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매달 수많은 작품이 상영관에 걸리지만, 관객의 관심을 끄는 작품은 한정되어 있다. 개봉 전부터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는 상업영화에 관심이 쏠리면서, 소규모로 개봉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발길이 덜 미치기 마련이다. 관객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상영관 확보도 만만치 않아 ‘다양성 영화’로 불리는 많은 영화들이 훌륭한 완성도에도 반짝 사라져 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며, 2018년 개봉작 중 관객수가 아쉬웠던 영화를 소개한다. (*최근 개봉작 제외, 6/21 영진위 기준)

 

 

 

1. 에델과 어니스트 – 5월 10일 개봉 (9,882명)

 

이미지: 영화사 진진

 

동화책에서 보던 아날로그 감성의 정감 어린 그림에 절로 시선이 간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스틸만 봐도 몽글몽글한 감성이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림뿐만 아니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동화 같은 실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다. ‘눈사람 아저씨’를 쓴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거라고 한다. 그것도 9년이란 긴 시간 동안 정성 들여 동화책에서 튀어나온듯한 질감으로 4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한 부부와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평범한 부부가 묵묵히 살아가는 인생은 2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격동의 세월 속에서 보다 굳건하게 보편적인 인생의 가치를 전하기 충분하다.

 

 

2. 보리 vs 매켄로 – 5월 10일 개봉 (9,215명)

 

이미지: ㈜엣나인필름

 

[보리 vs 매켄로]는 스포츠 영화이자 밀도 있게 완성된 심리 드라마다. 테니스 역사상 치열했던 세기의 대결을 선택해 코트에 선 두 선수의 내면을 집중해서 파고든다. 두 선수를 상징하는 얼음과 불의 이미지는 칼날처럼 정교한 편집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되며 치열한 내적 분투는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미 그날의 경기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두 선수가 겪는 혼란과 갈등을 퍼즐 조각을 맞추듯 대조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며 숨 막히는 긴장으로 스크린을 지배한다. 배우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샤이아 라보프는 거칠게 동요하는 매켄로로 분해 불안과 고독, 혼돈이 만들어낸 고통에 빠진 보리의 분투를 보다 돋보이게 한다.

 

 

3. 콜럼버스 – 4월 19일 개봉 (8,068명)

 

이미지: ㈜영화사 오원

 

평소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극강의 눈호강을 선사할 [콜럼버스]는 단순한 스토리에도 마음을 빼앗는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있는 콜럼버스로 오게 된 진과 집을 벗어날 수 없어 꿈을 망설이는 케이시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두 사람의 교감을 콜럼버스 곳곳의 유명 건축물과 함께 그려낸다. 그런데 그 방식이 신선하다.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라 불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탄성이 나올 법한 공간의 매력을 애써 부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자연과 건축물, 또 그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의 조화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간결한 여백과 함께 완성한 균형 감각은 절로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4. 판타스틱 우먼 – 4월 19일 개봉 (7,432명)

 

이미지: 찬란, 아이 엠

 

참담한 비극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낮에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밤이면 무대에 오르는 마리나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연인을 잃고,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세상의 냉대에 온몸으로 부딪히고 맞서는 이야기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거칠고 냉랭한 현실에 내몰린 마리나가 온전히 그 자신으로 서기까지 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 다니엘라 베가가 주연을 맡아 진정성 있는 연기로 깊은 여운을 안긴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마리나의 용기 있는 여정은 전 세계에서 찬사를 받았다.

 

 

5.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3월 29일 개봉 (6,779명)

 

모리미 도미히코의 판타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독창적인 스타일로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유아사 마사아키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받은 원작의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았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모든 걸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천진난만한 매력의 검은 머리 아가씨와 몰래 짝사랑하는 소심한 선배가 서로를 알아보기까지 여정을 환상적인 하룻밤 소동극으로 펼쳐 보인다. 간결한 작화에도 마치 팝아트를 보는듯한 강렬한 색감과 변화무쌍한 애니메이션 기법이 어우러져 시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판타지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작심하고 밀어붙인 B급 정서와 유머는 영화의 독특한 개성을 더욱 공고히 하며 유쾌한 여운을 안긴다.

 

 

 

6. 한낮의 유성 – 4월 19일 개봉 (5,881명)

 

이미지: ㈜스마일이엔티

 

일본은 발랄한 감성을 품은 청춘 로맨스를 유독 잘 만들어낸다. 순정만화의 바이블로 불리는 동명 만화를 실사로 옮긴 [한낮의 유성]은 제목처럼 기분 좋은 싱그러움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영화다. 때론 유치하고 오글거리긴 해도 선남선녀 배우들의 삼각 로맨스는 사랑의 결말이 어디로 향할지 두근거리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개연성은 다소 놓을 필요가 있다. 부모님이 갑자기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도쿄에 살게 된 스즈메가 백마 탄 왕자나 다름없는 교사 시시오와 츤데레 동급생 마무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삼각관계의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마음을 마구 간지럽히는 순정만화의 감성은 반갑다.

 

 

 

 

7. 청년 마르크스 – 5월 17일 개봉 (5,828명)

 

이미지: 와이드 릴리즈㈜

 

마르크스의 사상은 알아도 그의 사상이 나오기까지 전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 마르크스의 청년 시절을 비추며 공산주의 이념이 태동한 배경을 밝혀낸다.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념을 설파하기보다 접근이 쉬운 연대기적 구성을 택해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카를 마르크스를 보다 가깝게 느끼게 한다. 공산주의 사상이 도래하는 과정을 광범위하게 훑고 지나가긴 해도 영화 속 사상가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다면, 핵심을 놓치지 않는 영화는 보다 만족감을 안겨줄 것이다. 행여나 영화 속 인물들을 잘 모른다 해도 후반부에 이르러,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외치는 장면을 보고 나면, 그들의 사상이 담긴 저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8. 120 BPM – 3월 15일 개봉 (5,069명)

 

이미지: ㈜엣나인필름

 

에이즈 환자의 권익을 위해 나선 ‘액트업파리’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지금보다 더 단단한 편견과 오해로 둘러싸였던 1989년, 무책임한 태도로 방관하는 정부와 이익만 취하려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어떻게 치열하게 맞서고 투쟁했는지 내밀한 삶으로 들어가 강렬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경계 밖에 내몰리고 죽음과 가까운 이들의 삶을 마치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듯 찬란하게 비춘다. 핑거 스냅으로 기억되는 활동가들의 열띤 투쟁과 나란히 하는 션과 나탄의 거침없는 감정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감각적인 하우스 음악처럼 고통에 잠식당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로 느껴진다.

 

 

 

9. 언프리티 소셜 스타 – 2월 22일 개봉 (3,849명)

 

이미지: ㈜디스테이션

 

SNS는 인생의 낭비인가, 전부인가? [언프리티 소셜 스타]는 인스타그램 중독자 잉그리드가 소셜 스타 테일러의 삶을 좇는 이야기를 그리며 SNS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꼬는 블랙코미디다. SNS 중독자의 문제적 행동은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뼈아픈 공감대가 형성된다. 잉그리드의 행동은 극단적이긴 해도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 SNS 세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 아닐까. 오브리 플라자, 엘리자베스 올슨의 치명적인 연기에 코미디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장르적 쾌감을 안기며 중독된 현실을 뼈아프게 통찰한다.

 

 

 

10. 굿타임 – 1월 4일 개봉 (3,246명)

 

이미지: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촌각을 다투는 광란의 하룻밤이 폭주기관차처럼 난폭하게 질주한다. 창백 미남 로버트 패틴슨은 온데간데없고 불안함에 요동치며 흔들리는 비루한 청춘 코니만 있을 뿐이다. 뉴욕 퀸즈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인 코니는 지적 장애 심리 치료를 받는 동생 닉을 낚아채 은행 강도 파트너로 삼지만, 형제의 순진한 바람은 닉이 체포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예측불허 스토리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유머는 일촉즉발 긴장을 보다 탄탄하게 조성하고, 강렬한 색감의 영상과 차가운 금속성의 사운드는 불안과 혼돈을 지피며 밑바닥 청춘의 어긋난 하룻밤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