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보다 더 고운 미모로

파격 변신한 남자 배우들

 

by, Jacinta

 

때때로 배우들은 체중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 이상의 외형적 변화를 시도한다. 그동안 많은 배우들이 작품을 위해 남장여자 혹은 여장남자로 깜짝 변신했다. 평소 이미지와 상반되는 모습으로 변신한 배우들의 연기는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선 굵은 남자 배우의 여장 연기는 여자 배우들의 남장연기보다 더 큰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 신선한 충격 때문일까, 남자 배우들의 여장 연기는 주로 코미디 영화에 활용될 때가 많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 <찜>의 안재욱, <미스터 주부퀴즈왕>의 한석규, <박수무당>의 박신양 등 코미디 영화에서 배우들은 좀 더 편하게 여장 연기에 도전했다. 물론 <패왕별희>, <크라잉게임>, <왕의 남자> 등 재미 이상의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남자 배우들의 여장 연기는 흥미를 유발하는 설정으로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인 편견의 벽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21세기에 들어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이전보다 솔직하게 성 정체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장남자 캐릭터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순히 웃기기 위해 여장을 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삶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선보인 영화 중에서 배우들의 혼신의 열연으로 흥미 이상의 진한 여운을 주는 영화 속 여장남자를 소개한다.

 

 

로렌스 애니웨이 – 멜빌 푸포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로렌스 애니웨이>의 주인공 로렌스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로 구분하는 정통적인 이분법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남은 인생을 여자로 살고 싶어 한다. 오랜 연인 프레드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고백하고,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다. 청천벽력 같은 고백에도 두 연인은 사랑의 힘으로 버텨내지만, 로렌스에게 점점 불리해지는 현실 앞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고 만다.

전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 <하트 비트>에서 본인이 직접 동성애자 캐릭터를 소화했던 자비에 돌란은 한층 더 복잡한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 로렌스란 캐릭터를 위해 프랑스의 연기파 배우 멜비 푸포를 캐스팅했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해 국내에서는 덜 알려졌지만, 에릭 로메르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로 마니아 팬들을 확보한 배우다. 부드럽고 지적인 외모가 근사한 멜비 푸포는 섬세한 연기로 절망과 혼란에 빠진 로렌스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손끝만으로도 전해지는 로렌스의 고통을 실감나게 연기한 그가 있기에 영화의 여운이 더 길지 않을까.

 

 

쇼를 사랑한 남자 – 맷 데이먼, 마이클 더글라스

 

<이미지: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화려한 쇼맨십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의 비밀스러운 삶을 그린 영화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리버라치는 클래식 요소가 가미된 팝적인 음악 스타일로 대중을 사로잡은 피아니스트다. 1950년대 TV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군림했지만 무대 밖의 모습은 철저히 숨겼다. 리버라치가 자신의 은밀한 모습을 보여준 이는 수의사의 꿈을 접고 그의 연인이 된 청년 스콧 토슨이다. 1970년대 후반에 만나 연인이 된 두 사람의 사랑은 화려한 무대와 전혀 달랐다. 리버라치는 자신과 닮길 원하며 스콧에게 성형수술을 권하고, 양자로 입양하려고도 했다.

화려한 스타 리버라치와 숨겨진 연인 스콧을 연기한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의 파격적인 변신은 이들의 독특한 사랑의 행보에 빠져들게 한다. 오랜 암 투병 후 컴백한 마이클 더글러스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려고 애쓰며 기이한 욕망과 모순에 쌓인 리버라치를 환상적으로 재현하고, 그의 파트너가 된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의 제이스 본을 완전히 잊게 한다.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은 기본, 말투마저 평소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연기 앙상블이 빛난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자레드 레토

 

<이미지: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루믹스미디어>

 

1992년에 사망한 에이즈 환자 론 우드루프의 삶에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앞으로 3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에이즈 환자 론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레이언과 에이즈 환자를 위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밀수한 약을 판매한다. 동성애를 혐오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마초남 론과 대비되는 레이언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외모에 관심이 많은 트랜스젠더다.

깡마른 몸의 에이즈 환자를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 혹독하게 체중을 감량한 매튜 매커너히와 자레드 레토. 특히 여장남자를 연기해야 했던 자레드 레토는 역할을 위해 눈썹을 밀고 전신 제모까지 했다. 작품마다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자레드 레토는 앙상하게 마른 몸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론을 연기한 매튜 매커너히와 함께 아카데미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동성애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대에 동성애자의 아픔과 에이즈 환자의 고통을 드러낸 자레드 레토의 연기 덕분에 절박함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이힐 – 차승원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지욱은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남성의 외형을 가진 형사다. 탄탄한 말근육이 돋보이는 큰 키에 짙은 눈썹, 조각처럼 각진 턱선, 중저음의 목소리는 남성 그 자체다. 보기만 해도 매력적인 남성미 폭발하는 지욱에겐 남모를 비밀이 있는데, 거친 형사 일을 접고 남은 인생을 여자로 사는 것이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은밀한 꿈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도 해왔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그를 붙잡는다.

모델 출신의 우월한 기럭지, 매력적인 외모로 보기만 해도 멋진 차승원이 여장 연기에 도전했다. 이전에도 여장 연기를 한 배우는 있지만 단지 극의 재미를 위한 일시적인 거였다면, 차승원의 여장 연기는 내면까지 여자가 되어야 하는 연기다. 여성성을 부인하기 위해 일부러 거친 형사의 삶을 선택했지만, 결국 뿌리칠 수 없는 욕망을 위해 새로운 삶을 선택하려는 지욱. 어느 때보다 섬세한 감성 연기를 선보인 차승원의 노력 덕분에 속눈썹을 붙이고 화장을 하고,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가발을 쓰고 조심스럽게 다니는 지욱의 모습은 전혀 우습지 않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세상의 편견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던 지욱의 처연한 슬픔을 전한다.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 로망 뒤리스

 

<이미지: 찬란>

 

아직 엄마의 품이 절실한 아기를 두고 먼저 떠난 로라, 상심에 빠진 데이빗은 그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절친 클레어가 찾아와 데이빗의 비밀을 알게 된다. 바로 죽은 아내의 옷을 입은 모습을 들킨 것이다. 그는 이성애자이면서 화장을 하고 여성의 옷을 입고 싶어 하는 복장 도착증이 있다. 그의 비밀은 아내도 알고 있던 사실로 클레어와 데이빗 사이에 잠시 껄끄러운 기류가 흐르기도 하지만 점차 묘한 유대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로망 뒤리스가 여장남자라는 파격 변신에 도전했다. 우수에 찬 눈빛과 웃을 때 잡히는 주름이 매력적인 그는 평소의 지적인 분위기 대신 비밀스러운 욕망에 사로잡힌 데이빗으로 변신했다.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고 아내의 옷을 입고 버지니아란 이름으로 클레어와 외출에 나선 그의 모습은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풍긴다. 로망 뒤리스 역시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촬영 전 체중을 감량했으며,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섹슈얼리티를 성찰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니쉬 걸 – 에디 레드메인

 

<이미지: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에이나르와 게르다는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화가 부부다. 어느 날 에이나르는 모델 울라를 대신해 게르다의 그림 모델로 나선다. 고운 드레스를 걸친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에이나르는 모호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이어 아내의 장난기 어린 제안으로 여장을 하고 릴리 엘베라는 가명으로 무도회에 참석한 에이나르, 이를 계기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확신하게 되고 은밀한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1920년대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에이나르를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살피는 게르다,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이 이어진다.

루게릭병에 걸려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천재를 연기했던 에디 레드메인의 도전은 끝이 없다.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덴마크 화가의 실화를 옮긴 영화에서 에디는 역대급 여장 연기를 선보인다. 게르다의 요청으로 모델 대역에 나선 순간의 미묘한 떨림을 섬세한 몸동작과 눈빛으로 숨 막히게 재현하더니 어느 순간 풍부한 감성의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2년 연속 아카데미 지명으로 이어졌다. 비록 수상은 놓쳤지만 촬영 전 오랜 기간, 여성의 신체적인 특징을 연구했다는 에디의 노력과 집념은 극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