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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Tomato92
written by. Charles Bramesco and Lisa Liebman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국의 한 가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 집에서 얌전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던 뱅크스 아이들은 기어코 가족의 소중한 로열 덜튼 그릇을 깨고 말았다. 아버지가 알면 노발대발할 게 분명했지만, 다행히도 탁월한 보모 메리 포핀스에게 그들을 구원할 계획이 있었다. 포핀스는 긍정적 기운을 주는 말을 읊조린 뒤, 요술을 부려 그릇 겉면에 그려진 화창한 오후로 이동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고치게끔 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메리 포핀스 리턴즈]를 만드는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디즈니의 호화로운 새 속편의 창의적인 부분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로열 덜튼에 그려진 환상적인 그림 세계로의 짧은 여행을 담는 건 기술적인 면에서 어마어마한 도전 과제였을 것이다. 감독 롭 마샬 역시 “지금껏 영화를 만들며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마샬은 벌쳐와 인터뷰에서 그 과정은 복잡하고 노동 집약적이었으며, 시각 효과 팀은 기존 지적 재산권을 다시 사용하는 선에서 깜짝 놀랄 정도의 독창적인 통로를 만들기 위해 실사, 2D 애니메이션, 3D 컴퓨터 렌더링을 모두 사용했다고 한다. 영화 자체에 대해 관객들이 뭐라고 비판하든지 그 시퀀스가 최신 과학 기술과 전통적 예술성이 눈부시게 결합한 장면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꿈을 구현하는 방법을 완벽히 통달하고 있었다.

 

시각 효과를 총괄했던 맷 존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순히 원작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새로우며, 현대적으로 만들길 바라는 기대가 꽤 있었다. 1960년 당시 (특수 효과의 대부였던) 피터 엘렌쇼는 메리 포핀스를 만드는데 (그 당시) 최신 과학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샬, 존슨 그리고 그들의 협력자는 리메이크와 관련된 걸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거쳐야 할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 리메이크 작품의 관객들은 익숙한 동시에 새롭고, 똑같은 동시에 다른 걸 바랐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몹시 고된 1년 반의 제작 과정을 거친 뒤, ‘모방을 위한 혁신’을 통해 의견차를 절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샬은 이후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렸을 시절에 왕성히 활동했던 사람들을 모았다. “픽사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훌륭한 애니메이터들을 모아 디즈니 스튜디오에 있는 ‘히페리온’이라는 훌륭한 건물에서 만났다. 참고로 이 히페리온은 가장 최초의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본떠 만든 건물이다. 나, 작가 존 델루카, 데이빗 매기, 작곡가 마크 샤이먼, 스콧 위트먼, 총괄 애니메이터 짐 카포비안코 외에 20명의 애니메이터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날은 내 인생에서 몇 없는 가장 흥분되고, 무서운 날이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을 때, 아티스트의 숫자는 100명에 달했다. 존슨은 작업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그림을 보드에 그렸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은퇴한 사람들이 현직에 돌아와 재현하는 걸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월트 디즈니가 다시 살아 스튜디오에 왔다면 플립 북과 종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며 매우 편안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패서디나의 저명한 켄 던컨 스튜디오의 지하까지 포함해 3층 이상의 공간을 모두 활용했다. 존슨이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안, 마샬 감독은 세트장에서 새로운 장면을 계속해서 촬영했다. 그 둘은 작동하는 부품이 아주 많은 거대하고 능률적인 기계처럼 일을 했다.

 

마샬 감독은 “우리가 촬영하는 동안 애니메이터들이 일할 수 있도록 촬영과 편집 작업을 동시에 한 뒤 결과물을 그들에게 바로 넘겼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무대 연출 베테랑인 그는 본인 커리어 사상 가장 기계를 많이 쓰는 작업을 하며 익숙지 않은 기술을 시도했다. 하루는 주연 린-마누엘 미란다에게 존재하지 않는 책 계단을 말로 형상화하려 노력했고, 아역 배우들에게는 테니스 공 달린 막대를 기린이라고 설득시켜 연기하도록 했다. 또한 무릎 패드를 한 채 동물인 척하는 배우들과는 존재와 의도에 대한 심각한 대화를 나눠야만 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샬 감독은 특히 로열 덜튼 그릇 시퀀스를 찍는 동안, 이 작업이 뮤지컬 넘버 장면을 만들어가는 방법과 약간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에밀리 블런트의 메리 포핀스가 네 명의 레퍼런스 펭귄 댄서들과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위해 업계 최고인 동시에 가장 키가 작은 댄서들을 물색했고, 몇 주에 걸쳐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 후 댄서들을 빼고 에밀리 혼자 펭귄이 있다고 상상하며 찍도록 했다. 다음에는 에밀리를 빼고 레퍼런스 댄서들만 따로 찍었고, 세 번째도 똑같이 촬영했다. 레퍼런스 댄서들을 따로 둔 덕에 애니메이터의 스텐실 작업이 용이했다.

 

존슨과 그의 ‘특수 효과 마법사’들은 실사 영화에 소위 ‘실버 에이지 시대 스타일’ 작업을 진행한 뒤 나중에 CG를 입혔다. 존슨과 마샬은 서로의 작업 현장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려 했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 정도 제작 규모의 영화에서 무의미한 짓이란 사치였기에 두 사람 모두 현장의 많은 전문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존슨은 CG 작업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린 스크린에서 배우들과 촬영한 다음, 대용 세트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찍었다. 예를 들어, 음악 극장이 전체 크기라고 치면 그걸 1 대 1 크기로 다시 만들어 배우가 CG가 입혀질 무언가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작업물을 몬트리올에 있는 시각 효과 회사에 보내면, 그들은 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한 뒤 그걸 격자판에 일일이 표시한다. 회사에서 프레임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핀 후 이미지에 흑백 격자판을 새기면 이를 다시 우리 사무실에 보낸다. 우리가 각각의 프레임을 프린트한 후 격자판을 기반으로 물체들의 방향을 파악하고 나면 전문가들의 미술 작업이 시작되고, 이것까지 끝나면 컴퓨터로 디지털화 및 스캔을 한다.”

 

제작진의 가장 큰 난관은 바로 기동성이었다. 1964년, 월트 디즈니의 [하우스 오브 마우스]는 실사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를 이동시킬 적절한 장비가 없어 애니메이션 요소의 입체감 부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마샬은 스테디캠을 사용하여 기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3차원 공간에서 로열 덜튼 만화의 편평함까지 구현할 수 있었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존슨은 메리 포핀스의 작업을 하며 지금껏 아티스트와 기술자로서 지켜왔던 모든 규칙을 내던졌다고 밝혔다. “우리는 실사 연기, 만화 펭귄, 컴퓨터로 만든 애니메이션 요소가 모두 아우러지는 생동감 있는 스타일을 창조했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를 조화하는 과정은 실로 복잡했고, 2D는 오직 2개의 면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3차원 공간과 통합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늘 주시해야 한다는 걸 뜻했다.”

 

마샬과 존슨은 로열 덜튼 장면을 위한 그들의 비전을 합치하게 위해 업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특히 마샬은 수상 소감 마지막에 미적 특질로 가득한 해당 장면을 생기 있게 구현하는데 도움을 준 안무가, 작곡가, 저작가, 애니메이터, 시각 효과팀, 미술 디자이너, 촬영 감독을 일일이 언급하며 그들의 공로를 드높였다. 영화의 매력적인 의상 방법론에 관한 글을 쓴다면 특집 기사 분량을 족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마샬은 영화 속 의상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의상 디자이너 샌디 파월은 실사 세상이 애니메이션 세상에 흡수되길 원했다. 로열 덜튼 시퀀스에 나오는 모든 의상은 애니메이션 세상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게끔 손으로 직접 그리고 윤곽을 잡은 것이다. 바닥까지 닿는 에밀리 모티머의 아름다운 치마에는 여러 개의 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 단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도록 그린 것이다. 또, 린-마누엘은 넥타이를 매고 단추를 잠근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셔츠에 직접 그린 것이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혹자는 로열 덜튼 시퀀스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인간의 독창성과 협력의 힘을 증명한 마천루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마샬은 감독으로서 그의 주된 장점 중 하나가 상대방의 탁월함을 알아보고, 이 두 가지 요소를 조직화에 능한 자신의 안목 하에 실제 작업으로 연계하는 큐레이터적 본능임을 인정했다.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 덕에 메리 포핀스 리턴즈 속 놀라운 공상 구현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걸 행하게 만든 힘은 시대를 초월한 것이다.

 

마샬은 작업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서로에게 배웠기 때문에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작업을 하다 애니메이터 덕에 새로운 걸 깨우쳤던 적이 있다. 린이 그의 지팡이에 펭귄을 올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애니메이터 중 한 명이 그에게 ‘펭귄의 무게는 지금 연기한 것보다 더 나가기 때문에, 더욱 그럴듯하게 연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린은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연기를 수정했고, 난 실사와 만화 모두 같은 세상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 제작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퀀스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 일했듯이, 내게 있어 뮤지컬이란 하나의 거대한 공동 작업물이다.”

 

 

This article originally appeared on Vulture: How Mary Poppins Returns Turned a Bowl Into a Fant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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