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상반기 해외 드라마

BEST 결산

 

by. Jacinta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드라마가 선보였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드라마 경쟁 덕분에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볼거리가 늘어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골라보는 재미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한 드라마 경쟁은 새로운 시즌을 선보이는 기존 드라마는 물론 색다른 소재와 내용의 신작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치열하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방송사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좋은 반응을 얻는데 실패한 많은 드라마들이 칼바람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반면 이와 상관없이 일찌감치 좋은 평가와 반응으로 시청률을 견인하며 다음 시즌이 확정된 드라마도 여전히 많다.

지금까지 방영된 드라마 중에서 베스트로 꼽히는 드라마를 소개해본다. (비평 매체 ‘메타크리틱’의 평가 수치 반영)

 

1. 성공적인 스핀오프 <굿 파이트> & 리바이벌 <트윈 픽스>

 

올해 초부터 인기 시리즈나 영화의 후광을 기대한 신작 드라마가 대거 선보였다. <굿 와이프>, <블랙리스트>의 스핀오프 <굿 파이트>와 <블랙리스트: 리뎀션>, NBC 인기 시리즈인 ‘시카고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시카고 저스티스>, 젊은 시절 브라이언 밀스를 그린 프리퀄 드라마 <테이큰>, 잭 바우어가 빠진 채 부활한 <24: 레거시>, 석호필이란 애칭을 얻으며 미드 인기를 견인했던 리바이벌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리턴즈>와 25년 만에 부활한 90년대 대표적인 컬트 드라마 <트윈 픽스>가 있다.

 

<이미지: CBS / 쇼타임>

 

그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굿 파이트>와 <트윈 픽스>이다. <굿 파이트>는 <굿 와이프>의 1년 뒤 이야기로 오리지널 멤버 ‘다이앤 록하트’를 주인공으로 한다. 은퇴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로펌에서 일하게 된 록하트와 사회 초년생 마야, 따뜻한 합리주의자 루카, 세 주인공의 이야기는 <굿 와이프>를 몰라도 즐기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로펌에서 열일하는 여성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 미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로 흥미를 더한다.

2006년 <인랜드 엠파이어> 이후 단편 작업만 해왔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팬들의 바람에 부응했다. 2년 전 <트윈 픽스> 부활이 결정된 후 감독직 하차 소식에 잠시 철렁하기도 했지만, 마크 프로스트와 함께 완전체로 돌아왔다. 이전보다 더 기괴한 컬트로 돌아와 매 에피소드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트윈 픽스>는 18개의 에피소드 중 이제 9번째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반환점을 돌았다. 25년 전 사라졌던 FBI 요원 데일 쿠퍼는 과연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컬트 요소가 강한 드라마는 스토리 중심의 전개 방식에서 벗어나 낯설 수 있으나 떡밥인지 모를 단서와 반가운 배우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2. 소설 원작 드라마 강세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는 원작의 탄탄한 플롯에 기대어 짜임새 있는 전개를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에 원작의 유명세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유독 소설 원작 드라마들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미지: hulu / HBO>

 

현재 미국 사회의 악몽을 반영한 드라마로 평가받는 hulu <핸드메이즈 테일>.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여성의 삶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음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가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세상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일 것이다. 뜨거운 반응은 공개된 지 얼마 안 되어 시즌 2 확정으로 이어졌다.

<빅 리틀 라이즈>는 리안 모리아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장 마크 발레 감독과 니콜 키드먼, 리즈 위더스푼, 쉐일린 우들리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던 드라마이다. 믿고 보는 HBO 드라마답게 아름다운 영상과 탄탄한 구성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반기 화제작으로 남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연출하며 살인사건의 전말을 궁금하게 하는 전개는 마지막 깜짝 반전으로 놀라게 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상반기 트위터에서 최다 언급된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Jay Asher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 10대 여학생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13가지 이유가 하나둘씩 밝혀지는 구성 방식을 취한 드라마는 소재가 주는 무거움을 피할 수 없지만 열렬한 반응을 이끌었다. 특히 10대들의 격한 공감을 얻으며 출연 배우들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당초 한 시즌만 계획됐던 드라마는 인기에 힘입어 다음 시즌까지 나오게 됐다. 시즌 2는 해나의 죽음 이후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예정이다.

어릴 적 추억의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이 실사화 됐다. 일단 애니메이션 속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온 캐스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889: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는 에이미베스 맥널티는 살아 움직이는 ‘빨간 머리 앤’, 그 자체이다. 놀라운 싱크로율은 캐스팅뿐 아니다. 드라마로 재현한 그린 케이블의 풍경과 소품 하나하나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빨간 머리 앤>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3. 믿고 보는 제작진 노아 할리 & 브라이언 풀러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르와 소재, 출연진보다 제작자나 각본가를 먼저 살펴보게 된다. 아무래도 참여하는 제작진이 누구냐에 따라 드라마의 완성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스턴 리걸>의 데이빗 E. 켈리나 <웨스트 윙>, <뉴스룸>의 아론 소킨처럼 이름만 들어도 해당 작품이 기대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근 개성 있는 작품으로 미드 애호가의 관심을 끄는 각본가 겸 제작자 두 사람의 최근작이 눈길을 끈다.

 

<이미지: FX>

 

영화는 마블, 드라마는 DC, 양대 코믹스는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지만 올해 들어 마블의 드라마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포문을 연 첫 번째 드라마는 프로페서 X의 아들, 데이비드 할러를 중심으로 한 뮤턴트의 이야기를 담은 FX <리전>이었다. <파고>의 제작자 겸 각본가 노아 할리의 손길로 탄생한 드라마는 지금까지 나왔던 코믹스 원작 드라마와 전혀 다르다. 설정만 가져온 독립된 드라마로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마치 데이비드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를 경험하는 듯한 미로 같은 구성은 시즌 1 마지막에 가서야 어느 정도 정리되며 다음 시즌의 기대감을 드높인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영국 남자 댄 스티븐스의 잘생김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코엔 형제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시작된 FX <파고>의 세 번째 시리즈가 2년 만에 공개됐다. 앤솔로지 형식으로 두 번째 시즌부터는 영화와 상관없는 사건이 등장한다. 얼마 전 종영한 시즌 3은 이완 맥그리거가 1인 2역을 맡으며 충격적인 비주얼 변신을 시도했으며, 철저히 가상의 사건으로 우표 소유권을 놓고 다투던 쌍둥이 형제의 비극을 담았다. 인기 미드 <본즈>의 제작자 겸 작가로 활동하던 노아 할리가 시즌 1부터 참여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고 두 개의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이미지: Starz>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시청률 부진으로 시즌 3을 끝으로 종영한 <한니발>의 제작자 겸 작가 브라이언 풀러가 다시 TV로 복귀했다. 닐 게이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Starz <아메리칸 갓>으로 그만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 것이다. 주인공 새도우 문이 고대의 신 미스터 웬즈데이와 엮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로드 트립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현대의 신과 전쟁을 하려는 고대의 신의 이야기를 한 시즌에 담기엔 역시 벅찼다. 일단 맛보기만 보여준 시즌 1은 강렬한 색감의 영상과 <한니발> 못지않은 센 장면으로 역시 브라이언 풀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4. 넷플릭스의 명암

넷플릭스는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더 크라운>과 <기묘한 이야기>로 작품성과 화제성을 모두 잡았던 넷플릭스의 행보는 분주하기만 하다. 지난 1월 공개된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을 시작으로 매달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과거 영화를 능가하는 완성도로 시즌 3까지 확정됐으며, 최근에는 미드 <캐슬>의 나단 필리온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이어가고 있다. 그중 동명 영화를 드라마로 옮긴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과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여자 레슬링 쇼를 그린 <글로우>의 선전이 눈에 띈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은 일부 사용자들의 IMDB 평점 테러에도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다음 시즌이 확정된 드라마로 캠퍼스를 배경으로 인종 차별 문제를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그린 점이 신선하다. 무명 배우의 레슬링쇼 도전기를 그린 <글로우>는 단순히 추억의 볼거리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짜릿한 통쾌함을 전달한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레슬링쇼는 이 드라마의 매력이 가장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기존 드라마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인도계 미국인 아지즈 안사리가 제작 및 각본, 주연을 맡은 <마스터 오브 넌> 시즌 2는 과거 이탈리아 영화의 향수를 추억하는 오마주로 시작해 넷플릭스 오리지널만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이민 2세 데브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생각거리를 던진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키미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역시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다음 시즌이 확정됐다.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작품은 대체로 호평받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아쉬움의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네 번째 마블 시리즈 <아이언 피스트>, ‘네스티 갤’의 성공 신화를 담은 <걸보스>, 최근 공개한 나오미 왓츠 주연의 심리 스릴러 <집시> 등이 있다. <걸보스>는 결국 한 시즌 만에 캔슬됐으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얻은 바즈 루어만 감독의 <겟 다운>과 워쇼스키 자매 감독의 <센스8>도 캔슬됐다. 다행히 <센스8>은 팬들의 열렬한 청원운동으로 파이널 에피소드 제작이 결정됐지만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시리즈의 캔슬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5. 명불허전

 

<이미지: HBO / FX>

 

이전 시즌보다 더 짜임새 있는 구성의 완성도로 돌아온 기존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시즌 2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HBO <레프트오버> 시즌 3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다. 인류의 2%가 사라져 버린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드라마는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과 상처, 고통을 그리며 삶과 종교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아쉽게도 시즌 3을 끝으로 종영됐다.

냉전의 기운이 여전한 80년대를 배경으로 스파이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FX <아메리칸즈>는 첩보물보다 부부로 살아가는 두 남녀를 통해 미국의 가치를 되물어보는 드라마이다. 여전히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다음 시즌도 확정되어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이미지: AMC>

 

역시 시즌이 더해갈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AMC <베터 콜 사울>. <브레이킹 배드> 스핀오프로 범죄 변호사 사울 굿맨이 타락하기 전 지미 맥길의 이야기이다. 시즌 3 들어서 지미 맥길이 본격적으로 타락해가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더욱 흥미로워졌다. 역시 다음 시즌이 확정됐다.

최근 방영 시작한 <프리처> 시즌 2는 DC 코믹스 산하 버티고(Vertigo)에서 발행하는 코믹스를 기반에 둔 드라마이다. 지난 시즌 주인공 제시의 동기 부여에 할애했던 드라마는 시즌 2 들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천국에서 탈출한 신을 찾기 위해 긴 여정에 나선 제시, 튤립, 캐시디의 이야기는 한층 강화된 B급 정서로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