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줄리엣 비노쉬는 단아하고 지적인 미모와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프랑스의 명배우이다. 예술영화를 비롯한 프랑스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다. 유난히 상복이 많은 줄리엣 비노쉬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수상자이다. 세계 영화계는 그를 ‘천 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시네필의 영원한 뮤즈’라고도 부른다. 다음 작품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있으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노련하지만 절대 낡지 않는, 줄리엣 비노쉬의 대표작들을 모아본다.

퐁네프의 연인들(1991)

미셸 역
이미지: 오드

파리 센느강의 아홉 번째 다리 ‘퐁네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퐁네프의 연인들]. ‘퐁네프’에서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게 된 ‘알렉스’(드니 라방)와 ‘미셸’(줄리엣 비노쉬)은 마치 내일이 없는 듯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사랑하고 춤을 춘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도 이별을 찾아오고, 서로가 전부였던 이들은 3년 뒤 크리스마스에 퐁네프의 다리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한다. 1992년 국내 개봉 당시 뜨거운 흥행을 기록하며 프랑스 영화 붐을 불러일으켰던 [퐁네프의 연인들]들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파리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작품이다. 누벨 이마주(Nouvelle Image) 시대를 연 레오 카락스 감독의 강렬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은 낭만적인 파리를 더욱 아름답게 구현했다. 특히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장면은 한번 보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게 명작으로 남아 있는 작품이지만 주연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가 밝히기를, [퐁네프의 연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심하게 소모시켰었다고 한다. 배우로서 힘겨운 여정이라고 회상했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세 가지 색: 블루(1993)

줄리 드 꾸시 역
이미지: (주)영화사 안다미로 Andamiro films, ㈜영화사 백두대간 BaekDu-DaeGan Flims Co. Ltd

가장 차가운 색으로부터 가장 따뜻한 치유를 그린 영화 [세 가지 색: 블루]는 상처로 물든 여자 줄리가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 ‘블루, 화이트, 레드’를 제목으로 달고 각각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담은 키에슬로프스키의 3부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국내 개봉은 화이트→블루→레드 순이었다). ‘절망과 우울’, ‘안정과 정화’, ‘자유’라는 키워드로 푸른빛의 세계를 구축한 [세 가지 색: 블루]는 지금도 예술영화 팬들 사이에서 90년대 걸작으로 꼽힌다. 줄리 역할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이 작품에서 강렬하고도 절제된 연기를 선보여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세자르상과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나면서 할리우드에서도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

한나 역
이미지: (주)영화사오원

영원히 잊히지 않는 강렬하고도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잉글리쉬 페이션트].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무렵, 극심한 화상을 입고 나라도, 신분도, 이름도 잃은 채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불리는 환자 ‘알마시’(랄프 파인즈)는 야전병원을 전전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는 간호사 ‘한나’(줄리엣 비노쉬)에게 지금껏 간직해온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다. 프랑스와 프랑스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줄리엣 비노쉬의 대표적인 할리우드 출연작이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덧붙여 베를린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

초콜릿(2000)

비안느 역
이미지: 미라맥스

초콜릿만큼이나 달콤하고 따뜻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초콜릿].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 초콜릿으로 사람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비안느’(줄리엣 비노쉬)가 초콜릿 가게를 차린다. 비안느의 초콜릿으로 상처를 치유한 사람들이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어가던 중, 이를 아니꼬워하던 마을 시장은 비안느를 마을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줄리엣 비노쉬는 정열적인 여인 비안느 역할을 맡아 영화의 신비롭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달콤한 힐링을 선사하는 영화 [초콜릿]은 다정하고 친절한 한 인간이 마을 전체를 녹인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와 연기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훌륭한 여성 영화로도 꼽힌다.

사랑을 카피하다(2010)

그녀 역
이미지: (주)마운틴픽쳐스

사랑을 기억하고 싶은 여자와 사랑에 무관심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기막힌 복제품」이란 책을 써낸 영국인 작가 ‘제임스’(윌리엄 쉬멜)는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그의 책의 팬인 ‘그녀’(줄리엣 비노쉬)를 만난다. 제임스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녀와 ‘진짜 부부’인 척하는 장난스러운 역할극을 시작한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들의 역할극은 점점 진지해지고, 진실과 거짓이 모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기 시작한다. ‘예술에 있어서의 오리지널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주제를 ‘사랑 역할극’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풀어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의 사랑이 진짜일지, 가짜일지 생각하게 된다. 극중 ‘그녀’라는 역할을 맡아 모호하면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줄리엣 비노쉬는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

뤼미르 역
이미지: ㈜티캐스트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 서로에게 쌓인 오해와 숨겨진 진실에 대해 알아가는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전설적인 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의 회고록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다. 하지만 반가운 재회도 잠시, 엄마의 회고록을 읽은 뤼미르는 책 속 내용이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평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던 줄리엣 비노쉬가 그와 함께 협업한 첫 작품이다. 그는 너무 유명한 엄마로 인해 자신의 삶이 힘들다고 생각한 딸 뤼미르 역을 맡아 공감 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여러 일들로 인해 점점 그를 이해하고, 자신 역시 어머니가 되어가는 여정을 호소력 있게 담아낸다. 여기에 대배우 까뜨린느 드뇌브와 에단 호크까지 열연까지 더해지며 많은 감동을 건넸다. 거장 감독과 대배우들이 완성해낸 따뜻하고 매력적인 가족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