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라이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by. jacinta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첫 장편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한 이주영 감독의 <싱글라이더>는 최근 한국 영화의 흐름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영화이다. 그동안 오락적인 장르물로 무장하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함축한 영화가 흥행을 주도했던 것에 비해 <싱글라이더>는 장르적 쾌감도 없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는다. 한정된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의 감정선을 끈질기게 따라가며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독, 아픔의 정서를 건드린다. 개인의 삶에 집중한 영화는 먹먹해지는 진한 여운을 남기며 잠시나마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자체의 이야기는 새로울 게 없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남다르다. 기러기 아빠, 실직, 외도, 워킹 홀리데이 등 우리네 주변에서 익히 접해온 소재를 사건과 사건이 이어지는 전개가 아닌 시선에서 시선으로 흘려보낸다. 공허할지라도 늘 어딘가를 향한 시선은 인물이 느끼는 고통스러운 내면을 들춰내고 묘한 동질감을 형성한다. 영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느릿하지만 끈질기게, 시선이 머무는 것을 파고들며 마지막 어찌할 바 모를 감정을 끌어낸다. 살아남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미처 헤아리지 못 했던 마음을 돌보게 하는 영화인 것이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적인 모양새는 달라도 그들이 사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강재훈과 아내 수진, 젊은 여대생 지나는 그들이 속한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누가 봐도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가진 ‘강재훈’은 치열한 2030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그가 해왔던 노력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당장 느낄 수 있는 현재의 행복보다 미래를 위해 달려온 인물로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모습이다.
그가 호주에서 만난 ‘지나’는 기성세대보다 더 불투명한 미래에 놓인 젊은 세대이다. 꿈만 꾸며 살기엔 벅찬 그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름의 타협을 찾아 먼 이국땅으로 발길을 돌린다. 현실의 도피처도 되고 마음먹기에 따라 그런대로 돈도 모을 수 있는 그곳에서 나중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재훈과 지나가 스스로 희생한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때 ‘수진’의 현재는 이들과 다른 모습이다. 그녀에게 현재는 과거에 자신이 잊고 있던 자아를 찾게 해준 곳이다. 결혼과 육아에 꿈을 접었던 수진은 남편의 결정에 묵묵히 따라가는 인물에 불과했지만 치열하지 않아도 될 삶에 편입되자 잃어버렸던 자아를 되찾는다. 남편의 희생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선택한 목적에 치중했던 삶. 어떤 방식의 삶이 옳다는 전제는 없다. 목표를 향해 내달렸던 삶은 다가올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달콤한 채찍이 되기도, 점차 스스로를 갉아먹는 올가미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의 반전과 결말은 어떤 방식이 옳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치열함으로 포위된 삶에서 현재의 내가 잘 있는지 한 번쯤은 돌아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앞만 보고 쫓기에는 찰나의 순간은 언젠가 소중해질지 모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싱글라이더>는 모처럼 다른 결의 한국 영화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을 좀 더 당연히 여기는 사회 구조에서 스스로도 모른 척했던 개인의 삶을 포착했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개개인이 느낀 아픔과 불안의 정서를 전달한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을 해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시인 고은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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