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고단한 청춘을 위로하는 사랑스러운 ‘미소’가 찾아왔다. 영화 [소공녀]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라는 말로 거대 도시 서울을 유랑하는 자발적 홈리스 미소의 이야기다.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에 이은 광화문시네마의 네 번째 작품 [소공녀]는 그동안 청춘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워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1억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착안했다는 이 영화의 매력을 살펴본다.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미소는 치열하게 분투하는 청춘도, 그렇다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청춘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강요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삶의 철학을 고수한다. 바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삶이다. 보통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려놓으며 당연하게 행복을 포기하는 동안, 미소는 작은 행복을 자신의 일상에서 지워내지 않는다. 집도 없고 정규직도 아닌 미소는 겉보기엔 패배자나 다름없지만, 자신의 특기를 살린 직업을 갖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행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먼발치에서도 사랑스러움이 전해지는 미소는 마음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고편부터 예사롭지 않은 귀여움을 발산했던 영화는 미소를 힘겹게 하는 곤궁한 현실에도 차가운 냉소로 가라앉지 않는다. 바로 미소가 갖는 전례 없는 성격에 기인한다. 미소는 언제 어디서나 예의 바른 미소와 성실함을 잃지 않고, 이후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애인 한솔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이 꿈보다 현실을 택하며 타협할 때, 미소는 소박한 행복을 놓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킨다. 미소의 선택은 텍스트로만 보면 무모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부터 단단하게 형성된 태도는 극단적일 정도로 비현실적인 선택과 행보를 수긍하게 한다. 무엇보다 미소가 처한 현실이 하루아침에 뒤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오히려 덤덤하게 친구들을 찾아 나선 미소의 여정에 호기심이 든다.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한 번쯤은 썰을 풀었을 법한데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풀어내지 않는다. 누가 봐도 확연한 비주류의 삶을 택한 미소와 사람들의 관계를 찬찬히 훑어가며 보여줄 뿐이다. 미소가 술과 담배를 위해 집을 포기하고 캐리어를 끌고 친구들의 집을 떠돌 때, 단 한 번도 가방 속의 사연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과거를 끌어와 미소의 현재를 설명하는 대신, 미소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각박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비춘다. 연애와 결혼, 출산, 주택마련, 성공이라는 2030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구구절절 사연 풀이보다 비중 있게 드러내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음에도 이야기의 속도감이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소라는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배우 이솜은 인생 연기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미소가 되어 웃픈 웃음을 끌어낸다. 하룻밤 재워 달라는 당혹스러운 부탁이 민폐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미소에게 사랑스러운 품위를 부여한 이솜의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애인 한솔을 연기한 안재홍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도 현실남친으로 완벽하게 분한다. 본인은 비록 현실과 타협할 망정, 연인의 삶에 훼방을 놓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데이트에 미안한 마음만 가지는데, 그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현실 캐릭터를 연기한 조연 배우들과 뜻밖의 지점에서 등장하는 카메오도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 중 하나다.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은 분명 잔혹하다. 미소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열심히 일해도 큰 보상을 받을 수 없는 데다, 그 자리마저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다. 미소를 비난한 어느 선배처럼, 미소의 태도는 치열한 게 당연한 도시의 삶에서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궁핍한 현실에도 소소한 행복을 지키는 낙천적인 태도에 응원의 마음이 들면서도, 꿈 대신 작은 만족을 추구하게 된 퍽퍽한 현실에 서글픈 감정이 교차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씁쓸한 뒷맛에도 영화 내내 가득했던 사랑스러운 엉뚱함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지독한 현실에 ‘미소’라는 판타지를 선사한 [소공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