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넷플릭스

일본의 유명 만화 [기생수]가 한국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영화 [부산행], 드라마 [방법], [지옥] 등 장르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괴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류용재 작가가 공동 각본을 맡았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한국으로 바꾸어 만든 것이 아니라, 만화의 세계관 안에서 만약 한국에 기생생물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해 확장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워낙 원작의 팬이 많은 작품이라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반응이 많았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드라마는 공개 이후 주말에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정수인(전소니)은 어느 날 고객으로 찾아온 한 남자와 작은 시비가 붙고, 그 남자가 쫓아와 칼부림을 하면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기생생물 유충이 수인을 노리고 달려드는데, 죽어가는 수인의 몸을 치료하느라 제대로 머리를 차지하고 몸을 지배하지 못하는 바람에 수인은 반은 기생수, 반은 인간인 변종이 되어 살아남는다. 폭력 조직원 설강우(구교환)는 맡은 임무를 실패하고 다른 조직원들에게 쫓기면서 추격을 피해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막냇동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프다던 누나는 멀쩡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이상해 보이자 그 뒤를 캐는데, 누나가 기생수가 되었단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수인과 그의 기생수 인격인 하이디를 만나고 그들과 협력한다. 한편 기생생물 전담반 ‘더 그레이’ 팀장 최준경(이정현)은 의문으로 남은 수인의 피습사건을 살펴보다가 그가 기생수라는 확신을 품고 이들의 뒤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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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과 같은 세계관 안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 독자적인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원작과 드라마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데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원작에서는 기생수의 신체 강탈과 이후의 살인사건들이 조용하고 의문스럽게 벌어지는 반면에, 드라마에서는 사람들로 붐비는 페스티벌 행사장에서 처음 인간의 몸을 빼앗은 기생수가 살육을 벌이는 사건을 일으키면서 정부가 일찍이 비밀리에 특수팀을 조직하고 기생수를 쫓는 부분이 흥미롭다. 기생수 역시 초반에는 주로 각자 활동하던 원작과는 달리, 조직 단위로 움직여야 함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겉으로는 교회를 내세워 동족끼리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눈에 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작품을 계속 보게 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전소니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확연히 달라지는 목소리 톤과 표정으로 인간 수인과 기생수 하이디를 넘나드는 모습을 탁월하게 소화한다. 구교환은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초현실적인 상황을 붕 뜨지 않도록 착 달라붙게 만든다. 액션씬이 특히 인상적인데, 강우가 조직원들에게 쫓기는 장면과 차를 타고 기생수에게서 도망치는 장면, 수인을 비롯한 기생수들이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매우 역동적으로 공들여 담아냈다는 인상을 준다. 서사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며 늘어지는 부분이 적고 점점 예상을 비껴가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멈출 새 없이 모든 에피소드를 몰아보게 한다. 마지막에는 원작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장면이 선물처럼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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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액션씬 같이 시각적인 부분에 러닝타임을 비중 있게 할애하면서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인 고찰들이 다소 얕게 등장하는 점이다. 기생수들을 몰아내기 위해 인간들이 괴물 같은 선택을 하고, 반대로 기생수들이 마치 인간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거나, 인간의 생존과 기생수의 생존을 비교하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어 아쉽다.

작은 아쉬움이 있지만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팬으로서도 만족스럽게 실사화된 드라마다. 이름만 들어도 대형 스포일러인 인물의 등장으로 마무리지었는데, 과연 후속 시즌이 나올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한국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쭉 달려가도 좋고, 원작의 이야기를 포함해 더 큰 스케일로 키우는 방향도 흥미진진하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기생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