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부슬부슬 봄비 내리는 계절이 다가왔다. 추위가 지나가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인물들의 이야기보다 그들 주변의 풍경에 더 시선이 간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이 이제 근질근질한가 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수천 년의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풍광이 공존하는 이탈리아는 어떨까. 관광객이 많다고 해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뺏기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소개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

–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 크레마(Crema)

 

이미지: 소니 픽쳐스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첫사랑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국내 관객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과 그의 전부가 되고 싶었던 남자의 엇갈리는 감정의 순간을 섬세한 연출로 담아내 전 세계를 매료시킨 영화다. 배우들의 환상적인 호흡과 서정적인 음악, 그리고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매혹적인 감정의 세계로 인도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두 인물이 서로에게 향하는 감정을 더욱 입체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감독 본인이 거주한 경험이 있어 지역적 특색을 잘 아는 이탈리아 크레마로 촬영지를 선택했다. 엘리오의 집과 고대 유물이 발견된 호수, 이후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곳은 모두 크레마에서 가까운 모스카차노와 가르다호(Lake Garda), 베르가모에서 촬영했다. 매 순간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곳은 실제로는 또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2001)

–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

 

이미지: 하준사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소설을 가슴 벅찬 사랑으로 스크린에 재현해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다. 이젠 멜로 영화의 고전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지난 2016년 4월, 13년 만의 재개봉으로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다시 두근거리는 떨림을 선사했다.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이 엮어가는 두 남녀의 10년에 걸친 운명적 만남은 낭만적인 정취를 간직한 피렌체의 감성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특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특급 관광명소로 탄생시키며,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그곳을 찾게 했다.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될 만큼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중 두오모 성당은 피렌체의 대표적인 명소로 공사 기간만 150년이 넘게 걸렸다. 두오모 성당 내부로 들어서 피렌체 시내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463계단을 올라야 한다. 어둡고 좁은 계단을 끝까지 올라서 유서 깊은 도시를 보고 있으면, 나도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싶어 질지 모른다.

 

 

 

애프터 미드나잇 (2004)

– 이탈리아 토리노(Turin)

 

이미지: (주)인디스토리

 

차량 절도범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야간 경비원 세 사람의 특별한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초창기 무성영화부터 누벨바그까지, 곳곳에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게 하는 클래식한 감성이 스며들어 세 남녀의 관계에 특별함을 더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르티노가 영화박물관에서 야간 경비 근무를 시작하는 밤 12시부터 시작된다. 마르티노는 박물관에서 일하며 오래된 영화를 보고, 출근 전 아만다가 일하는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는 게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어느 날 그가 일하는 박물관에서 경찰에 쫓기는 아만다가 숨어들면서 특별하고 찬란한 새로운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이 된 토리노는 2006년 동계 올림픽과 페라리, 피아트와 같은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바로크 양식이 꽃피우던 17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탈리아 최초의 수도로 선택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는 영화박물관은 실제 있는 곳이다.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시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관이 펼쳐지는 그곳은 토리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애프터 미드나잇]은 청춘 남녀의 풋풋한 로맨스를 통해 영화박물관의 매력을 곳곳에서 펼쳐 보인다.

 

 

 

아이 엠 러브 (2009)

– 이탈리아 밀라노(Milan)

 

이미지: Mikado Film

 

이탈리아 출신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는 이탈리아를 주로 배경으로 한다. 2009년작 [아이 엠 러브]는 지금의 중성적인 신비로운 매력과 사뭇 다른 귀족적인 우아함으로 가득한 틸다 스윈튼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고향도 이름도 모두 버린 중년 여성 엠마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서정적인 매력이 주를 이루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달리 [아이 엠 러브]는 때때로 우아한 화보 같은 장면이 연이어 펼쳐진다.

상류층 여성의 요동치는 삶을 담아내기 위해 풍부한 문화유산과 패션산업으로 유명한 밀라노를 선택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에 자리 잡은 엠마 가문의 저택은 겉보기에도 웅장함과 엄숙함을 풍긴다. 화려한 도시에 고립된 듯한 적막감마저 풍기며, 후에 폭풍처럼 다가올 엠마의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엠마가 사는 저택이 심리적인 위압감을 담아낸다면, 명품 쇼핑백을 들고 배회하는 도시의 거리와 도심에서 벗어난 숲에 위치한 안토니오의 식당은 엠마의 변화하는 감정을 대변한다. 이미 잘 알려진 명소가 아닌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 속 공간은 밀라노의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레이트 뷰티 (20013)

– 이탈리아 로마(Rome)

 

이미지: 영화사 진진

 

이탈리아를 매혹적으로 표현한 영화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주인공 젭은 이제 막 65세 생일을 보낸 로마 최고의 셀럽이자 40년 동안 단 한 권의 글을 쓰지 못한 작가다. 어느 날 그는 첫사랑의 죽음을 전해 들은 뒤, 지난 시간으로의 여정에 나선다. 다소 불친절한 내러티브에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화려한 미장센으로 탄생한 이탈리아의 풍경은 경이로운 전율을 안긴다.

미카엘 천사가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는 ‘천사의 성’, 노천카페가 즐비한 ‘베네토 거리’, 과거 목욕탕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카라칼라 목욕탕’, 트레비 분수와 다른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파올라 분수’, 로마파를 대표하는 건축가 브라만테가 설계한 ‘템피에토(성당)’, 17세기 바로크 양식을 감상할 수 있는 ‘산타그네제 인 아고네 성당,’ 1540년도에 지어져 지금은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스파다 미술관’, 현재까지도 토목공사의 대단한 업적으로 남은 ‘수로교’, 영화를 위해 특별히 열쇠 구멍 내부를 공개한 ‘십자군 기사단장의 별장’, 그리고 말이 필요 없는 ‘콜로세움’까지. 우리에겐 특별한 관광명소가 영화 속에서는 로마의 일상으로 그려진다.

 

 

 

투어리스트 (2010)

– 이탈리아 베니스(Venice)

 

이미지: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에 못 미친 완성도로 아쉬움을 남긴 영화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특수요원으로 나선 졸리의 매력은 영화의 주무대가 된 베니스의 절경에 밀리지 않는다. 다만, 겉멋에 빠졌는지 허술하고 밋밋한 전개에 졸리와 전혀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지 못한 조니 뎁의 연기는 킬링타임 역할을 하기에도 벅차 보인다. 그래도 성공한 게 있다면, 원래도 낭만적인 물의 도시 베니스를 질리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이 될 것 같은 베니스는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운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보트를 타고 수로 여기저기를 누비는 것만으로도 관광의 소임을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프랭크와 엘리제도 베니스에 도착해 수상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귀족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다니엘리 호텔이다. 프랭크가 조직에 쫓겼던 산 마르코 광장, 수상 추격전이 펼쳐졌던 아르세날레 등 베니스 곳곳을 실컷 보고 나면,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적금을 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