거나 되찾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낼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이런 극복과정을 영화에서 꽤 뭉클하게 묘사해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것]은 만족스러운 공포영화지만, 성장영화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