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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크리스 리

 

 

이미지: Columbia Pictures

 

“작가가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스탠 리가 2002년에 쓴 그의 회고록 ‘Excelsior!: 스탠 리의 놀라운 인생’에 있는 문장이다. “나는 사람을 창조하고, 죽이고, 변형시키는 등 나만의 코믹스 세상에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런 힘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이전처럼 부끄럼 많고, 겸손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나 자신이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이 몇 마디의 문장으로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코믹스 작가의 면모를 대번에 알 수 있다. 리는 이야기나 대사를 상황에 따라 왈츠, 지르박, 탱고 등 다양한 분위기로 변주하는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 그가 공동으로 창작한 가상 세계 안의 다양한 캐릭터들은 후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는데,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늘 웃고 있는 얼굴의 스탠 리’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유명 마블 캐릭터들의 공동 창작자, 마블 편집장, 덕후 문화의 단장 등 96년의 인생 동안 정말 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쳤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를 부끄럼 많고, 겸손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으로, 언제나 공동으로 창작한 슈퍼히어로들과 오로지 그의 손에서 탄생한 ‘스탠 리’라는 캐릭터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물의 평소 자기 지각력은 어느 정도였을까?’라는 살짝 어긋난 마음에서 비롯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리는 그의 훌륭한 공동 저작자들이 본인을 싫어하는 걸 알았을까? 그는 코믹스 사학가와 기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이 갈린다는 걸 알았을까? 본인의 인생을 더 황폐하게 만든 사업적 결정을 내린 이유를 정확히 알았을까? 그가 임종을 맞기 전 거울을 봤을 때,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스탠 리의 마지막 나날은 그의 엄청난 위상과 대비되는 매우 슬픈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물론, 스탠리 리버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남자는 동세대 다른 프로 만화가들이 그랬듯 궁핍하게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임종 소식은 ‘스탠 리’와 관련되어 나온 일련의 슬픈 뉴스 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것에 불과했다. 성추행 혐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한 개인에게 매우 치명타를 날릴 만한 일이지만, 이 문제 역시 그가 가진 최악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법,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돈과 가장 많이 얽혀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 “내가 평생 살며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돈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썼는데, 이는 그의 쇠퇴기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던 아내 조안 리가 작년에 작고한 이후 리의 인생은 급속히 황폐해졌다. 1990년대 당시 마블 현역 근무를 마치고 세웠던 회사 ‘스탠 리 미디어’와 ‘POW!’의 장래가 불투명해진 이후에는 상황이 점점 악화됐다. 그와 관련해 ‘카더라’ 식으로 나온 소식 중 사실상 증거가 나온 것은 없기 때문에 너무 세부적으로 파고들 필요는 없지만, 그의 측근에 따르면 리는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렸다고 한다. 그의 딸 조안 실리아 및 스탠과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은 몇몇 개인이 그의 재산을 사취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주 전, 리는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잘 알지 못했다며 실의에 빠진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고요하고 평화로이 눈을 감지 못했다.

 

 

이미지: ABC Network

 

리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던지 그를 폄하하는 사람들마저 감히 그 불행을 향유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그를 너그러이 대한 것은 아니다. 비록 대중들은 그를 괴짜인 종조부 정도로 생각하여 영화나 TV에 카메오로 나올 때마다 연신 환호를 내질렀지만(참고로 리는 앞으로 개봉할 마블 영화의 카메오 분량을 이미 찍어뒀기 때문에, 극장에서 눈물 흘릴 사람이 꽤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믹스 세상의 일부 세력은 영웅이 아닌 악역으로 보았다. 그들은 리가 자신이 정상에 오르는데 일조한 동업자에게 합당한 사례를 지급하는 것보다 자신의 세력 확대에 더 주력하는 것 같다며 힐난했다.

 

리는 코믹스의 작가로 일하며 그 위상을 널리 알렸지만,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낸 것은 아니었다. 이를 말하기에 앞서 그의 작업 방식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일단 리와 시각효과 아티스트가 코믹스의 개략적인 구성을 짜고 나면, 그는 아티스트에게 구체적인 스토리 구상 및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했다. 이후 잠시 일선에서 빠져 있다가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 다시 작업에 뛰어들어 캐릭터 및 내레이터의 대사를 적어 내려갔다. 이 시각효과 아티스트란 사람들은 누가 봐도 최소 작품의 공동 창작자였지만, 리는 그들을 단순히 아티스트로 알리길 원했으며 크레딧에도 자신을 스토리의 유일한 작가로 기재했다. 심지어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엑스맨 같은 곳에 등장하는 캐릭터 창조를 위해 리만큼이나 공을 들인 아티스트들이 꽤 있었음에도, 매체에서 그를 유일한 창작자라고 말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이를 정정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만년에 이르러 기세가 조금 수그러진 탓인지 그는 스티브 딧코나 잭 커비와 같은 작가 및 아티스트를 공동 창작자라고 언급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창작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괘씸한 스탠 리는 조금의 지분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실언에 가까운 주장이다. 비록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많이 치켜세우기는 했지만, 리가 국제적인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는 스토리 창조 과정의 제일 마지막에 작가로 참여하여 글만 써 내려갔지만, 이 글의 중요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리는 그의 캐릭터에서 유머와 비애를 동시에 끌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 마블 혁명 이전까지 그 누구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 그만의 특기였다. 그는 딧코와 함께 작업한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가 코스튬을 입은 채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러 가는 장면처럼 엉뚱한 유머를 쏟아내다가도, 이야기를 우아한 방식으로 선회하여 힘과 책임에 관한 아주 멋진 말을 만들어 냈다. 그가 커비와 작업한 판타스틱 4를 본 사람은 미스터 판타스틱의 끊이지 않는 과학적 농담에 감탄하는 동시에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싱의 안타까운 처지에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리의 언변은 마블 클래식에 수록된 편지형 칼럼과 홍보용 권말 부속물에서 더욱 빛났다. 그가 여기에 적은 훌륭한 익살들로 팬덤 사이에서 토론의 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리는 ‘스탠의 연단’이라는 칼럼에서 팬과 악성 팬에게 재치 있는 말을 던지거나 회사 작품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유쾌하게 썼고, 심지어 경쟁 상대를 장난스레 디스하기도 했다. 또한 ‘No-Prizes’라는 코너를 신설하여 마블 유니버스 내에서 그가 의도하지 않고 만든 내용상의 허점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의 편지글을 코믹스 다음 판에 싣기도 했다. 이처럼 코믹스에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 유니버스 내의 비공식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의혹을 없애는 것은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딧코와 커비 두 사람 모두 매우 훌륭한 작가이자 아티스트지만, 즐거움으로 무장한 리의 노련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스탠 리’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수많은 코믹스가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두 능력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생존을 위해 그런 리더십을 필요로 했을 때 등장했고, 이후 코믹스 매체와 슈퍼히어로 픽션 장르의 전반적인 침체를 호전시켰다.

 

 

이미지: Walt Disney Studios Motion Pictures

 

그는 또한 ‘공유된 세계관’이라는 새롭고 놀라운 혁신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비록 마블 혁명 이전에도 슈퍼히어로 코믹스 내의 크로스오버는 숱하게 있었지만, 견실한 기반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사건을 접합시켜 어딘가 부족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블의 편집장이자 작가라는 위치에 서 있던 리는 마블 캐릭터를 뉴욕에 집결시킨 다음, 개개의 서사뿐 아니라 거대한 마블 유니버스 전체의 서사까지 동시에, 그러면서도 서서히 진행했다. 이는 훌륭한 판매 전략이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다른 작풍의 연관성 없는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영웅 서사시로 만드는 좋은 방법이었다.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은 이 ‘공유된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지금껏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제작사는 스탠 리의 캐릭터가 나온 마블뿐이다.

 

하지만 마블 영화들도 어떻게 보면 리에게 큰 위안을 준 것은 아니다. 그는 마블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기는 했지만, 정작 지적 재산권을 소유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성공한 원작의 공동 창작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리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또한 매 작품마다 의무적으로 등장해 웃음을 줬던 카메오 캐릭터 구축에도 어떤 개입을 하지 않았다. 배우와 감독은 ‘스탠 리’를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일관했지만, 리가 살아생전 했던 기이하고 실패한 프로젝트를 언급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크리스 헴스워스, 프랫, 에반스가 SNS 계정을 통해 찬사를 받는 동안, 리는 90대라는 나이에도 여러 코믹 컨벤션을 전전하며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 돈을 받고 수백 장의 사인을 했다. 그가 노년에 이르러서까지 왜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혹자는 그의 가족 구성원이나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돈을 뽑아먹기 위해 혹사시켰다는 다소 끔찍한 추측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가 일을 그만두기 싫어했을 가능성도 있다. 리는 어린 나이에 대공황을 겪었고, 회고록 ‘Excelsior!’에 아버지가 실직으로 고통받는 걸 보기 괴로웠다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실직은 아버지로 하여금 당신을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여 그의 정신까지 갉아먹었고, 의기소침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나는 이후 평생 떨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바쁘게 일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모종의 의무감이었다.”

 

 

이미지: Walt Disney Studios Motion Pictures

 

‘필요하다’라는 말은 이 글의 맥락에서는 참으로 복잡한 의미를 내포한다. 사람들은 ‘스탠 리의 마이티 7’이나 ‘스탠리의 히어로 커맨드’ 같은 기이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난 콘텐츠를 필요로 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스탠 리라는 인물을 필요로 할까? 이 질문에는 감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 초기 코믹스 시장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 사람이다. 대중들은 그를 문화 산업에서 가장 뛰어났던 쇼맨 중 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고, 그의 이야기는 이 시장에서 코믹스나 슈퍼히어로 서사로 이룰 수 있는 최대치를 달성한 증거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겠지만, 개인적으로 리는 그가 받은 것보다 우리에게 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창작자들이 과거를 반추하며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동안 대담하게 먼 미래를 내다본 창작자이다. 그는 ‘Excelsior!’에 “내가 모든 일에 항상 옳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내 결정에 의심을 품은 적은 없다.”라고 쓴 바 있다. 앞으로 언젠가 ‘스탠 리’라는 인물에 대해 또다시 논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그의 캐치프레이즈인 ‘Nuff Said(충분히 말했어)’라는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Stan Lee Gave More Than He T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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