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내밀한 이야기로 사회를 그리며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안긴 [로마]. [해리포터]의 마법 세계, [그래비티]의 우주를 관객에게 선사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번에 1970년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가정부 클레오와 그녀를 고용한 중산층 가족의 평범한 삶은 격동의 시기와 맞물려 극적으로 변한다. 유영하듯 흘러가는 카메라 워크, 내밀하고 친밀한 순간을 보여주면서도 어느새 한발 물러서 관조하는 접근, 선명하고 밝은 흑백 화면으로 가족의 해체와 사회 계층의 차이, 격변의 시대를 감성적으로 풀어냈다.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진정한 체험의 영화’로 평가받고 있으며,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21일 롯데시네마 애비뉴엘에서 열린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가장 내밀하고 가장 영화적인 순간을 만들어낸 과정과 그의 생각을 들어 봤다.

이미지: 게티이미지/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한 영화를 하게 됐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역설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로마]의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출시할 수 있게 허락한 곳이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극장에서 개봉할 때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겠다. 나도 관객이 극장에서 [로마]를 보길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선 넷플릭스 같은 신규 미디어 플랫폼이 가장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영화는 흑백 영화이며, 스페인어뿐 아니라 멕시코 언어가 나온다. 이런 영화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은 많으나 이들 모두에게 닿을 수 있고 가장 접근하기 편한 플랫폼은 넷플릭스다. 또한 15~20년 뒤에도 이 영화를 접근할 기회가 있다는 점도 묘미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경험과 기억에 바탕한 자전적 이야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인공은 가정부 클레오다. 왜 본인이 아닌 클레오의 이야기에 중심을 맞췄는가?

처음부터 나를 중심 캐릭터로 잡아 연출할 계획은 없었다. 내게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클레오의 이야기란 것이다. 클레오의 모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만큼 리보(클레오의 모델이자 쿠아론 감독이 어렸을 적 집안의 가정부로 일한 여성)가 원하는 것이 중요했다. 클레오는 나의 상처와 리보의 상처를 같이 공유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우리가 한 가정으로 안았던 상처, 더 크게는 멕시코와 전 인류가 안았던 상처를 표현할 적합한 캐릭터다.

엠마누엘 루베츠키 감독이 스케줄 문제로 합류하지 못하자 직접 촬영을 맡았다. 부담이나 어려움은 없었는지?

내 경력은 연출보다는 촬영 감독이 먼저였다. 학교에서도 촬영 일을 먼저 배웠다. 멕시코에서도 여러 편의 TV를 촬영했다. 루베츠키는 내 어시스턴트였고, 내가 했던 작품 대부분은 루베츠키와 함께 했다. 참여하지 못하게 됐을 때, 루베츠키가 내게 직접 촬영하라고 설득했다. 촬영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작품에 들어가면 초반 몇 주나 며칠은 내가 직접 촬영한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65mm 디지털카메라로 찍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사실 긴장도 했다. 내 생각을 모두 각본에 쏟아부었는데 각본을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크루도, 제작사도 마찬가지였다. 촬영감독이 오면 내가 쓴 것을 한 번 필터링을 거쳐서 만들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해석과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가 생각한 걸 그대로 직을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또한 영화를 흑백으로 찍되, 50년대 스타일이 아닌 디지털적이고 현대적인 흑백으로 찍어,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듯한 영상으로 만들고자 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황금사자상을 받았지만, 칸 영화제에서 작품을 공개하지 못했다. 칸 영화제는 플랫폼에서 공개하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넷플릭스와 영화를 함께 한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를 보이콧하는 정책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플랫폼은 영화제와 극장 산업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업계에 머무를 것이다. 플랫폼 또한 필름메이커들이 극장 상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인지하고 이를 지원할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최선을 찾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극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너무 제한적이다. 슈퍼히어로 영화 아니면 할리우드 영화 몇 편 뿐이다. 플랫폼은 극장에서 사라진 다양성을 다시 가져왔다. 영화를 볼 때는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 멕시코 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극장 상영을 온 마음을 다해 변호하지만 다양성 또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로마]를 보며 전작 [그래비티]와 비교를 하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써 [그래비티]와 [로마]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보는가?

[로마]의 전체 아이디어는 현재의 영이 과거로 돌아가 마치 유영하면서 친밀한 순간을 관찰하거나 참여한다는 것이다. 리얼 타임으로 실시간을 그리되, 시각 그 이상을 사운드로 구현해 체험을 완성하고 싶었다. 시공간의 개념을 존중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비티]와 그 점에선 유사할 수 있으나, 어떤 부분에선 완전히 다르다. 그래비티는 가끔 1인칭 시점이 나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객관적 시각으로 관찰하는 영화였다. 반면 [로마]는 주관적인 시각이 많이 담겨 있다.

[그래비티]의 성공 이후 모국에 돌아가서 영화 촬영을 하게 됐다. 왜 멕시코로 돌아가서 작업하게 됐나?

[로마]는 내 어린 시절과 기억에 바탕한 이야기라 내 고향에서 찍어야만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창작 과정, 사고 과정, 연출 모두 내 모국어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영화에 나오는 레퍼런스 같은 것들은 내가 직관적,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지금 외국에 살고 있고 외국어로 된 많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럴 때마다 내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번역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문화나 상징에 대한 해석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로마]를 본 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펠리니 감독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기도 했는지?

당연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로마]는 다른 영화를 레퍼런스로 삼거나 오마주를 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영화감독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있으면 모두 다르게 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영화가 떠오르는 건 내 DNA에 수많은 감독들의 작품이 있으며, 내 결정과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편집하면서 편집자가 무술 장면에서 펠리니 느낌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젠장, 진짜 그렇네.”라고 말했다. 그 장면은 아예 비슷하게 가보자 생각해서 펠리니의 트레이드마크인 바람 부는 효과를 집어넣었다.

연출한 작품마다 모두 결말 부분에 물이 나온다. 특히 [칠드런 오브 맨]과 [로마]는 굉장히 비슷하다. 본인의 경험이 배어 나온 것인가?

누군가 몇 주 전에 내게 모든 영화가 바다나 물가에서 끝난다고 말해줬는데, 그 전까진 몰랐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칠드런 오브 맨]이나 [그래비티]에서 물은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다. 주인공이 물에서 걸어 나오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은 비유였다. 그 외에도 스토리가 맞으면 바다를 표현했다. 하지만 [로마]에는 그런 의도는 따로 없다.

이미지: 넷플릭스

클레오의 남자친구가 무술 훈련을 받는 장면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한국인 사범이 나온 것이 인상적이다. 과거의 기억을 반영한 것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인가?

훈련 장면에서 태권도가 나온 건 당시 준군사조직이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군사훈련을 받았던 이들은 저소득층 출신이었고, 그들이 받은 훈련은 실전에서 반정부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적용됐다. 준군사조직은 청년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탄압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한국인 사범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레퍼런스다.

멕시코와 한국은 1970년대 민주화 시위와 정부 탄압이라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 왜 이 시기를 선택했고, 이 당시 일들이 지금의 멕시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배경을 1970년대로 설정한 건 영화가 내 개인과 기억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리보의 임신과 내 가족의 해체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를 개인과 가정뿐 아니라 멕시코의 상처와 흉터로 연결하기 위해 사회의 갈등도 함께 표현했다. 당시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정부 탄압을 겪으며 멕시코의 시대정신이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멕시코는 민주화에 실패했고, 1990년대까지 지하 조직 형태로 민주화 운동을 지속했다. 아직까지도 멕시코는 민주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멕시코는 감성적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회 고위층의 부패와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 정부와 기업의 비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대해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영화에서 부패, 비리를 풀어가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