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희도

한 해가 끝나가며 겨울이 찾아왔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눈은 도시를 덮고, 서리가 고요한 나뭇가지에 맺힌다. 내린 눈은 모든 도시의 소음을 흡수하듯 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의 다가옴으로 인해 기대감을 증폭시키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밤은 더욱 길어지고 캄캄한 어둠이 드리운 밤, 빛나는 눈 속에서 사랑은 더욱 견고 해진다. 겨울과 사랑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하며 차가운 계절이지만 그 속에서 더욱 강한 결속과 따뜻한 감정이 꽃을 피운다.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은 영화 속에서도 사랑이야기가 되어 나타난다. 어떤 영화들은 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눈의 결정과 같이 차가운 환경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그린다. 로맨틱한 겨울 풍경, 따뜻한 감정의 교류, 특별한 연말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겨울의 불안정한 요소들을 담기도 한다. 사랑하며 겪는 행복과 아픔,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는 겨울 영화들을 소개한다.

[러브레터] (1995)

이미지: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러브레터]는 설원에서 눈을 뜨는 와타나베 히로코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산악 사고로 죽은 애인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에 참석하기 왔다. 추모 후 그의 집을 방문한 히로코는 졸업앨범에서 그의 옛 주소를 발견하고 편지를 보낸다. 당연히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츠키라는 사람으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졸업 직전 전학을 통해 졸업앨범에 주소가 기록되지 않았고, 다른 동명이인의 주소로 전해졌다. 이츠키는 낯선 편지에 호기심을 갖고 답장을 보내며, 두사람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삶과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다.

[러브레터]는 아직까지 겨울 로맨스의 고전으로 남아 많은 이들이 다시 찾아보는 영화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사랑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마음의 소통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룬 작품이다. 감동적인 음악과 아름다운 풍경,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사랑의 순수함과 힘이 강조된다. 사랑의 미소와 눈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야기로,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 사랑의 흔적을 찾게 만든다.

[이터널선샤인](2004)

이미지: 코리아픽처스

[이터널선샤인]은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서로의 기억에서 사랑을 지우려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남녀는 서로의 기억 속에서 여러 차례 헤어지고 다시 만나며, 사랑의 아픔과 행복을 반복한다. 기억이 사라져갈수록 조엘은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며, 끝내 지워지는 기억을 받아들이고 연인과 함께한 순간들을 되새긴다.

[이터널선샤인]은 사랑의 비극과 행복을 번갈아 가며 그리는 독특한 작품이다. 기억을 삭제하려는 노력이 결국에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통해 작품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을 안겨준다. 사랑을 하며 행복한 순간들도 익숙함에 속아 가장 가까웠던 인연마저 자그마한 실수들로 증오로 변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익숙함에 외면했던 사랑의 기억들을 꺼내어 아름다운 추억으로 꺼내어 음미하자. 아픈 기억이라도 함께한 순간들이 가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

이미지 : ㈜디스테이션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츠네오는 손님들로부터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수상한 유모차에 대해 듣게 된다. 어느 날, 소문으로만 듣던 그 유모차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조제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보고 싶었어.”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호랑이, 물고기 그리고 바다를 보고 싶었다던 조제. 그런 그녀의 순수함에 끌린 츠네오의 마음에는 특별한 감정이 피어난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뜨거운 감정을 나누는 날들도 잠시, 츠네오와 조제는 이 사랑의 끝을 예감하게 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 뿐만 아니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현실과 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몸이 불편한 조제는 츠네오가 좋아한다고 끊임없이 말할 동안 한 번도 고백하지 않는다. 조제는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며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츠네오는 마지막 자신이 도망쳤다고 말했지만 누가 그를 욕할 수 있을 것인가? 감정의 복잡성과 괴리감이 어우러져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일깨워준다.

[캐롤] (2016)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느낀다.

[캐롤]은 두 주인공의 강렬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시각적인 표현을 보여주며 사회적 편견과 성정체성에 대한 시대적인 고비를 넘어, 두 주인공의 감정과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당시 동성애는 장애라는 편견이 있을 정도의 사회적인 압박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느새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영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이미지 : 콘텐츠판다, ㈜영화제작전원사

외국 어느 도시. 여배우인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고, 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고, 그게 자신의 순수한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여겼다. 그는 이곳으로 온다고 했지만, 영희는 그를 의심한다. 지인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같이 해변으로 놀러 간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 같은 선배 언니에게 묻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의 강릉시. 지인 몇 사람. 불편하고, 술을 마시고,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다. 초연한 척, 거친 척을 하는데 인기가 좋다. 혼자 남은 영희는 해변으로 놀러 가고, 해변은 맘속의 것들이 생생하게 현현하는 곳이고, 그리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곳이다. 사랑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어야 할까? 영희는 정말 알고 싶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사랑이란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감정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만남,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남의 연속적인 구성 속에서 사랑의 순환과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사랑이랑 어렵고 아름다운 여정이며, 그 여정에서 우리는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한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는 그림 같은 풍경과 예술적인 연출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