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지금처럼 글로벌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콘텐츠의 다양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새로운 시선은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굿 닥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성공작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재난방송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는 농인들을 주요 배역으로 한 여러 영화와 드라마들이 방영되거나 개봉하면서, 한층 유연해진 표현법으로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인식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수어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배우들과 그 작품들을 살펴본다.

정우성 /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미지: ENA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농인 화가와 무명 배우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로, 1995년 방송된 동명의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다. 정우성이 원작 드라마를 보고 감명을 받아 드라마의 판권을 구입하여 13년 만에 제작과 주연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7세 때 청력을 잃은 화가 ‘차진우’가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배우 지망생 ‘정모은’(신현빈)을 다시 만나게 되며 드라마가 전개된다.

농인이 주인공이라 대부분의 대화는 수어로 진행되고 청인 시청자들을 위해 자막이 제공된다. ‘음성 언어가 없는 드라마’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꼈지만 고요함 속에서 주인공들의 표정이나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되고, 배경이 되는 풀벌레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등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소리가 들려 현장감을 높여준다. 주인공 진우와 소통하는 이들은 모두 수어를 사용하며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며 대화한다.

차진우 역의 정우성은 모든 대사를 수어로 연기해야 하는 부담에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익숙하게 소화해 냈다. 수어는 손으로만 주고받는 언어가 아니라 손으로 표현하는 수지 기호와 입모양이나 표정, 공간을 활용한 비수지 기호가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언어이다. 정우성은 이런 비수지 기호인 표정을 통해 주인공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기 노력한 결실이 화면 속에서 빛을 발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자극적인 소재들이 난무하는 최근의 트렌드와는 상반되는 정통 멜로의 서사를 지닌 작품이다. 섬세하고 따뜻한 연출로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해외에서도 ‘한국이 만든 최고의 클래식 멜로’라는 찬사를 받으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원영 / 반짝이는 워터멜론

[반짝이는 워터멜론] 이미지: tvN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음악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소년 ‘하은결’(려운)이 1995년으로 타임슬립 해 어린 시절의 아빠 ‘하이찬’(최현욱)과 함께 밴드를 하며 펼치는 이야기이다. 드라마는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로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은 물론 가족의 이야기까지 탄탄하게 연결한다. 청춘의 한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청량한 영상미와 음악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에서 최원영은 은결 아빠 역으로, 유쾌하고 낙천적 성격을 가진 농인 연기를 선보인다. 드라마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농인 캐릭터에 도전한 최원영은 완성도 높은 수어 연기와 깊이 있는 표정 연기로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캐릭터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극에 없어서는 안 될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믿고 보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김지영 / 이공삼칠

[이공삼칠] 이미지: ㈜영화사 륙, ㈜씨네필운

영화 [이공삼칠]은 열아홉 소녀에게 일어난 믿기 힘든 현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희망을 주고 싶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윤영’(홍예지)은 갑작스럽게 교도소에 수감돼 죄수번호 2037로 불리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감방 동기들을 만나고,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내면의 아픔을 치유해 나간다.

김지영은 극 중 딸 윤영의 엄마이자 청각장애를 가진 ‘경숙’으로 분한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딸이 교도소에 가게 되자 자식을 지키기 위한 애절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김지영은 영화 출연을 확정한 후, 수어를 몸에 익히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사가 아닌 오로지 눈빛과 몸짓, 수어만으로 캐릭터의 행복과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박유림 /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이미지: ㈜트리플픽쳐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내와 사별한 연출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초청된 연극제의 전속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토코)와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편 영화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비롯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휩쓸며 호평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가후쿠가 연출하는 ‘바냐 아저씨’는 다국적 배우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는 특별한 연극이다. 이 연극에서 ‘소냐’역을 맡은 한국 배우 이유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수어를 사용하여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이유나를 연기한 박유림은 정확한 수어를 구사한 것은 물론,  내면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연기를 펼쳐 극의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진기주 / 미드나이트

[미드나이트] 이미지: CJ CGV

[미드나이트]는 2021년 개봉한 범죄 스릴러 영화로, 연쇄살인마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목격자와의 목숨을 건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을 그린다. 듣지 못하는 농인과 연쇄살인마라는 색다른 설정 속에 장르 특유의 스릴과 추격전은 극강의 공포심과 긴장감을 배가한다.

주인공 ‘경미'(진기주)는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자신과 같은 농인인 엄마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는 강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소수자들을 약자로 그린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주인공을 향한 관객들의 진심 어린 응원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이를 위해 진기주는 수어를 공부하여 농인을 사실감 있게 연기하는 것은 물론, 진통제를 먹으면서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 추격 신과 액션 신을 소화했다.

[우리들의 블루스] 이미지: tvN

기존 영화 ·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농인은 팍팍한 현실과 많은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조명하며 소심하고 수동적이며, 나약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위에 소개된 작품들을 보면 농인도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청춘 드라마나 멜로 드라마, 심지어 액션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도 하고 강인한 캐릭터로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모습들이 사회 트렌드의 건전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발달장애인 역할을 맡고, 농인 배우 ‘이소별’이 수어로 연기하며 캐릭터를 표현했다. 장애인 배우를 직접 기용한 이 같은 시도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청인 배우가 많은 노력을 통해 농인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들의 블루스]와 같이 농인 배우가 수어 연기를 한다면 그들이 가진 내면의 목소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K-콘텐츠의 폭넓은 다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변화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