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햄릿],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고전에서부터 [킬 빌]이나 [존 윅] 같은 현대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품게 된 원한과 복수의 감정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배트맨 역시 부모가 살해된 것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집념이 만들어낸 인물이다. 대체로 복수의 무상함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데, 특히나 슈퍼히어로의 경우엔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금지규정 같은 게 있어서 복수라는 행위가 어느 선까지 갈지가 관건이 되기도 한다. 이번엔 복수에 얽힌 슈퍼히어로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 마블

새로운 퍼니셔의 등장

이미지: 마블 코믹스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 히어로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퍼니셔일 것이다. 살인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프랭크 캐슬은 ‘모든 범죄자에 대한 복수’라는 대업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아마도 평생 끝나지 않을 복수일 터인데, 이번에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퍼니셔 시리즈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이 퍼니셔가 되었다. 쉴드의 우수한 작전 요원이었던 조 개리슨은 은퇴 후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쉴드에서 활동한 이력 탓에 암살자의 공격을 받아 그를 제외한 온가족이 폭발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다. 마침 장을 보고 오느라 목숨을 건진 조는 범인을 찾아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쉴드에서 자신의 관리인이었던 인물의 도움을 받아 정보수집에 나선다. 설상가상으로,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가족 살해 용의자로 수배되어 경찰에 쫓기게 된다. 가족을 살해한 암살자를 죽여 복수에 성공했지만, 이때 조가 착용한 쉴드의 전투 아머가 퍼니셔의 해골 문양과 비슷해 보이는 바람에 언론은 그를 새로운 퍼니셔로 부르기 시작한다. 조는 이 암살을 의뢰한 이가 누구인지, 암살자의 윗선을 찾기 위해 복수의 여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울버린의 지독한 복수

<더 울버린> 이미지: 20세기 폭스

울버린이 일본에서 만난 마리코는 도쿄 최고의 야쿠자 가문의 외동딸이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려 했지만, 적들의 방해로 인해 끝내 식은 올리지 못했다. 닌자 집단 핸드의 일원인 츠라야바 마츠오는 울버린을 증오한 나머지, 마리코에게 독을 먹였다. 죽어가는 마리코가 울버린에게 고통을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울버린은 마리코를 죽음으로 고통에서 해방시켜줘야만 했다. 마리코의 가문은 울버린이 마리코를 살해했다고 오해해 그를 원수로 삼았고, 연인을 잃은 울버린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마츠오를 찾아내서 그의 팔을 절단해버렸다. 울버린의 복수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매년 마리코의 기일이 되면 마츠오의 앞에 나타나 신체 부위를 하나씩 절단해가며 수년에 걸쳐 복수를 진행했다. 

스파이더맨의 복수

이미지: 마블 코믹스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은 스파이더맨뿐만이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구조되지 않고 죽는다는, 그 어떤 대중매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다리 꼭대기에서 내던진 그린 고블린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긴 하지만, 스파이더맨이 구하려던 행동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배가 된다. 거미줄로 인한 갑작스러운 정지 때문에 목이 부러지고만 것이다. 당연히 스파이더맨은 이런 사태를 만든 그린 고블린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제작진은 스파이더맨이 그린 고블린을 죽이게 할 수는 없었다. 두 숙적의 싸움은 그린 고블린이 스파이더맨을 뒤에서 기습하려다가 날아온 자신의 글라이더에 찔려 죽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모든 게 끝이 났을까? 그린 고블린은 금방 살아 돌아왔고, 이 사건은 평생 스파이더맨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데어데블과 복수의 연쇄고리

이미지: 마블 코믹스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는 말은 데어데블과 불스아이의 관계에서도 바로 통한다. 최고의 암살자 축에 속하는 불스아이는 그 어떤 평범한 사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다. 자신감이 충만한 그가 데어데블에게 패하면서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한 분노를 품은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스아이는 데어데블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한 엘렉트라가 자신을 밀어내고 킹핀의 최고 암살자 자리를 차지하자, 데어데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엘렉트라를 사이(손잡이가 짧은 삼지창)로 찔러 죽였다. 데어데블은 이에 대한 복수로 불스아이의 척추를 부러뜨려버렸다. 훗날, 회복한 불스아이는 복수에 대한 복수로 또 다시 데어데블의 여자친구인 캐런 페이지를 죽이고 체포되었다. 체포와 탈옥을 반복하던 불스아이는 결국 데어데블을 찾아갔고, 이번엔 데어데블이 그를 사이로 찔러 죽였다. 불스아이가 엘렉트라를 죽였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 DC

지오포스의 일석이조

이미지: DC 코믹스

동유럽 국가인 마르코비아의 브리온 왕자는 지오포스라는 이름의 슈퍼히어로이기도 하다. 국가를 수호하는 그의 복수의 상대는 세계 최고의 암살자들로 꼽히는 데스스트록과 라스 알 굴. 데스스트록은 자신의 여동생 테라를 범죄에 이용했고, 라스 알 굴의 조직은 세력 다툼으로 인해 마르코비아에 많은 피해를 입힌 적이 있었다. 지오포스는 데스스트록으로 변장하고 공개 장소에서 라스 알 굴을 살해했다. 일은 자연스럽게 데스스트록 진영 대 라스 알 굴 진영 간의 피 튀기는 혈투로 이어졌고, 지오포스로서는 한 번에 두 가지 복수를 이루게 되었다. 데스스트록이 라스 알 굴의 딸인 탈리아의 손에 죽은 후에 지오포스가 진실을 밝히자, 분노한 로빈은 슈퍼히어로로서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다며 그를 쓰러뜨려 체포했다.

모든 히어로들을 상대로 한 인섬니아의 복수

이미지: DC 코믹스

빌런들은 늘 히어로들에게 복수를 꿈꾼다. 이들이 실행에 옮기는 복수는 대부분 실패하지만 때론 완전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큰 피해를 일으키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슈퍼빌런들에게 가족을 잃은 한 남자는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슈퍼히어로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복수심을 품었다. 최근 DC 유니버스에서 발생한 ‘라자러스 수지’라는 화학물질을 뒤집어쓴 이들에게 초능력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 남자도 잠든 사람에게 악몽을 꾸게 하는 능력을 얻었다. 인섬니아라는 이름의 강력한 빌런이 된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을 잠들게 한 뒤에 악몽을 꾸게 만들었다. 특히 슈퍼히어로들에게는 공포스럽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몽들을 선사했는데, 잠이 필요 없는 소수의 히어로들이 인섬니아를 물리치면서 세계적인 비상사태는 해결되었다. 인섬니아는 죽었지만, 사람들이 슈퍼히어로의 존재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악몽을 꾸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더는 예전과 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인섬니아의 복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