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갛고 싱그러운 웃음을 가진 김고은은 아주 시원하고 씩씩한 성격을 가졌다. ‘자신이 잘한 일은 혼자라도 알아주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일 테다. 이렇게 건강한 에너지를 품고 어떤 역할이든 200% 소화하는 배우 김고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본다.

[은교] (2012) / 한은교 역

롯데엔터테인먼트

소녀의 싱그러운 젊음과 관능에 매혹 당한 시인 이적요,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 그리고 시인의 세계를 동경한 싱그러운 관능의 열일곱 소녀 은교. 이들은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다. 질투와 매혹으로 뒤얽힌 세 사람의 숨겨진 도발을 그린 [은교].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는 김고은의 데뷔작이다. 당시 20살 신예였던 김고은은 고등학생 은교 역할을 맡아 과감한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던 김고은은 선배 박해일과 김무열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영화의 호불호 속에서도 김고은이 연기한 은교 역은 호평을 받아 기대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김고은의 명랑하면서도 순수한 마스크가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작품으로 김고은은 제49회 대종상, 제33회 청룡영화상, 제21회 부일영화상 등 다수의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이후 차기작을 선택하지 않고 한예종으로 돌아갔다. 바쁜 연예계 활동 속에서 연기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차이나타운] (2015) / 마일영 역

CGV 아트하우스

지하철 보관함 10번에 버려진 ‘일영’(김고은)은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 (김혜수)라 불리는 여자를 만난다. 엄마는 쓸모 있는 아이들을 자신의 식구로 만들어 차이나타운을 지배하고, 일영은 엄마에게 가장 쓸모 있는 아이로 자란다. 그러던 중, 일영은 처음으로 차이나타운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런 일영의 변화를 감지한 엄마는 그녀에게 위험천만한 마지막 일을 준다.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배우 중심의 느와르 영화이다. 김고은은 이 영화로 자신이 지금까지 맡아온 배역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역에 도전했다. 김혜수와의 연기 앙상블도 인상적인데, 두 사람의 연기가 작품을 살렸다는 평도 많았다. 이 작품으로 김고은은 칸 영화제의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에게 “일영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 그녀는 제2의 전도연이 될 것이다”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CGV 아트하우스

이후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 [계춘할망], [변산] 등 줄곧 영화에만 출연하던 김고은이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TV 드라마에서였다. 2016년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여우상 부분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에서는 당찬 고등학생 역을 맡아 ‘지은탁은 오직 김고은의 것’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고은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다채로운 감정 연기가 로맨스 장르와 잘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9년, 순도 99% 감성 멜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다시 정지우 감독을 만난다.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는 두 사람이 함께 듣던 라디오처럼 주파수를 맞춰가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김고은은 정해인과 호흡을 맞췄다. 정겨운 레트로 감성과 깨끗한 영상미, 스토리를 받치는 음악들 속에 두 사람의 맑고 무해한 케미가 잘 어우러진다. 개봉 당시 한국 멜로 영화 최초로 예매 관객수 10만 명을 넘기며, 멜로에 갈증을 느끼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영웅] (2022) / 설희 역

CJ ENM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온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피로 맹세한다. 한편,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는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한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이날만을 기다리던 안중근은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동명의 오리지널 뮤지컬을 영화화한 [영웅]에서 김고은은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를 연기하였다. 이 영화는 뮤지컬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70%는 현장 라이브로 진행되었는데, 김고은은 이 때문에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걱정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완벽히 해내면서 또 한번 배우로서의 역량을 증명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총 3곡의 넘버가 모두 격한 감정을 이어받아 부르는 고음의 노래였는데, 20번 넘게 재촬영하며 완벽한 결과물을 완성했다. 연출을 맡은 윤제균 감독은 김고은에 대해 “친근하고 쾌활하게 인사하다가도 분장이 끝나면 설희가 되는 천상 배우”라며 칭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영웅]은 극장가 불황과 경쟁작 [아바타 2]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300만 관객을 넘겼다.

[파묘] (2024) / 화림 역

쇼박스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된다.

2024년 영화 [도그데이즈] 특별출연으로 스크린에 잠시 얼굴을 비췄던 김고은이 신작 [파묘]를 통해 제대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파묘]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정통 오컬트를 선보여온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무속, 풍수, 기독교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한국 오컬트 무비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김고은은 원혼을 달래는 젊은 무당 ‘화림’으로 등장한다. 그는 엄청난 몰입도로 촬영 현장의 모두를 놀라게 했고, 최민식은 김고은을 [파묘]의 손흥민이라고 칭하며 애정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놀랍고도 과감한 영화 [파묘]는 현재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