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물을 즐겨보는 까닭에 나쁜 남자 캐릭터들을 자주 접한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법의 상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스르기도 하지만, 나의 평범한 현실과 전혀 다른 그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만다. 냉혹하고 무자비할지라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흥분이 나쁜 남자들이 인도하는 정글 같은 범죄 세계에 안착시킨다. 가족 혹은 사랑 앞에서는 약해지거나 때로는 자신보다 더 나쁜 범죄를 응징하는 모습도 인간적인 매력을 더해주기도 한다. 이런 게 길티 플레져인가. 이성적으로 봤을 때는 문제 많은 인물이지만, 묘하게 끌리는(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이기에 가능하다) 나쁜 남자들이 나오는 범죄 드라마를 일부 소개한다. (*넷플릭스 공개 작품)

 

 

  1. 나르코스(Narcos)

이미지: 넷플릭스

[나르코스]는 그동안 주로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던 마약 범죄의 무대를 콜롬비아로 옮겨 지금도 계속되는 마약과의 전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파고든다. 첫 타자는 콜롬비아는 물론 미국 정부마저 골머리를 썩게 했던 악명 높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다. 콜롬비아 마약 조직을 소탕하려는 미국 DEA 요원의 시선을 빌어 에스코바르의 끝없는 탐욕과 무자비한 행적을 다룬다. 소재 자체도 흥미롭지만,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연기한 와그너 모라의 카리스마 넘치는 묵직한 존재감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메데인 카르텔 시대가 막 내린 시즌 2 이후에는 ‘칼리의 신사’라 불리던 콜롬비아의 또 다른 조직 칼리 카르텔과 멕시코의 마약왕 펠릭스 가야르도가 이끄는 과달라하라 카르텔을 다루었다. 공개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펠릭스 가야르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2.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

이미지: BBC Two

[피키 블라인더스]는 영국 버밍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범죄 조직 가문을 다룬다. 둘째 토미 셸비를 주축으로 견제와 경쟁 속에 갱스터 가문이 성장해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온 가족이 범죄에 뛰어든 이야기가 딱히 새로울 건 없지만, 세련된 연출과 탄탄한 서사, 뛰어난 시대 고증, 주조연 배우들의 고른 활약이 더해져 호평을 받으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도 이 드라마의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킬리언 머피다. 트라우마와 상처로 고통받는 나쁜 남자 토미 셸비로 분해 특유의 치명적인 매력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가족과 사업이 걸린 일에는 한없이 냉철하며 신분상승과 성공을 향한 야욕도 만만치 않다. 올해 다섯 번째 시즌이 방영될 예정이다.

 

 

 

  3. 썬즈 오브 아나키(Sons of Anarchy)

이미지: FX Networks

[썬즈 오브 아나키]는 드라마로 드물게 바이크 갱단을 소재로 택했다. 실제 바이크 갱단 ‘헬스 엔젤스’에 모티브를 얻어 갱스터들의 범죄 사업과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짙은 남성미가 드라마 전반을 아우르는데, 그게 매력이다. 막장 서사가 주를 이루긴 해도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로 멋을 부리고 단체로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질주 본능을 충족시키며 대리만족을 톡톡히 해낸다. 원조 ‘헬보이’ 론 펄먼이 갱단 조직 두목으로 등장해 반갑고, 찰리 허냄이 개인의 삶과 아버지의 유산 사이에서 고뇌하며 갈등하는 부두목 잭스 텔러 역을 맡아 남성적인 매력을 마구 어필한다. 2014년 충격적인 엔딩을 선보인 시즌 7을 끝으로 종영해 아쉽다면, 새롭게 시작한 스핀오프 드라마 [마얀스 MC]가 있다.

 

 

 

  4. 퍼니셔(The Punisher)

이미지: 넷플릭스

[데어데블] 시즌 2에 첫 등장한 프랭크 캐슬은 초인적인 능력은 없지만 복수심과 분노에서 비롯된 무자비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만의 독립적인 이야기인 [퍼니셔]는 프랭크 캐슬의 본격적인 복수극을 다룬다. 가족을 잃은 지독한 고통 속에 스스로 응징자가 되어 직접 범죄자들을 찾아내 처단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파탄에 빠뜨린 배후를 추적해 맞서는 피의 복수는 화끈하면서도 처절하다. [워킹 데드]에서 릭의 애증의 친구로 잘 알려진 존 번탈이 거칠고 불안정한 인간 프랭크 캐슬에 완벽하게 밀착한 연기를 보여줘 야수 같은 캐릭터에 연민의 감정을 자아낸다.

 

 

 

  5. 레이 도노반(Ray Donovan)

이미지: Showtime

레이 도노반은 LA에 거주하면서 유명 인사의 지저분한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해결사 일을 한다. 직업의 특성상 법과 상식을 넘나들지만, 덕분에 생활은 안정적이고 윤택하다. 문제는 바람 잘날 없는 가족사다. 특히 출소 후 아들의 삶에 불쑥 끼어들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아버지는 그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한다. [레이 도노반]은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해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막장 가족사를 중심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뒤처리를 하는 이야기를 거칠고 자극적으로 그려낸다. 우직하고 강인한 인상의 리브 슈라이버가 처음으로 TV 시리즈 주연을 맡아 가족들 때문에 늘 힘들어하는 과묵한 남자 레이 도노반을, 존 보이트가 늘 아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아버지 미키 역을 맡아 팽팽한 중심축을 이룬다.

 

 

 

  6. 배드 블러드(Bad Blood)

이미지: Citytv

[배드 블러드]는 캐나다 몬트리올을 거점으로 활동한 범죄 조직의 수장 비토 리추토의 마지막 활동 시기를 다룬다. 드라마는 거물급 범죄자의 영광스러운 나날을 다루는데 관심이 없다. 리추토의 성공 스토리는 축약하고, 대신 미국 콜로라도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혼란스러운 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리추토의 오른팔 데클란이 화자가 되어 마지막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몰락하는 거물급 범죄자의 씁쓸한 퇴장길을 비춘다. [FBI 실종수사대]의 안소니 라파글리아와 [썬즈 오브 아나키]의 킴 코티스, 두 베테랑 배우가 비토 리추토와 데클란으로 분해 중량감 있는 연기로 흥미로운 서사를 끌고 나간다. 아쉬움이 있다면, 좀 더 길게 보여줘도 될 것 같은 이야기가 6부작 에피소드로 너무 빨리 끝난다는 것이다.

 

 

 

  7. 너의 모든 것(You)

이미지: My Lifetime

[너의 모든 것]의 조는 지금까지 소개한 드라마 속 남자들처럼 처음부터 불법을 저질렀던 사람이 아니다. 겉보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조는 일상의 대부분을 서점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보낸다. 다만, 그에겐 좀 유별난 취향이 있다. 서점에 오는 손님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작가 지망생 벡이 손님으로 찾아오면서 늘 똑같이 반복되던 일상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조는 한눈에 반한 벡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집착의 강도를 높여 나간다. 자신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정당화하며 스토킹, 납치,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의 친절과 사려 깊은 배려에 속은 베키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가십걸]의 펜 바드글리가 벡과 시청자를 현혹시키는 위험한 인물 조 역을 맡아 치명적인 광기를 보여준다.

 

 

 

  8. 더티 존(Dirty John)

이미지: Bravo TV

[더티 존]의 존 미한은 [너의 모든 것]의 조처럼 두 얼굴의 남자다. 조가 광기 어린 집착을 사랑이라 굳게 믿고 스스럼없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존은 철저히 계산된 목표에 따라 상대방을 속이고 사랑의 감정을 연기한다. 훈훈한 외모와 소탈하고 다정한 매력을 겸비한 존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 데브라를 사로잡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너의 모든 것]에서 벡이 그랬듯 친절하고 상냥한 데브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존의 본모습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트로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에릭 바나가 섬뜩하고 교활한 본성을 숨긴 이 문제적 남자를 연기한다. 점점 찌질하고 비열한 속내를 드러내는 그의 모습은 소름 끼치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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