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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또는 서비스 사용자로서 우리는 어떤 콘텐츠를 선택해야 티켓값 또는 서비스 사용료와 우리의 시간을 투자한 만큼 만족할지 고민한다. 수많은 라이브러리 앞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이 내놓은 답은 소위 ‘기계픽’이다. 알고리듬이 개인의 감상 기록에 기반해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선택 행위는 “잘 될 만한 영화”에 자본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제작 결정 단계에서 더 중요하다.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는 지금까지는 기존 흥행 결과를 분석해 앞으로 만들 작품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프로젝트의 제작 허가를 내린다. 과거 기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행위는 경험에서 얻은 “직감”에 의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인간의 판단을 신뢰한 부분에선 기계에 많은 역할을 부여한다. 반대로 기계를 신봉한 쪽에선 인간의 선택을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단 서로를 보완하고 있는데, 어떤 쪽을 중시하는지는 트렌드에 따라 달라질 듯하다. 이 글에선 변화의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제작 결정: 빠르고 신속한 분석은 ‘기계’에게

출처: Cinelytic

워너브라더스는 지난 1월 9일,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시네리틱(Cinelytic)과 계약을 맺었다. 설립 4년차 시네리틱은 AI로 영화 프로젝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흥행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워너브라더스 외에 소니 픽쳐스, STX 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와도 손을 잡았다.

시네리틱의 종합 시스템은 영화 참여 배우의 흥행력과 영화 자체를 모두 분석한다. ‘탤런트 애널리틱스’는 미디어 타입, 장르, 주요 시장 등으로 배우의 흥행력을 종합한 ‘탤런트스코어’를 매긴다. ‘필름 애널리틱스’는 영화 구성 시나리오, 배급 시나리오, 지역 및 배급사별 분석을 제공한다.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흥행 성적 예측이다. 국내 시장, 해외시장 및 주요 지역의 박스오피스 성적뿐 아니라 디지털 및 물리 매체 홈 비디오, 무료/유료 TV 서비스 등의 모든 수익을 예측하고, 신뢰도에 따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시네리틱 시스템은 향후 워너 브라더스가 어떤 프로젝트에 제작 허가를 낼 때 이용된다. 다만 1억 달러쯤 벌어들일 초대형 흥행작을 예측하는 게 시스템의 역할은 아니다. 토바이어스 퀘이서 시네리틱 CEO는 시스템의 최대 장점을 “사람이 며칠 동안 할 일을 단 몇 초만에 하는” 시간 절약이라고 설명한다. 필름마켓처럼 여러 업체가 입찰하거나 긴박하게 구매 의사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분석 결과를 빠르게 보는 것 자체가 유용하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AI가 판단의 보조 역할만 한다지만, 의사결정권자는 신뢰할 만한 숫자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다양성은 배척되며, 흥행력 검증된 배우만 기용한 안전한 프로젝트만 제작될 수 있다. 인간이 AI의 숫자를 지나치게 믿고 따른다면, 예술과 도전 정신은 사라지고 AI의 분석대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추천: ‘인간픽’의 유용성 발견

Recommended by Humans: Insecure | 출처: HBO

HBO은 지난 8월 ‘Recommended by Human‘이라는 웹사이트를 론칭했다. HBO의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자가 직접 추천하는 영상이나, 트위터에서 HBO 콘텐츠를 추천하는 글을 전시한다. 인터랙티브 웹사이트를 유영하며 추천 포스트를 클릭하면, 글 또는 영상과 함께 “트레일러 보기”, “무료로 보기” 링크가 뜬다. “무료로 보기” 링크는 HBO에서 해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페이지로 바로 연결된다. “진짜 사람이 하는 진짜 추천”이라는, 다분히 넷플릭스를 겨냥한 듯한 오프닝 문구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추천 기능 자체는 매우 진지하다. 또한 추천 의견을 신선한 방식으로 확인하게 하고 이를 콘텐츠 감상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센스가 돋보인다.

시청 작품 추천부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결정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신비의 알고리듬”을 사용했던 넷플릭스는 작년 8월 ‘컬렉션(Collections)’이라는 추천 기능을 테스트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컬렉션은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팀의 전문가들이 직접 모은” 추천 목록이다. 테스트는 아이폰 넷플릭스 앱 사용자 일부만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넷플릭스는 기능을 전체 사용자에 확장할 계획은 아직은 없다고 밝혔다.

트위터의 넷플릭스 코미디 테마 계정

넷플릭스는 알고리듬이 놓치는 작품을 추천하는 데 소셜 미디어 계정을 적극 활용한다. 넷플릭스의 각 국가별 공식 계정이 여러 콘텐츠를 홍보하는 것과 별개로, 트위터 또는 인스타그램에는 주제별 계정이 있다. 흑인 탤런트들이 창작/등장하는 콘텐츠(@StrongBlackLead), 슈퍼히어로, 아니메 등 장르 프로그램(@NXonNetflix), 코미디(@NetflixIsAJoke), 가족 콘텐츠(@NetflixFamily) 등 전문적으로 다루는 주제를 통해 각 계정은 큐레이팅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면서도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

컴캐스트의 셋톱박스 X피니티 X1 (Xfinity X1)은 넷플릭스, 훌루 등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와 라이브 방송, 음악을 제공한다. 그만큼 많은 콘텐츠가 제공되기 때문에, 사용자는 원하는 것을 찾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큐레이션 서비스 ‘왓 투 왓치 (What to Watch)’는 그 점에서 유용하다. 사용자의 기분에 따라, 또는 특정 장르에 따라 큐레이팅한 작품을 제공하는데, 특정 서비스의 콘텐츠만 큐레이팅하는 제약이 없어 자유로운 선별이 가능하다.

 

Xfinity Hangouts Episode 2: Scott & the Cast of Queer Eye | 출처: Xfinity

X피니티는 큐레이터의 생생한 목소리를 넣기 위해 특정 배경과 관심사를 가진 직원을 고용해 특정 주제에 따른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에디터’들은 LGBTQ, 코믹스, 어린이 및 가족 콘텐츠 등 다양한 장르를 전문적으로 큐레이팅한다. 최근 X피니티는 에디터들을 플랫폼을 대표하는 셀럽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각 에디터는 ‘행아웃(Hangouts)’이라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배우 등 연예인을 만나 인터뷰나 게임을 한다. 에디터의 ‘셀럽 만들기’의 궁극적 목표는 이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소비자들이 추천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다.

왓챠 또한 큐레이션을 적극 활용한다. 최근 본 영화와 비슷한 영화, 사용자 평점이 높은 영화 등 전체 데이터에 기반한 큐레이션도 있지만, 왓챠가 공식 작성하거나 사용자가 직접 골라 만든 컬렉션도 있다. 소재나 감성뿐 아니라 ‘같은 번역가’, ‘소설 원작’, ‘비주얼이 돋보이는 영화’ 등 독특한 주제로 모은 목록도 있어서,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컬렉션은 왓챠 플레이의 홈 화면에 노출되어 사용자의 서비스 네비게이팅에 도움을 준다.

스트리밍 업체가 소위 ‘인간 큐레이션’에 눈을 돌리는 것은 알고리듬 기반의 ‘반응형(reactive)’ 추천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시청 기록과 평가에 기반해 사용자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는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취향이 바뀌거나 신체적, 정신적인 상태는 알 수 없다. 매번 똑같은 추천이 질린 사용자가 다른 것에 도전하고 싶거나, 지금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보고 싶을 땐 알고리즘의 추천은 유용하지 않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기존 업체들뿐 아니라 앞으로 론칭할 스트리밍 기업은 두 방식을 상호 보완하는 형태로 추천 서비스를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