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직업을 ‘무당’ 혹은 ‘박수’라 칭한다. 귀신을 퇴치하고 쫓아내는 퇴마사와 달리, 귀신과 타협하거나 도움을 받으며 공생관계를 이룬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맑은 영혼으로 신을 만나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영화 속에서도 신스틸러로 종종 등장한다. [곡성]의 황정민, [파묘]의 김고은 등을 비롯한 배우들의 신들린 무당 연기를 만나본다.

박신양 / [박수건달] (2013)

㈜쇼박스

보스에게 신임받고, 동생들에게 사랑받는 엘리트 건달 광호(박신양).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운명선이 바뀌고 귀신을 볼 수 있게 된다. 남부러울 것 없이 승승장구 하던 그의 건달 인생에 ‘그 분’이 태클을 걸어온 것이다. 그렇게 광호는 하루 아침에 부산을 휘어잡는 건달에서 조선 팔도 최고 ‘신빨’ 날리는 박수무당이 되어버린다. 건달로 사느냐, 무당으로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3년, 박신양은 영화 [박수건달]로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당시 [도둑들]을 거절하고 이 작품을 택했다는 박신양은 신내림을 받아야만 하는 ‘박수건달’의 갈등을 능청스럽고 코믹하게 연기했다. 언뜻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아 보였지만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 한동안 연기 활동을 쉬었던 박신양은 그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터뷰를 통해 연기에 그리움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2024년 오컬트 영화 [사흘]에 출연하며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할 예정이다.

김성균 / [우리는 형제입니다] (2014)

㈜쇼박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생이별한 후 30년 만에 극적 상봉에 성공한 상연과 하연 형제! 하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한 핏줄이 맞나 의심이 될 만큼 너무나도 다르다. 게다가 30년 만에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30분 만에 엄마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엄마를 봤다는 제보를 쫓아 두 형제는 방방곡곡 전국 원정을 시작한다. 말투도, 스타일도, 직업도 달라도 너무 다른 이 형제! 과연 사라진 엄마도 찾고, 잃어버린 형제애도 찾을 수 있을까?

장진 감독 특유의 따뜻한 색채가 잘 묻어 있는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 김성균은 형과 헤어진 후 계룡산 보살을 만나 무속인의 길을 걷는 동생 ‘하연’으로 분했다. 무속인 의상과 행동 습관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형 역할의 조진웅은 교회 목사로 등장하는데, 목사와 무속인을 형제로 배치하며 종교의 주제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무겁지 않게 잘 풀어냈다. 김성균은 무당 역을 위해 실제 굿판에 참여했고, 조진웅은 김성균이 정말 무당 같은 느낌을 줬다며 내림을 받아도 되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황정민 / [곡성] (2016)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파오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종구’. 외지인을 찾아 난동을 부리고,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인다.

‘무당’ 역할을 떠올릴 때, 아마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는 [곡성]의 황정민일 것이다. [곡성]에서 무당 ‘일광’으로 분한 황정민은 극 중반부터 등장하더니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등장하는 모든 장면마다 미스터리하고 모호한 것이 일광의 특징이며, 그래서 “절대 현혹되지 마소”라는 그의 대사는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황정민은 무당을 연기하는 것이 노력해서 될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무속인 복장을 하자 온몸으로 느껴지는 어떤 느낌이 있었다고 밝혔다. 촬영장에서 그의 연기를 본 무속인들은 “저건 진짜 굿하는 거 아니냐”며 우려할 정도였다고. 이러한 노력으로 [곡성]이 흥행하였고 황정민은 ‘믿고 보는 황정민’으로 불리게 된다.

박성웅 / [대무가] (2022)  

판씨네마㈜

유아독존 신빨 대신 술빨로 버티는 40대 마성의 무당 ‘마성준'(박성웅). 백발백중 1타 무당을 꿈꾸며 역술계를 평정한 30대 스타트업 무당 ‘청담도령'(양현민). 인생역전 갓생을 노리며 10주 완성 무당학원을 등록한 20대 취준생 무당 ‘신남'(류경수). 신빨 떨어진 무당들이 용하다 소문난 전설의 ‘대무가’ 비트로 뭉쳤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서 50억 원을 손에 넣으려는 이 구역 미친X ‘익수’가 판을 벌리고, ‘대무가’ 무당즈는 각자 일생일대의 한탕을 위해 비트에 몸을 맡긴 채 프리스타일 굿판 대결을 펼친다.

신(神)들린 무당들의 통쾌한 한판 대결을 그린 코미디 영화 [대무가]에서 박성웅은 ‘신’ 대신 ‘술’에 의지해 사는 신빨 떨어진 무당 ‘마성준’을 연기했다. 박성웅은 3개월 간 연극을 준비하듯 굿판 장면을 연습했고 사흘동안 촬영했는데, 탈진을 하다 보니 진짜 신이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세대별로 각자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는 세 무당들의 이야기인 만큼, 박성웅과 함께 무당을 연기한 양현민, 류경수의 신들린 연기도 관전 포인트다.

김고은 / [파묘] (2024)  

쇼박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그러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된다. 그렇게,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사바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호러 명장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트레일러가 공개되자마자 국내외에서 관심이 쏟아졌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무속인으로 등장하는 김고은에 대한 기대가 컸고, 마침내 개봉한 [파묘]에서 김고은은 무당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 역할 특유의 아우라가 그대로 살아 있는 동시에 전형적인 무당 모습에서 벗어나 신선함까지 주었다. 특히 스타일리시한 외형도 인상적인데, 프랑스 브랜드 옷을 차려입고 포르쉐에 기대 커피를 마시거나 꽃신 대신 컨버스를 신고 굿을 하는 모습은 완벽한 ‘MZ 무당’이었다. 대선배 최민식은 김고은을 “[파묘]의 손흥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