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의 딸바보,

“아버지의 이름”으로 열연한 송강호

 

by. 레드써니

 

개봉 첫 주말에만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총알택시급 흥행 페달을 밟은 <택시운전사>는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미지: 쇼박스>

 

<택시운전사>의 이 같은 흥행 비결은 소시민의 관점에서 바라 본 현대사의 아픔을 공감 있게 그렸기 때문인데, 국민배우 송강호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포스터에서 그가 웃을수록 영화가 슬프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택시운전사>는 역사의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평범한 사람의 슬픔을 담고 있다. 송강호가 연기한 택시기사 ‘만수’는 딸과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돈을 많이 준다는 광주행을 자원한 인물이다. 그의 선택은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송강호의 연기에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 아빠 혹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역할이 꽤 있다. <복수는 나의 것>부터 최근 <택시운전사>까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열연했던 캐릭터가 많았다. 올해의 첫 천만 영화가 된 <택시운전사>의 성공을 축하하며, 송강호가 아버지로 등장했던 작품과 명장면을 돌아보기로 한다.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딸의 유괴범을 향한 처절한 복수 ‘동진’ <복수는 나의 것>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복수는 나의 것>은 송강호의 출연작 중 아버지의 역할이 가장 크게 부각된 첫 번째 작품이다. 송강호가 맡은 중소 기업체 사장 ‘동진’은 자신의 딸을 유괴한 이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유괴범들을 뒷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이해하면서도 딸을 죽였다는 사실은 결코 용서할 수 없기에 끔찍한 복수를 자행한다. 유괴범 ‘류’를 강가에 데려와 울먹이며 “너 착한 놈인 것 이해한다. 그래도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는 대사로 비극의 절정을 보여준다.

 

 

각하의 이발사 그리고 우리 아부지 ‘성한모’ <효자동 이발사>

 

<이미지: 쇼박스>

 

<살인의 추억> 오프닝에서 메뚜기를 잡았던 소년 ‘이재응’과 부자로 만난 작품이다. 송강호는 청와대가 있는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성한모’ 역을 맡아 나라에 충성하고 아들을 위해 눈물을 참는 부성애를 보여준다. 아들이 태어나는 과정이나 이름부터 순진하게 황당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던 그 시대의 아버지를 묘사했다. 모진 고문으로 걷지 못하는 아들을 대신해 자신의 머리를 자르며 울분을 뿜어내는 장면은 <효자동 이발사>의 명장면이다.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자식을 걱정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택시운전사>와 비슷하다.

 

 

“아빠! 살려줘!” 딸바보 ‘강두’ <괴물>

 

<이미지: 쇼박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송강호는 겉으로도 바보, 딸 ‘현서’ 앞에서는 더 바보가 되는 딸바보 ‘강두’를 연기했다.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던 강두에게 괴물이 나타나 현서를 납치하자 가족들과 함께 사투를 벌인다. “사망잔데요, 사망은 안 했어요”라고 말하는 강두를 통해 웃음을 주면서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다. <괴물>에서 강두의 딸 현서로 출연한 고아성과는 이후 <설국열차>에서 다시 한번 부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춰 봉준호 월드에서의 모녀 인연을 이어갔다.

 

 

조직 생활하는 아빠의 청춘 ‘강인구’ <우아한 세계>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연애의 목적> 한재림 감독의 작품으로 거친 조직 세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떳떳한 가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송강호는 조직 관리하랴, 가장 노릇 하랴, 바쁘게 살아가는 ‘강인구’를 연기했다. 밖에서는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는 조직의 권력자지만, 가족들을 다 떠나보낸 집에서는 당뇨를 걱정하는 기러기 아빠다. 그가 혼자 라면을 먹으며 우는 장면은 가슴 깊이 맴돈다. 조직 세계에 몸담고 있는 가장이라는 독특한 소재에 송강호의 명연기가 더해져 이 시대 가장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아들의 운명은 보지 못했던 관상가 아버지 ‘내경’ <관상>

 

<이미지: 쇼박스>

 

한재림 감독과 송강호가 다시 만난 작품이다. 송강호는 여기서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운명과 세상의 삼라만상을 예언하는 신이 내린 관상가 ‘내경’ 역을 맡았다. <관상>은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대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내경의 관상 능력을 그렸는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내경과 진형, 두 부자의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준다. 내경이 죽은 아들을 보고 목소리조차 못 내던 장면은 영화 속 어느 얼굴보다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모든 것이 끝나고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세상 풍파를 관조하는 내경의 모습은 애잔하고 씁쓸하다.

 

 

한 나라의 왕이자 세자의 아버지 ‘영조’ <사도>

 

<이미지: 쇼박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사도>. 송강호는 <사도>에서 한 나라의 왕이자 아버지인 ‘영조’를 맡아 기대와 달리 엇나가는 아들 ‘세자’에게 엄격하고 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아들을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냉정한 아버지였지만, 모든 사건이 끝난 뒤 그럴 수밖에 없던 마음을 애잔하게 그려내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