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아는 맛이 무섭다. 분명 뻔하고 유치한데, 자꾸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해져서 주말을 기다리게 된다. tvN 토일 드라마 [눈물의 여왕] 이야기다.

이미지: tvN

백현우(김수현)의 인생은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본인은 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 아내는 그 유명한 퀸즈그룹 3세 홍해인(김지원)이니 말이다. 세기의 결혼이었던 두 사람의 백년가약. 하지만 3년이 흐른 현재, 현우는 이혼을 간절하게 꿈꾼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이미 서로 마음은 떠났고, 직접 준비한 이혼서류도 빈틈이 없다. 이젠 통보만 하면 되는데, 해인의 ‘시한부 선고’를 듣고 잠시 이혼을 보류하기로 한다. 조금만 참으면, 모든 게 알아서 해결될 테니 말이다.

초반 줄거리만 봐도 앞으로의 전개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처음엔 연기에 불과했던 현우의 사랑은 점차 ‘찐 사랑’으로 변할 것이고, 해인은 현우와의 미래를 다시 한번 그리지만 치료에 차도는 없다. 또 두 사람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세력이 등장하거나, 한창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현우가 숨겨둔 이혼서류가 발견될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눈물의 여왕]은 앞서 말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

고전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성별만 바뀌었을 뿐, 사실 [눈물의 여왕]은 기존 한국 로맨스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아니 20년 전에도 숱하게 봐온 전개이니 식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던가. ‘뻔하디 뻔한 러브스토리’라는 말은 반대로 친숙한 전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재벌가의 삶 정도를 제외하면). 연인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이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경험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게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K-로맨스 클리셰’ 역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재미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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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김지원은 배우가 곧 개연성이라는 극찬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비주얼과 연기력 모두 흠잡을 곳이 없다. 도도하고 차가운 완벽주의자, 하지만 가끔은 빈틈도 보이는 홍해인은 김지원이 아니면 누구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김수현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말하는 ‘로맨스 눈빛’은 물론이고, 코믹한 상황에서의 존재감도 그야말로 일품이다. 정극, 코미디,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두 사람이 펼치는 티키타카는 두말할 것 없이 인상적이다. 초반부 해인의 시한부 통보에 기뻐하는 현우의 모습은 여러모로 충격적이긴 하나, 이는 배우보단 캐릭터 설정 문제다.

다만 백현우와 홍해인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아쉽다. 도무지 철들지 않는 인물부터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광인(狂人), 그리고 베일에 싸인 외부인까지. 해인의 가족은 어느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재벌가의 인간군상이다. 현우 가족원들 또한 흔하디 흔한 ‘어딘가 억세지만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다. 악역 포지션의 윤은성(박성훈)이라고 다를까? [더 글로리] ‘전재준’과 어딘가 결이 비슷한, 사이코패스 재벌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 물론 현우-해인 커플의 호흡이 이러한 아쉬움을 잊을 정도로 대단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악역을 포함한 주변인물들의 매력이 덜하니 전적으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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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를 기점으로 [눈물의 여왕]의 스토리는 큰 반환점을 맞이했다. 퀸즈 그룹은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낸 은성 일당에게 빼앗길 위기에 빠졌고, 해인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과연 해인과 현우는 그룹과 사랑, 모두를 지켜낼 수 있을까? 큰 반전이 없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날테지만, 두 사람이 행복으로 향하는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