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다. 이로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어 두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했다. 굳이 이 같은 업적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명망 받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전설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매 작품마다 재미는 물론, 삶의 의미를 깨닫는 메시지로 벅찬 감동을 건넨다. 그래서 드는 궁금증 하나,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

대부분 사람들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작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를 꼽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쯤을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은 얼마 전 4K 리마스터링으로 개봉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이다.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연은 꽤 길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출발점이자, 시리즈 탄생 5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루팡 3세] 시리즈는?

이미지: 루팡 3세 TVA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루팡 3세]는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 소설 ‘아르센 뤼팽’을 모티브로 한 몽키 펀치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아르센 뤼팽의 손자라는 독특한 설정과 코믹하고 능글맞은 캐릭터인 ‘괴도 루팡 3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려한 보물을 훔치거나, 때때로 미스터리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여기에 그의 파트너이자 총기 전문가 ‘지겐’과 곤약을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검객 ‘고에몽’, 항상 루팡을 뒤쫓지만 오히려 그를 많이 도와주는 제니가타 경부, 그리고 루팡과 아슬아슬한 러브라인을 타는 팜므파탈 ‘후지코’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루팡 3세]는 1971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한 뒤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시리즈의 근간인 코믹스는 물론, TV와 극장판 애니메이션, 실사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리고 게임까지 다양한 미디어 믹스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만큼 [루팡 3세]가 배출한 당시의 신인, 지금은 거장이 된 애니메이터들이 상당하다. 앞서 언급한 미야지카 하야오를 비롯해, 함께 지브리를 설립한 타카하타 이사오, 그리고 이 두 거장의 작화 스승인 오오츠카 야스오 등이 [루팡 3세]에 참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루팡 3세]는?

이미지: CJ ENM

이중 미야자키 하야오는 1971년에 시작한 [루팡 3세] TV 애니메이션 1기부터 연출에 참여했다. 이것을 계기로 능력 있는 애니메이터로 인정받은 그는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으로 본격적인 연출 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1979년 [루팡 3세] 시리즈의 두 번째 극장판의 감독을 맡아서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을 만들었다.

다만 흥행에서는 꽤 아쉬운 성적을 냈다고 한다. 5억엑 정도의 제작비로 만든 이 작품의 최종 극장 수익은 6억엔을 조금 넘겼다. 극장과 배급사의 수익 비중을 50대 50으로 나눈다고 볼 때, 이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 이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만들기까지 극장판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지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때의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연출에 많은 회의를 느꼈다고. 심지어 다시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못할 것이라고 낙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평단과 관객 반응이 모두 좋았고, 극장 상영을 마치고 난 이후 TV 재방송때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루팡 3세]를 대표하는 극장판으로 남았다. 특히 이 같은 인기는 지금 현재에도 계속되며, 일본에서 투표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인기 순위에서 항상 높은 순위를 자리 잡는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이미지: CJ ENM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TV 애니이션으로 출발한 [루팡 3세] 시리즈의 두 번째 극장판이다. 주인공 ‘루팡 3세’와 동료 ‘지겐’이 비밀이 감춰진 칼리오스트로 공국에서 위기에 빠진 ‘클라리스’ 공주를 만나게 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펼치는 액션과 서스펜스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카지노에서 큰 돈을 훔친 루팡 일행들. 하지만 자신들이 훔친 것이 위조지폐, 그것도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염소지폐’임을 알고 허탈함에 빠진다. 이에 루팡 일행은 지폐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유럽의 칼리오스트로 공국에 잠입하고, 여기서 정체불명의 무리에 쫓기는 한 여인을 만나고 구해준다. 그의 정체는 클라리스. 칼리오스트로 공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칼리오스트로 백작과 결혼을 하기로 되어있지만 이를 거절하고 성을 탈출한다. 더군다나 루팡과 클라리스는 과거 모종의 인연도 있는 듯. 하지만 클라리스는 칼리오스트로 일당에게 붙잡혀 다시 성에 갇히게 된다. 이에 루팡 일당은 클라리스를 구하고, 위조지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칼리오스트로의 성에 침입한다.

1979년작인 이 작품은 지금 시선으로 보면 올드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강력한 몰입감을 자아낸다. 특히 이 작품으로 처음 [루팡 3세]를 접한 분이라면 유쾌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루팡에게 시선이 집중될 듯하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만 이미 머리 속에 큰 그림을 그리며 다음 계획을 실행하는 루팡의 모습은 웰메이드 케이퍼 무비의 리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때때로 심각한 분위기를 전환하는 유머와 재치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액션과 볼 거리 역시 인상적이다. 초반부 루팡 일당과 칼리오스트로 백작 일당들이 펼치는 자동차 추격 장면부터, 후반부 시계탑에서 펼쳐지는 숙명의 대결까지, 근사한 액션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한 스케일이 보는 내내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특히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작화와 연출은 제작진들의 노력과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다.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메시지가 빛나는 부분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 [루팡 3세]라는 거대한 시리즈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한 그의 뚝심이 군데군데 발견된다. 그런 모습들이 이 작품을 [루팡 3세]의 극장판인 동시에 미야지카 하야오 감독의 솜씨가 확실히 들어있다. 그래서일까? 분명 당시 흥행 성적으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지금 시선에서 더 반갑고 소중한 작품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