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넷플릭스가 처음 한국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미드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게 기대감이 부풀었다. 비록 초기에는 생각보단 부족한 콘텐츠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지만, 불과 몇 년 사이 타사 대비 풍부한 라이브러리를 갖춘 서비스로 거듭났다.

특히, 해외 드라마 팬에게 친숙한 미드와 영드는 물론, 이제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드라마를 소개하는 창구로 거듭나고 있다. 독일, 스페인, 터키,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등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해외 드라마의 폭도 방대하다. 영어가 아닌 해당 국가의 언어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낯설 수 있지만(재생 설정에서 영어로 바꿀 수도 있다), 문화적 생소함이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미드(혹은 영드)를 질릴 만큼 봤다면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비영어권 드라마 중 시간 투자가 아깝지 않은 작품을 직접 보고 소개한다.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How to Sell Drugs Online: Fast) – 독일 청소년 버전의 ‘브레이킹 배드’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홍선: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은 논란의 제목과 다르게 경쾌하고 시원하다. 성공한 10대 마약 딜러 모리츠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자신이 성공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오프닝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넷플릭스니깐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드립까지.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은 [브레이킹 배드] 독일 청소년 버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떠나간 여자 친구를 되찾기 위해 인터넷 마약 딜러가 된 주인공과 친구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또래 문화에 대한 꼼꼼한 묘사와 휴대폰과 PC, 비디오 게임 화면을 이용해 만든, 그야말로 약 빤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특히 매화 인트로에 주인공들이 판 마약을 산 구매자가 어떻게 약을 먹고 무너지는지를 재기 발랄하게 연출한다.

감각적인 연출과 반대로 10대 시절의 고민, 온-오프라인 관계에 대한 고찰도 담아낸다. 마약 제조 및 판매라는 소재만 뺀다면 현재 처한 상황에서 좌절하고 고민하는 10대의 모습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극의 톤 역시 제목의 호기심과는 반대로 차분하게 전개되어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잡는다. 회 당 30여분, 총 6개의 에피소드로 분량도 짧아서 가볍게 보기에 부담 없다. (6부작)

위험한 불장난(Jugar Con Fuego) – 고급스러운 막장 드라마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혜란: 싱그러운 자연에 둘러싸인 콜롬비아 커피 농장이 배경인 섹시한 막장 드라마. “잘생긴 이방인이 세 여인을 한꺼번에 유혹한다”는 설정도 흥미롭고, 자연 경관과 어울리는 세트 덕분에 예산은 적게, 회차는 많이 찍는 다른 텔레노벨라와 차별화된다.

한 남자와 세 여자(중 두 사람은 모녀 관계)가 얽힌 스토리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런데도 [위험한 불장난]이 매력적인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세 여성이 마성의 주인공 파브리시오게 빠지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순간 시청자로서 느끼는 통쾌함이다. 파브리시오가 여성을 유혹하는 순간도 섹시하지만, 전형적 ‘우머나이저’인 그가 진짜 사랑에 빠지는 것도 흥미롭다.

다른 하나는 결말이다.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여도, 커피 농장은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곳이다. 억압적 문화 아래서도 꿈을 꾸고 욕망에 충실한 여성들은 결국 남자들이 욕심을 이기지 못해 몰락한 뒤 승자가 된다. 이야기의 흐름은 다 예상할 수 있지만, 솔직히 세 여성뿐 아니라 여성 캐릭터 누구라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으면 실망했을 것이다. 끝이 만족스럽다는 데 점수를 주고 싶다. (10부작)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Quicksand) – 불분명한 기억을 따라가는 서스펜스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현정: 스웨덴에서 온 매혹적인 심리 서스펜스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를 소개한다. 말린 페르손 지올리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사건의 비극을 파헤치는 드라마다. 학교에 혼란과 충격을 몰고 온 10대 주인공의 기억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제시카 비엘의 [죄인]과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묘하게 연상시킨다.

주인공 마야는 총기난사 사건의 공모자로 지목되나 극도의 충격과 두려움에 빠져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드라마는 폭력적인 남자친구 세바스티안과의 문제적 과거와 구치소에 수감된 후 법정으로 이어지는 현재를 교차하며 마야의 불완전한 기억을 조금씩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날 마야는 왜 사건 현장에 있었을까? 마야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드라마는 자극적인 소재로 포문을 열지만, 마지막까지 마야의 행동과 의중에 의혹을 내려놓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춰 사건의 결말이 어디로 향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복잡 미묘한 인물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한나 아르덴과 펠릭스 산드만의 연기도 우울한 서스펜스에 힘을 싣는다. (6부작)

델리 크라임(Delhi Crime) – 여성의 공감과 연대의 힘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원희: 인도의 델리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집단 강간 사건을 기반으로 한 범죄 드라마로, 회당 약 50분, 총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늦은 밤 버스를 탔던 두 남녀가 상처투성이에 나체로 길에서 발견되고, 남부경찰청 부청장인 바르티카 차투르베디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다.

바르티카의 딸은 인도의 여성관을 비판하며 인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딸을 설득하려는 바르티카가 맞이한 이 사건은 너무나도 참혹하다. 바르티카는 피해 여성의 끔찍한 상처를 보고, 같은 여성이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직접 팀을 꾸려서 수사에 착수한다.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 경찰들, 경찰을 믿지 못하는 시민들, 그 사이에 가짜 뉴스를 뿌려 불안감을 조성해 정치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불리려는 정치인까지. 익숙하면서도 정말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서사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능력 있는 여성과 그를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 덕에 끔찍한 사건의 매듭이 점차 풀리는 걸 보면서 공감과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7부작)

이파네마의 여인들(Most Beautiful Thing) – 보사노바와 함께 성장하는 네 여성의 이야기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영준: 그동안 ‘남미 드라마’하면 범죄 스릴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사실 브라질에서 건너온 로맨스 [이파네마의 여인들]은 개인적으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작품이었다. 첫 에피소드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드라마는 1950년대 후반 브라질을 배경으로, 상파울루에서의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을 떠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마리아 루이자와 세 친구들의 이야기다. 장르는 ‘로맨스’지만, ‘여성들의 성장기’에 가깝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이 제한되었던 시대적 상황에 맞서 꿈을 실현하고 연대하는 모습과 당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보사노바 리듬이 맞물리니 색다른 느낌이다. 알고 보니 보사노바의 뜻이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성향’이라고.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네 여성의 성장 드라마가 다를 뿐만 아니라 알차고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성장했다면 재미와 감동이 반감되었을 텐데, 트로피 와이프, 기자, 흑인 미혼모 등 다양한 처지의 네 여성이 각자 다르게 시대에 맞서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여성 서사의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시즌 1의 결말은 이전 에피소드들의 분위기를 180도 뒤바꿀 정도로 충격적이고 아쉽기도 하지만, 이를 다음 시즌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새삼 궁금해진다. (7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