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는 장르 영화의 꽃이 아닐까?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다음이 궁금한 이야기, 여기에 깜놀 반전 등 장르 영화의 재미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릴러에서는 어떤 장르보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중요하다. 관객은 주연 배우의 연기와 활약에 따라 몰입감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할 이분들은 그냥 믿고 가셔도 괜찮을 듯하다. 스릴러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좋은 연기로 보는 이에게 확실한 신뢰감을 줬기 때문이다. 탄탄한 연기력은 기본, 매 작품보다 놀라운 변신까지, 한국영화를 이끈 스릴러 퀸 5명과 출연작들을 만나보자.

* 해당 영화 관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도연 / 길복순

[길복순] 이미지: 넷플릭스

지난해 전도연은 [길복순]과 [일타 스캔들]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그의 건재함을 과시한 한 해였다. 특히 [길복순]은 전도연의 배우 인생에서 ‘액션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여 호평을 얻은 작품이다. 영화는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15세 딸을 둔 싱글맘 ‘길복순’(전도연)이 회사와의 재계약을 앞두고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액션으로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전달하고, 전도연을 비롯한 설경구, 이솜, 구교환 등의 배우들은 뛰어난 연기와 표현력으로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전도연은 이 영화를 통해 업계에서 선망받는 최고의 킬러와 엄마 사이에서 고뇌하며 재계약 여부를 고민하는 등 차갑고 잔혹한 킬러와 따뜻한 사랑을 지닌 엄마를 동시에 갖고 있는 복잡 미묘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한다. 이렇듯 다면적인 심리를 캐릭터에 녹여 표현하는 그의 능력이 매력적인 캐릭터와 반전이 필요한 스릴러 장르와 만나 시너지를 내게 된다. 그래서 유독 그의 필모그래피에 [하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같은 스릴러 장르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길복순] 이후 그의 다음 작품은 어떤 긴장감과 쾌감으로 ‘스릴러 퀸’의 자리를 지켜낼지 기대된다.

김윤진 / 자백

[자백]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장르 영화 팬들에게 레전드로 언급되는 [세븐 데이즈]의 히로인 김윤진은 이외에도 [이웃사람], [시간위의 집]등 다수의 스릴러 영화에 출연하며 장르 영화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김윤진이 2022년 선택한 [자백]은 2017년 개봉한 [인비저블 게스트]라는 스페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엄청난 반전을 지닌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 영화는 밀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유망한 사업가 ‘유민호'(소지섭)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김윤진)가 숨겨진 사건의 조각을 맞춰나가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담았다. 원작 영화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추가해 조금 더 통쾌한 엔딩을 빚어낸다. 이로 인해 리메이크작의 불안요소를 극복하며 ‘웰메이드 서스펜스 스릴러’를 완성해냈다.

영화에서 김윤진은 [세븐 데이즈]에 이어 더 독하고 강력해진 변호사 ‘양신애’ 역을 맡았다. 승률 100%의 날카로운 변호사 캐릭터를 위해 김윤진은 시나리오를 통으로 외우고 일부러 불편한 속옷을 입는 등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이런 노력으로 영화 [자백]은 계속되는 반전과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주인공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더해지며 스릴러의 묘미를 극대화한다. 특히, 김윤진은 아들을 잃고 영혼이 찢겨진 엄마의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초췌한 모습으로 현실적인 눈물 연기와 눈 밑 떨림까지 느껴지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영애 / 나를 찾아줘

[나를 찾아줘]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만의 복귀작으로 또다시 스릴러 영화를 선택했다. [나를 찾아줘]는 아이를 잃어버린 후 지옥 같은 생활을 하던 ‘정인'(이영애)이 남편 역시 교통사고로 잃은 후 실종된 아이를 찾는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김승우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불행이 거듭되는 주인공과 진실을 감춘 마을을 통해 ‘정의란 것이 정말 있는가?’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개봉 당시 영화의 암울한 분위기와 희망적이지 못한 결말로 인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영애를 비롯한 유재명, 박해준 등 배우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와 아동 실종, 인신매매, 노동착취 등을 고발하는 메시지는 눈여겨볼 만하다.

극중 이영애는 남편으로 분한 박해준과 함께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과 아픔을 절절하게 연기한다. 결혼 이후 엄마가 된 이영애는 캐릭터의 진심을 섬세함과 강렬함을 오가는 폭넓은 연기로 의미 있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극중 정인이 겪는 상황이나 감정들이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영애는 이 영화 이후 드라마 [구경이], [마에스트라]를 통해 전직 형사, 지휘자 등 색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며 여전히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이다.

김민희 / 아가씨

[아가씨] 이미지: CJ ENM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김민희는 데뷔 초기 연기력 부족이라는 아쉬운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화차], [연애의 온도]등을 통해 좋은 연기력을 보여줬고, 2016년 영화 [아가씨]로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진정한 배우로 거듭났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로 역사 스릴러 소설인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를 일제강점기의 한국으로 옮겨 풀어낸다. 영화는 1930년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고용돼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간 소녀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김민희를 비롯하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이 주연을 맡아 신들린 연기력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2016년 가장 주목받은 비영어권 영화 중 하나로 그 바탕에는 극을 이끄는 김태리, 김민희 두 배우의 호연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김민희는 낭독극, 동성애 등 쉽지 않은 장면을 소화하며 소름 끼치는 이중적인 성격의 ‘이즈미 히데코’를 완벽하게 그려낸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김민희가 이전 [화차]에서 보여준 광기 어린 연기로 인정받은 이후 안정되고 섬세한 연기력의 절정을 완성시킨 작품이 [아가씨]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극에 달한 미장센과 원작의 영리한 각색에 더해 김민희, 김태리의 열연으로 오랫동안 팬덤을 형성하고 유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엄정화 / 몽타주

[몽타주] 이미지: (주)NEW

로맨틱 코미디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부터 연쇄 살인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로 다양한 장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엄정화에게 [몽타주]는 첫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엄정하는 이 작품에서 열연으로 2013년 50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몽타주]는 15년 전 유괴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자마자 동일한 수법의 사건이 발생. 범인으로 인해 딸, 손녀, 인생을 빼앗겨버린 세 명의 피해자에게 찾아온 결정적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정근섭 감독의 데뷔작으로 배우들의 열연과 잘 짜여진 각본, 탄탄하고 치밀한 스릴러로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15년 전 딸을 잃은 엄마 ‘하경’ 역을 맡아서 열연을 펼친 배우 엄정화는 [오로라 공주], [베스트셀러]등으로 스릴러 퀸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다진다. 아이를 빼앗긴 엄마의 모정과 복수심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영화를 힘 있게 이끌어 나간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같은 수법의 범죄가 발생하는 스토리는 익숙하지만, 두 개의 시선으로 분리된 영화의 구성은 기존 영화의 클리셰를 비틀며 재미를 자아낸다. 엄정화의 존재감은 물론, 스릴러 장르의 장점이 가득한 [몽타주]는 놓치기 아까운 한국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