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엄브렐러 아카데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마블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데어데블]와 [아이언 피스트], [루크 케이지], 그리고 [퍼니셔]가 철퇴를 맞았고, 올해 세 번째 시즌 방영을 앞둔 [제시카 존스]까지도 캔슬이 확정됐다. 코믹스 팬에게는 슬픈 소식이지만, 눈물을 흘리기엔 아직 이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히어로’ 시리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 보컬로 잘 알려진 제라드 웨이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다. 한날한시에 갑작스레 태어난 43명의 아이들 중 7명을 막대한 부를 가진 사업가 레지널드 하그리브스가 입양(이라 쓰고 ‘구매’라 읽는다), 이들에게 초능력을 훈련시켜 하나의 ‘히어로 팀’으로 성장시킨다는 내용이다.

 

TV 시리즈는 팀 해체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아이들이 삼십 대가 된 이후, 레지널드의 부고 소식에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그사이 행방불명된 줄 알았던 No.5가 십 대 당시 모습 그대로 나타나 세상의 종말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종말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시간이 치유하지 못한 오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몇십 년 만에 만나 힘을 합치는 일이 쉬울 리 만무하다.

 

첫 에피소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작중 이미 사망한 벤을 제외하더라도 여섯이나 되는 인물들의 과거와 아픔, 그리고 관계를 이야기에 어떻게 풀어낼지 걱정이 되었다. 히어로물, 특히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이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대중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와 [디펜더스]의 성공, 그리고 안타깝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이를 해냈다고 말하고 싶다. 중반에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어 아쉬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 작품은 전체적인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물들의 과거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현재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더욱 풍성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죽은 벤(망자와 대화가 가능한 클라우스 곁을 지킴)의 묘사까지도 해냈으니 말 다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능력자 형제들과 달라 평생을 차별받다가 끝내 능력이 각성한 바냐(엘렌 페이지)의 심리묘사는 최근 본 히어로 장르 중에서 가장 뛰어난 ‘흑화(黑化)’였다.

 

빌런을 활용하는 방식도 매력적이다. 사실 이는 많은 넷플릭스 시리즈의 장점이기도 한데,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결코 이들을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시간여행이 가능한 No.5를 쫓아 ‘예정된’ 종말이 이루어지도록 그를 방해하는 차차와 헤이즐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겪는 심적 변화와 갈등은 보는 재미를 한껏 더해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 멤버들과 빌런을 연기한 배우들의 빛나는 퍼포먼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히어로 장르인 만큼 액션을 기대한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액션’만’ 놓고 보자면 아쉽다. 15세 관람가인 만큼 [데어데블]이나 [퍼니셔] 등에서 봐온 선혈 낭자한 액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캐릭터들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것도 아니다(무엇보다 시즌 1에서 No.5를 제외하고서는 능력을 많이 발휘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느냐? 바로 제라드 웨이의 선곡이 빛나는 ‘음악’이다. 흥겨운 음악을 더해진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액션 시퀀스는 [킥 애스]와 [킹스맨]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고 듣는 재미’가 있는 편이다. 시즌 1을 제법 만족스럽게 본 시청자의 입장으로, 차기 시즌에는 여기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을 듯하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히어로 장르 치고’ 좋은 작품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드라마다. 파란만장했던 시즌 1의 이야기들을 계기로 다시 ‘가족’의 관계로 뭉치게 될 이들이 과연 두 번째 시즌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