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이 특별한 이유는 장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필연적인 비극을 훌륭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미지:20세기 폭스)

 

제목은 영화의 모든 것을 함축 시켜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울버린 트릴로지의 마지막 제목이 <울버린 : 더 라스트>, <울버린 : 마지막 이야기>, <최후의 울버린> 아닌 <로건>은 분명 적절하다. <로건>은 ‘울버린’이라는 슈퍼히어로의 모습 속에 들어있는 ‘로건’이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영화다. 울버린의 탄생부터 사랑까지 다루었던 트릴로지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힐링팩터 능력으로 불사에 가까웠던 울버린이 죽을 방법은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 즉 울버린에서 벗어나 그의 인간성의 상징인 ‘로건’이 되는 것이다. 슈퍼히어로에서 인간으로 가까워진 로건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감동을 하였을 것이다. 슈퍼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로건은 약해졌고 괴로워하고 지쳐가지만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향해가기 때문이다. 로건은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세심하게 표현한 수작이다.

 

다시 한번 가족 – 가족영화

로건에게 가족은 자비에 영재학교의 뮤턴트들이었다. <로건>의 배경에서는 많은 뮤턴트가 죽었고 학교는 폐쇄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로라의 등장으로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는데, 찰스와 로건과 로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딸의 포지션에 들어가 하나의 가족으로 구성된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철부지 같은 딸. 그리고 그들을 동시에 보살펴야 하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로건을 보게 된다. 대부분 히어로들은 원체 강력하기에 인간성이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로건은 다른 노선을 택했다. 인간보다 좀 더 강할 뿐인 늙은 울버린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그를 통해 가족의 따뜻함을 뽑아냈다. <로건>에서 울버린은 역대 울버린 중에 가장 약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그를 필자는 절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뒷모습은 마치 우리들의 아버지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미지:20세기 폭스)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 – 로드무비

어쩌면 그들은 언젠가 끝나게 될 가족놀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비극적으로 끝나게 될 가족놀이였다 하더라도 함께 길을 걸으며 그들은 나아갔고 성장했다. 로건과 로나의 여정은 마치 그리스의 서사시와 닮아있다. 그리스의 서사시들은 여정과 여정을 통해 깨닫게 되는 운명과 비극에 대해 말한다. <로건>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서 발현되는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점에서 서사시와 공통점을 갖는다. 불멸이었던 울버린이 필멸이 되었을 때, 그는 인간의 숙명을 따르게 되었다. 그 숙명은 자기 자신의 유전자뿐만 아니라 경험 혹은 지식 등을 자식에게 전달시키는 것. 이것은 필멸 자로서 우리가 불멸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며, 필멸 자인 로건이 따를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이 숙명의 끝은 죽음이다. 죽어야지만 자신의 불멸이 완성되는 것이다. 로건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라를 거부했지만 결국 그녀와 여정을 떠났고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로라는 로건과 여행을 하며 인간성을 전달받고 한층 성장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그저 울버린의 클론에 불과하고 짐승에 가까웠던 로라는 가족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이별과 눈물을 배우게 된다. 인간이 됨으로써 죽을 수밖에 없던 로건이 로라의 인간성을 깨워준 것이다. 필멸 자가 되었던 로건은 죽음을 통한 대물림으로 로라에게 각인되어 다시 불멸이 된 것이다. 필멸 자가 되어 가질 수밖에 없는 죽음을 통해 불멸이 된다는 아이러니. 이 아이러니를 통해 성장한 로라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본 필자는 <로건>이라는 히어로영화에서 바라지도 않던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미지:20세기 폭스)

 

돌아올 수 없는 대답 – 서부극

작중 호텔에서 찰스와 로라는 함께 고전 영화를 보게 된다. 찰스가 설명해주는 영화의 제목은 <셰인>이다. 셰인은 고전 서부극으로 1953년도, 조지 스티븐스의 명작이다. <셰인>의 내용은 간단하다. 셰인이라는 카우보이가 어느 마을로 찾아오고, 스타레트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가 악당들의 행패를 보고 참다 참다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떠난다는 것. 떠날 때 스타레트의 아들 죠이가 말하는 대사는 서부극의 길이 남을 명대사로 남아있다. “셰인! 돌아와요!” 로건에서 흑인가족의 집에 찾아간 시퀀스는 <셰인>에 대한 오마주로 느껴진다. 시퀀스 중에 나오는 카우보이들과의 전투장면도 서부극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시퀀스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극의 형태 역시 오마주의 색깔을 띤다. 하지만 찾아온 카우보이는 로건이 아니라 로라다. 언뜻 보기에 로라가 왔기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언제나 상황을 타개시켜 준 것은 로라였다. 그렇기에 <셰인>에서의 셰인의 마지막 대사를 로건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건은 죠이와 다르게 “셰인! 돌아와요!”를 외칠 수 없다. 로라가 말하는 셰인의 대사는 그 말 그대로 더는 무기가 필요 없다는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로건의 대답을 간절히 바라면서 말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며 뭉클한 감동을 준다.

 

‘슈퍼’히어로 영화 <로건>

히어로 영화라는 틀 속에 가족영화, 로드무비, 서부극까지 담아 입체적인 영화로 느껴지게 하는 <로건>. <로건>은 좋은 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양한 장르를 포섭할 수 있었다. 히어로영화로서도 훌륭한 액션, 구조,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로건>이 특별한 이유는 장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필연적인 비극을 훌륭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나온 잘 만든 히어로영화를 보았지만 느껴지는 기분은 무언가 모를 안타까움과 씁쓸함이었다. 가끔 바라지도 않던 느낌을 잔뜩 주는 영화들이 있는데 <로건>은 그런 부류의 영화다. 비극과 연민, 사랑과 가족. 안타까움과 씁쓸함, 그리고 애처로움을 느낄 수 있던 색다른 의미의 ‘슈퍼’히어로 영화 <로건>이었다.

 

(이미지:20세기 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