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유하

 

 

흔히 영화에는 스토리를 보다 흥미롭게 진행시켜주는 감초 캐릭터가 존재한다. 이들은 다소 어두울 수 있는 분위기를 코믹하게 밝혀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주된 스토리와는 별개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강탈하며 영화의 흥행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어마무시한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특히 로맨스 영화에선 두 주인공의 사랑을 엮어주기 위해 알게 모르게 큐피트 역할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들이 바로 그 영화의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다. 언제 보아도 대리 설렘을 가져다주는 로맨스 영화에서 이번만큼은 훌륭한 조력자로 활약하는 인물들에게 집중해보자.

 

 

 

흥겨운 조력자, 촛대 르미에 / 미녀와 야수 (2017)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미를 한 송이 꺾어 챙겼다는 이유로 아버지(케빈 클라인)를 평생 감옥에 가둬두려는 야수(댄 스티븐스)에게 대신 붙잡히길 택한 벨(엠마 왓슨)이 저녁 식사 제안을 거절하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그럼에도 야수는 거절당함에 분통을 터뜨리며 벨에게 화를 낼 뿐이다. 야수와 밥을 같이 먹느니 차라리 굶겠다며 탈출 의지만을 불태우는 벨에게 다가온 이들은 저주를 받아 가구로 변해버려 성안에 머무는 이들이었으니, 그중에서도 식사를 대접하겠다면서 화려한 쇼를 선보이는 건 촛대 르미에(이완 맥그리거)다. ‘우리의 손님이 되어주세요. 손님이 되어주세요. 저희 서비스는 최고랍니다. 냅킨을 두르고 기다리시면 만찬이 시작됩니다.’ 오늘의 요리가 무엇인지를 노래하며 한 편의 뮤지컬을 보여주듯 움직이는 그의 무대 장악력은 예사롭지가 않다. 음식에 손을 대기도 전에 바쁘게 돌아가는 식탁과 가구들의 화음으로 가득찬 다이닝 룸에서 ‘푸딩?’ 을 외치는 르미에로 인해 벨은 활짝 미소를 지어버릴 수밖에 없다.

 

 

어쩌다 조력자, 미용실 손님들 / 그녀를 믿지 마세요 (2004)

 

이미지: 시네마 서비스

 

그녀들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좁디좁은 용강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입담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가방을 되찾으러 무작정 희철(강동원)이 산다던 용강 마을에 발을 디딘 영주(김하늘)가 희철이란 이를 아냐 그것 하나 물어봤을 뿐인데, 영득 엄마(김용선)와 만석 엄마(금준희)를 비롯한 미용실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교장 선생님 댁 아들이 아니냐, 영득이가 희철의 마빡을 터뜨려 그 집 할머니가 난리가 났었네, 워낙 아들이 귀한 집이라 사모님이 속옷도 빌려갔었다 등등 희철의 전반적인 가족사를 줄줄이 읊어댄다. 다른 이였으면 모를까, 타고난 거짓말 스킬을 자랑하는 영주에게 이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법. 그녀들은 알까? 합법적으로 반지와 가방을 맞바꾸러 왔을 뿐인데 당신이 도둑질을 했었냐 타박이나 해대는 희철이 괘씸하기도 하겠다, 영주가 미용실에서 들은 그 이야기들을 그대로 유용하게 잘 써먹어 희철이 대낮부터 가족들에게 흠씬 얻어터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어쨌든 조력자, 트리시 / 디스 민즈 워 (2012)

 

이미지: 20세기 폭스

 

동시에 대쉬를 해 온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럼 둘 다 하고 자보면 되잖아?’라는 조언을 거리낌 없이 던져주는 절친은 아마 트리시(첼시 챈들러)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조언대로 프랭클린(크리스 파인)과 터크(톰 하디)와의 데이트를 계속 지속해오던 로렌(리즈 위더스푼)이 이 둘에게 미안해서라도 이젠 결정을 내려야겠다며 심각하게 고민을 할 때는 잘난 남자를 고르지 말고 널 잘나게 해줄 남자를 고르라는 진지한 충고를 해주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내린 결정을 말하기 위해 터크를 부른 당일 날, 우연히 프랭클린까지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게 된 로렌이 도움을 요청하자 또 ‘그러게 누가 동시에 둘이나 만나래?’라는 기막힌 답변을 날리는 뻔뻔한 그녀. 네가 힘들면 내가 대신 둘 다 만나주겠다며 쌍수 들고 반기던 내 친구 트리시는 어디 간 거죠? 이 와중에 알고 보니 프랭클린과 터크는 사실 서로 알던 사이였고 자신을 두고 내기를 벌이고 있었던 거라고?

 

 

 

묵직한 조력자, 지우의 아버지(서 대령) / 김종욱 찾기 (2010)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아버지(천호진)에 등 떠밀려 기준(공유)이 개업한 첫사랑 찾기 사무소에 의뢰를 맡긴 지우(임수정)가 이를 탐탁지 않아했던 이유는 지금 자신의 직업을 택한 이유와 비슷하다. 책의 마지막 장, 인생의 찰나 한 조각, 심지어 인연과도 같던 인도에서의 첫사랑마저도, 펼쳐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이들만의 결말과 오롯이 마주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 여기며 뮤지컬 무대 감독이란 직업을 택한 것처럼. 진짜 인연이었다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다시 만나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밤길을 거닐며 의문을 던진 지우에게 아버지는 ‘인연을 붙잡아야 운명이 되지.’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매번, 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겠지 하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왔을 지우에게 아버지의 한마디는 모든 걸 되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되어, 드디어 지우가 첫사랑의 마지막 장을 확인할 수 있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얄미운 조력자, 키티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018)

 

이미지: 넷플릭스

 

맏언니 마고(자넬 패리쉬)가 대학에 진학해 가족과 멀리 떨어지자, 막내 키티(안나 캐스카트)의 눈에는 둘째 언니 라라 진(라나 콘도르)이 훨씬 더 외로워 보이기만 한다. 집에 돌아가려다 우연찮게 마주친 라라 진의 동급생, 피터(노아 센티네오)를 보아하니 언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자신은 라라 진이 짝사랑할 때마다 마음을 정리하고자 쓴 러브레터들이 초록색 박스에 들어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언니는 아무것도 안 할 게 뻔하니 자신이 나서야겠다며, 키티는 언니가 짝사랑했던 다섯 명 모두에게 편지들을 전부 발송해버리고야 만다. 그 기절초풍할 사건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던 라라 진에게 피터가 학교를 데려다주겠다며 차를 끌고 온 걸 보면 자신의 계획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거 같긴 한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일단 라라 진에게 걸리면 키티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